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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구원

  • 그의 말에 희망이 보인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자의 팔을 꼭 잡고 상대방의 표정 변화는 가볍게 무시한 채 다급하게 말했다.
  • “제가 저 사람들의 보스를 때렸거든요. 만약 잡히면 저 진짜 죽어요. 그러니까 제발 저 사람들한테서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 “누굴 때렸는데?”
  • “호식이라는 사람이요.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저 정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 나는 스스로도 왜 이렇게 자질구레한 것까지 털어놓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순간 그저 남자가 나를 밖으로 쫓아낼까 봐 전전긍긍하며 팔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 “제발, 이렇게 빌게요. 도와주세요.”
  • 남자는 나를 뿌리치려는 것 같았지만 살고 싶어 하는 내 집념이 너무 강했던지라 나를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 그리고 남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기사한테 하는 말이 들려왔다.
  • “진 기사, 우선 출발해.”
  • “네, 서진 도련님.”
  • 진 기사라는 사람은 공손한 말투로 대답하고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 그런데 차창 밖에 있던 호식의 부하들은 차가 떠나가려 하자 차주가 누군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여섯 명이서 한 줄로 길 한복판에 서서 차를 막아버렸다.
  • 아마도 쉽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 “서진 도련님, 어떡할까요?”
  • 진 기사는 의견을 묻는 듯했으나 아주 담담한 말투였고 이런 상황에 놀란듯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 이때 내 곁에 앉아 있던 남자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 “운전해.”
  • 남자의 뜻은 아마도 운전해서 들이 받으라는 뜻인 듯싶었다.
  • 나는 남자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에서 길을 막고 있는 사람들이 호식의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들이 받으면 죽거나 다칠 텐데 정말 무섭지 않단 말인가?
  • 순간 차에 잘못 올라탔다는 생각과 함께 은연중에 서진 도련님이라는 사람이 호식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진 기사는 순순히 명령에 따랐고 정말로 액셀을 밟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몰았다. 긴 클랙슨 소리와 함께 차는 움직였고 앞에 막아섰던 사람들은 놀라서 몸을 피하더니 어릿광대처럼 씩씩 거리며 몽둥이를 들고 뒤를 쫓아왔다.
  • 그 모습에 서진 도련님은 낮은 소리로 웃었고 기분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 차는 곧바로 골목길을 떠났고 나는 잠시 동안 벗어났다는 생각에 조여왔던 심장이 끝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힘이 빠져 의자에 기대앉았다.
  • 나는 서진 도련님한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방해할 수 없어 내릴 때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차 안에서는 나지막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고 밤새도록 너무나도 힘들었던 터라 조금씩 흔들리는 차 안에서 잠이 쏟아졌다.
  • 하지만 꿈에서조차 나는 편안하지 못했다. 호식, 해진, 아정 등 사람들이 내 주위를 둘러쌌고 내가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그자들은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맞아서 찢긴 상처에 고춧가루 물을 부어대기까지 했다.
  •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고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그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걸 막으려 애썼다!
  • “서진 도련님, 이 여자 이마가 불덩인데요.”
  • 몽롱한 정신 속에서 아주 친절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눈을 뜨려고 애를 썼으나 눈 뜰 힘조차 없었다. 온몸은 추웠다 더웠다 체온이 내리고 오르기를 반복하며 나를 괴롭혔고 뼈와 근육이 쑤셔오듯 아파났다.
  • “응. 열 내리면 나한테 보고해.”
  • 남자의 목소리는 발소리와 함게 점차 멀어졌고 안간힘을 쓰며 겨우 실눈을 떴으나 남자의 훤칠한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 누군가 얼음 물에 적신 수건을 짜서 내 이마에 올리는 느낌이 들었고 불안한 마음도 여자의 보살핌 덕에 점차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