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7화 도망

  • 그 누구도 내가 이렇게 미친 듯이 달려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호식처럼 변태 같은 미친놈이 업소에서 여자에게 공격당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듯했다.
  • 그들 모두 넋을 잃고 멍하니 서있는 짧은 틈에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문 밖을 향해 달려나갔다.
  • “뭣들 하고 있어? 당장 잡아오지 않고! 내가 저거 꼭 죽이고 만다!”
  • 호식이 이를 갈며 외치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 하지만 이 시각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도망가야 해!
  • 뒤쪽에 있던 사람들은 바싹 추격해왔고 나는 달리면서 복도에 있는 재떨이를 뒤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마다 모두 뒤쪽으로 던져 최대한 도망갈 시간을 벌었다.
  • 다행히도 이곳이 익숙하다 보니 나는 쉽게 직원 휴게실로 도망쳐 왔고 그 뒤쪽에 밖으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여름은 마침 휴게실에서 화장을 고치다가 내가 죽을 듯이 달려 들어오자 나를 부축하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 휴게실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름의 팔을 잡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내, 내가 호식을 때렸어. 난 이제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어. 그 사람들이 나 쫓아올 거야.”
  • “얼른, 뒤쪽으로 도망 가.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옷도 갈아입을 필요 없어. 당장 도망가. 그러면 멀리 도망갈 수 있을 거야. 시간이 지체되면 정말 끝이야.”
  • 여름은 나를 뒤쪽 문으로 밀며 말했다. 하필이면 가장 골치 아픈 손님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그 누구도 나를 구할 수는 없었다.
  • “여기 있어. 당장 잡아와!”
  • 호식의 부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실 밖까지 쳐들어왔고 나는 급한 마음에 더 이상 여름이와 말도 하지 못한 채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뒷문을 빠져나갔다.
  • 쾅...
  • 문을 부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수많은 발자국이 뒤에서 나를 쫓고 있는 게 느껴졌다.
  • 뒷문으로 빠져나오자 고요한 골목이 보였고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검은 자가용 한 대만 있을 뿐 택시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두 발로 도망친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힐 건 불 보듯 뻔했다.
  • 뒤쪽에서 사람들이 점점 가까워 지자 나는 더 이상 고민도 없이 검은 자가용의 문을 열어젖히고 뒷좌석에 앉은 뒤 다시 문을 잠그고는 앞에 앉은 기사한테 계속 다그쳤다.
  • “저기요. 제발 구해주세요. 나쁜 사람들이 저 잡으려 해요. 도와주세요. 제발.”
  • 그 말에 운전석에 앉은 기사는 고개를 돌려 어색하고 난감한 듯 나를 힐끗 보더니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나는 그 사람이 나를 거절할까 봐 지니고 있던 돈을 모두 끄집어 내서 기사한테 드렸지만 고작 몇만 원 정도가 다였다. 그것도 오늘 받은 팁이었다.
  • “제발 도와주세요. 이건 차비로 하고 아무 데나 빙 둘러 가다가 저를 내려주면 돼요.”
  • “내려.”
  • 이때 온기 하나 없는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다가 그제서야 뒷좌석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밤이라서 불빛이 어두운 관계로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눈빛만큼은 더없이 반짝였고 목소리를 들어보았을 때 아마 젊은 남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저기요, 아가씨... 아무래도 내리셔야 할 것 같네요.”
  • 운전석에 앉은 기사분이 고개를 돌려 미안한 듯 나를 바라봤고 이번 일은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 차 문밖에는 호식의 부하들이 이미 쫓아왔지만 차 안의 사람이 누군지 몰라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 이런 상황에서 셈이나 세는 내가 한심했지만 세어 보니 여섯 명가량 되어 보였다. 보아하니 내가 호식을 내려친 그 한방이 꽤 셌던 모양이었다.
  • 나는 몸서리를 쳤고 순간 빨리 도망 온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주만 나를 쫓아내지 않으면 나는 아주 순조롭게 도망갈 수 있었다.
  • “보아하니 쫓아내지 못할 것 같네.”
  •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아까만큼 쌀쌀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고 헛기침을 하더니 툭 던지듯 물었다.
  • “저 사람들을 어떻게 건드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