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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18만 원

  • ‘승권이가 저 남자를 아주 많이 닮긴 했지만... 세상에 닮은 사람은 많고도 많아. 오죽하면 도플갱어라는 말도 생겼겠어.’
  • 당석예가 과거 얘기를 썩 달가워하지 않자, 고시목은 더 묻지 않았다.
  •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일단 검사부터 해봐야겠어.’
  • 고영민은 당승민에게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물었다.
  • “작은 도련님, 제가 졌어요. 머리카락은 어떻게... 제가 뽑을까요? 아니면 작은 도련님이 뽑을래요?”
  • “제가 뽑을게요!”
  • 당승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손을 비볐다.
  • 고시목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 ‘자기 엄마가 졌는데 좋아하는 것 좀 보게. 자기 엄마가 속상해하는 건 보이지 않나 보지? 하여간 요즘 애들... 양심 없어.’
  • 고시목의 생각을 알 길 없는 당승민은 매우 기쁜 표정으로 고영민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더니 보물처럼 들고 당승권에게로 갔다.
  • “자, 형! 이거 가져!”
  • “싫어!”
  • 당승권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더러워!”
  • 당승권이 자기 머리카락을 더럽다고 하자 고영민은 못내 섭섭했다.
  • ‘쳇. 어젯밤에 머리 감았는데...’
  • “그래?”
  • 당승민은 다시 고영민에게로 다가오더니 두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 “형, 머리 뽑으면 아파?”
  • 고영민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말을 더듬거렸다.
  • “아마도... 안 아픈 것 같은데?”
  • 곁에 서 있던 고성우는 고영민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아프면 아픈 거고 안 아프면 안 아픈 거지 같은 데는 또 뭐야?’
  • 당승민은 물기 촉촉한 눈으로 고영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형! 그거 알아요? 사실 머리카락은 엄청 소중해요! 형 지금은 머리숱이 아주 많지만 앞으로 계속 떨어질 거예요! 하나를 뽑으면 열 개가 빠지고 열 개를 뽑으면 백 개가 빠진다는 말도 있는데 모르셨죠? 나중에 대머리 되면 너무 끔찍할 거예요! 안 그래요?”
  • “...”
  • 고영민은 말문이 막혔다.
  •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밑밥을 이렇게 까는 거야... 자꾸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제발 핵심을 얘기하란 말이야!’
  • 그러자 곁에 있던 고성우가 답답한 듯 물었다.
  • “작은 도련님, 그러면 영민의 머리를 뽑지 않는 대신 무슨 요구라도 있어요?”
  • 그러자 당승민은 엄지를 추켜세우며 답했다.
  • “있어요! 있고 말고요! 자, 이렇게 하면 어때요? 머리카락 하나에 2만 원씩 저에게 주는 거예요! 그러면 모두 아홉 개니까 18만 원 주시면 되겠네요! 그럼, 머리카락 안 뽑을게요!”
  • “...”
  • ‘자기 형이 내 머리 더럽다고 하니까 지금 뽑지 않고 그걸 돈으로 바꾸겠다는 거야? 그것도 하나에 2만 원씩, 총 18만 원에? 세상에! 이런 날강도를 봤나! 그래도 작은 도련님이 그렇게 하자면 해야지, 뭐. 하지만 나는...’
  • 고영민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 “하지만 저는 돈을 안 가지고 나왔어요.”
  • 그러자 당승민은 팔을 쑥 내밀더니 차고 있던 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 “자, 그럼 인터넷 뱅킹도 돼요!”
  • 당승민은 팔을 흔들며 자랑하듯 말했다.
  • “얼마나 간편하고 좋아요?”
  • “...”
  • 고영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휴대폰을 꺼내 계좌이체 하려고 했다.
  • “내가 할게.”
  • 그때, 고시목이 휴대폰을 꺼내 아이가 보여주는 계좌에 돈을 보냈다.
  • 몇초 후, 청아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 [200만 원이 입금 되었습니다.]
  • 모든 사람이 벙찐 표정이 되었다.
  • ‘시계에 저런 알림 기능도 있었어? 꼬마치곤 너무 능숙한데? 저걸로 자주 돈을 받아 본 모양이지? 꼬마 녀석 주제에 제법인데?’
  • 입금되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당승민은 두 눈을 반짝이며 얼른 자기 계좌에 들어가 액수를 확인했다.
  • 당승민은 뒤에 붙은 0을 몇 번이고 확인한 뒤에 기쁜 마음으로 당석예에게 달려가 자랑했다.
  • “엄마, 제가 좋은 소식 알려드릴게요! 엄마가 저 아저씨랑 겨뤄서 졌지만, 너무 슬퍼할 거 없어요! 저 아저씨가 싸움은 잘해도 지능이 조금 딸리는 것 같거든요! 제가 18만 원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글쎄 200만 원이나 보내줬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마세요!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상대하기 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