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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엄마의 행방

  • 지민이 힐튼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 아무리 영특한 아이일지라도 다섯 살 난 아이가 스스로 호텔까지 찾아오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 다행히 지민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주차장에서 그 검은 아저씨들이 엄마를 끌고 올 때 타고 온 차량을 찾아냈다. 지민은 환한 표정으로 호텔 로비로 향했다.
  • “예쁜 누나, 저기 밖에 있는 저 차 누구 거예요?”
  • 지민이 까치발을 들고서 프런트에 서있는 여자 직원에게 물었다. 앳된 소리를 따라 고개를 기울인 프런트 직원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앙증맞은 남자아이를 보았다.
  • 이 아이… 호텔 맨 위층에 묵고 계신 작은 도련님 아닌가?
  •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직원은 화들짝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 “혁… 혁이 도련님? 혁이 도련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방금 전에… 레스토랑으로 가신 거 아니었어요?”
  • 낯선 호칭에 지민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생각을 마친 지민이 뒤뚱거리며 옆에 놓인 스툴 의자에 기어오르더니 빙그레 웃으며 직원 가까이에 작은 얼굴을 가져다 댔다.
  •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직원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했다.
  • “네, 방금 내려왔어요. 참, 누나, 저기 밖에 있는 저 차, 누구 거예요?”
  • “대표님 차량 아니에요? 아까 대표님께서 타고 오신 것 같은데?”
  • 직원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지민의 작은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 “고마워요, 예쁜 누나.”
  • “가시려고요? 어디 가시게요? 혼자는 너무 위험하니까 레스토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도련님이 사라지신 걸 아시면 대표님께서 화를 내실 지도 몰라요.”
  • 직원이 베푸는 호의가 고마웠지만 지금은 달갑지 않았다. 기왕 혁이 도련님인 척 흉내 내기로 한 이상 지민은 진짜 도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가서 확인할 생각이었다.
  • 지민은 문득 어제 어린이집에서 새로 전학 온다던, 지민과 닮았다던 그 아이의 이름이 하혁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젯밤 알아냈던 그 아이의 주소지도 분명 힐튼 호텔 맨 위층으로 되어 있었다.
  • 지민은 잽싸게 호텔 사 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 “삼촌, 우리 집에 언제 돌아가?”
  • 가슴에 냅킨을 두르고서 단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하혁은 앞에 놓인 음식에는 시선조차 두지 않고서 불만 섞인 표정으로 임주영에게 물었다. 앙증맞은 양복 차림이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레스토랑과 아주 잘 어울렸다.
  • 언뜻 보면 지민과 많이 닮은 아이였다. 찍어낸 듯 닮은 이목구비와는 달리 두 아이는 성격과 언행에서 천지차이였다. 따뜻한 봄바람 같은 느낌을 주는 지민이 작은 태양과 같은 존재라면 하혁은 어딘가 모르게 북극해처럼 찬바람이 돌았다.
  • 그 점이 제 아버지 하서준을 아주 쏙 빼닮았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 냉담하고 쌀쌀맞은 하혁은 평소에도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과의 교감을 꺼려 했다. 하서준에게서 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랐지만 하혁의 어디에서도 다섯 살 아이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쟤가 혁이 도련님이란 말이지. 닮긴 닮았네. 근데 왜 저렇게 뚱한 표정이야? 할아버지 같아.”
  • 문 뒤에 숨어서 가만히 지켜보던 지민이 안타깝다는 듯 고래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 “아직은 집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표님의 치료 차 나와있는 거라서요. 도련님도 대표님이 하루빨리 낫기를 바라시지 않습니까?”
  • “…”
  • 아버지의 병과 관련된 일이라면 참고 인내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하혁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 “그럼 오늘 온 그 아줌마가 아빠 병을 치료해 주는 거야?”
  • “…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 난처한 물음에 임주영이 어물쩍 대충 얼버무렸다.
  • 그 얘기에 미간을 설핏 찌푸리던 하혁은 이내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 “기왕이면 그 아줌마한테 잘하라고 전해. 무섭게 굴지 말고.”
  • “콜록콜록-”
  • 예상치 못한 한 마디에 화들짝 놀란 임주영은 그만 사레들고 말았다.
  • 멀지 않은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지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 감히 엄마한테 무섭게 굴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움켜쥔 지민은 바로 호텔 맨 위층으로 향했다.
  • 로열 스위트룸의 입구에서 정승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는 작은 실루엣에 몸이 빳빳하게 경직되었다.
  • “도련님, 돌아오셨습니까?”
  • “응.”
  • 지민은 방금 레스토랑에서 보았던 그 뚱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내기 위해 애썼다.
  • “아빠는?”
  • “대표님은 방금 전에 나가셨습니다. 나가시기 전에 도련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쉬고 있으라고 분부 내리셨습니다. 들어가셔서 기다리시면 곧 돌아오실 겁니다.”
  • 역시나 아무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엄마를 괴롭히는 나쁜 놈의 행방을 확인한 지민은 느긋하게 공손한 자세로 문을 열어주는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발걸음을 내디뎠다.
  • 지민은 궁전처럼 호화롭게 꾸며진 내부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하지만 이내 정신을 퍼뜩 차리고는 온주주의 행방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