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권이가 저 남자를 아주 많이 닮긴 했지만... 세상에 닮은 사람은 많고도 많아. 오죽하면 도플갱어라는 말도 생겼겠어.’
당석예가 과거 얘기를 썩 달가워하지 않자, 고시목은 더 묻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일단 검사부터 해봐야겠어.’
고영민은 당승민에게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물었다.
“작은 도련님, 제가 졌어요. 머리카락은 어떻게... 제가 뽑을까요? 아니면 작은 도련님이 뽑을래요?”
“제가 뽑을게요!”
당승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손을 비볐다.
고시목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 엄마가 졌는데 좋아하는 것 좀 보게. 자기 엄마가 속상해하는 건 보이지 않나 보지? 하여간 요즘 애들... 양심 없어.’
고시목의 생각을 알 길 없는 당승민은 매우 기쁜 표정으로 고영민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더니 보물처럼 들고 당승권에게로 갔다.
“자, 형! 이거 가져!”
“싫어!”
당승권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러워!”
당승권이 자기 머리카락을 더럽다고 하자 고영민은 못내 섭섭했다.
‘쳇. 어젯밤에 머리 감았는데...’
“그래?”
당승민은 다시 고영민에게로 다가오더니 두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형, 머리 뽑으면 아파?”
고영민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말을 더듬거렸다.
“아마도... 안 아픈 것 같은데?”
곁에 서 있던 고성우는 고영민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프면 아픈 거고 안 아프면 안 아픈 거지 같은 데는 또 뭐야?’
당승민은 물기 촉촉한 눈으로 고영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형! 그거 알아요? 사실 머리카락은 엄청 소중해요! 형 지금은 머리숱이 아주 많지만 앞으로 계속 떨어질 거예요! 하나를 뽑으면 열 개가 빠지고 열 개를 뽑으면 백 개가 빠진다는 말도 있는데 모르셨죠? 나중에 대머리 되면 너무 끔찍할 거예요! 안 그래요?”
“...”
고영민은 말문이 막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밑밥을 이렇게 까는 거야... 자꾸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제발 핵심을 얘기하란 말이야!’
그러자 곁에 있던 고성우가 답답한 듯 물었다.
“작은 도련님, 그러면 영민의 머리를 뽑지 않는 대신 무슨 요구라도 있어요?”
그러자 당승민은 엄지를 추켜세우며 답했다.
“있어요! 있고 말고요! 자, 이렇게 하면 어때요? 머리카락 하나에 2만 원씩 저에게 주는 거예요! 그러면 모두 아홉 개니까 18만 원 주시면 되겠네요! 그럼, 머리카락 안 뽑을게요!”
“...”
‘자기 형이 내 머리 더럽다고 하니까 지금 뽑지 않고 그걸 돈으로 바꾸겠다는 거야? 그것도 하나에 2만 원씩, 총 18만 원에? 세상에! 이런 날강도를 봤나! 그래도 작은 도련님이 그렇게 하자면 해야지, 뭐. 하지만 나는...’
고영민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돈을 안 가지고 나왔어요.”
그러자 당승민은 팔을 쑥 내밀더니 차고 있던 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자, 그럼 인터넷 뱅킹도 돼요!”
당승민은 팔을 흔들며 자랑하듯 말했다.
“얼마나 간편하고 좋아요?”
“...”
고영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휴대폰을 꺼내 계좌이체 하려고 했다.
“내가 할게.”
그때, 고시목이 휴대폰을 꺼내 아이가 보여주는 계좌에 돈을 보냈다.
몇초 후, 청아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200만 원이 입금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벙찐 표정이 되었다.
‘시계에 저런 알림 기능도 있었어? 꼬마치곤 너무 능숙한데? 저걸로 자주 돈을 받아 본 모양이지? 꼬마 녀석 주제에 제법인데?’
입금되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당승민은 두 눈을 반짝이며 얼른 자기 계좌에 들어가 액수를 확인했다.
당승민은 뒤에 붙은 0을 몇 번이고 확인한 뒤에 기쁜 마음으로 당석예에게 달려가 자랑했다.
“엄마, 제가 좋은 소식 알려드릴게요! 엄마가 저 아저씨랑 겨뤄서 졌지만, 너무 슬퍼할 거 없어요! 저 아저씨가 싸움은 잘해도 지능이 조금 딸리는 것 같거든요! 제가 18만 원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글쎄 200만 원이나 보내줬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마세요!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상대하기 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