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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절망의 순간 건네 온 손길

  • 내가 반항을 멈추고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 문이 열리더니 심원 언니가 사람을 몇 명 데리고 웃으며 룸으로 들어왔다.
  • “호식 오빠,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대요? 왔으면서 왜 절 부르지 않았어요.”
  • 호식은 내 위에 올라탄 채로 내 다리를 강제적으로 벌리다가 심원 언니가 들어온 것을 보고는 멈칫했다.
  • 심원 언니는 우리 바의 매니저인데 지금껏 사장님을 대신해 많은 일을 해결해왔고 사장님이 매우 믿는 사람이다. 때문에 바에 오는 손님들은 누구든 그녀의 체면을 봐주곤 했다.
  • 아마 이 순간 나타난 것도 룸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 심원 언니는 나를 힐끗 보더니 눈빛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고 그녀가 나타나자 나는 또다시 희망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 하지만 호식은 심원 언니가 왔는데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
  • “네가 뭔데 내 좋은 일을 방해해? 네가 이 여자를 대신하기라도 할래?”
  • 심원 언니는 별의별 상황을 많이 봐왔기에 여전히 침착했고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 “호식 오빠, 왜 저 애를 붙잡고 놓지 않아요? 보기에는 청순해 보여도 접대를 많이 해본 앤데 다들 목석같아서 재미없다고 하더라고요.”
  • 나는 심원 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게 나를 위해서라는 걸 알았기에 고마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룸은 방음이 어찌나 좋은지 호식이 침묵하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심원 언니를 싸늘하게 바라봤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그러다가 한참 뒤, 그는 나를 옆으로 차버리며 심원 언니를 향해 음탕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 “듣기로 너도 이제는 손 씻었다며? 접대하지 않은지도 오래됐고? 얘를 그렇게 구하고 싶으면 네가 대신해. 네가 대신하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안 그러면 사장이 와도 체면 못 봐줘.”
  • 우리 사장님이 이런 업소를 차릴 수 있다는 건 당연히 그만큼 실력이 있고 또 건달과 경찰들을 다 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호식도 아마 마음속으로 비교를 끝냈기에 더 이상 진상을 부리지 않았지만 체면치레는 하려는 듯싶었다.
  • “심원 언니...”
  •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말리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이때 심원 언니는 내 쪽을 보지도 않은 채 살짝 미소 짓더니 함께 들어온 동료 몇몇을 향해 말했다.
  • “상아 데리고 나가.”
  • 그 말에 동료들은 나를 부축했고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움직이기조차 힘들었지만 울면서 그녀들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했다.
  • “심원 언니, 그러지 마요. 제발, 그러지 마...”
  • 나는 내가 이 룸을 빠져나가 심원 언니 혼자 남겨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기적으로 그녀더러 나를 대신하라고 할 수 없었다.
  • “당장 끌고 나가지 않고 뭐해!”
  • 심원 언니는 차가운 표정으로 꾸짖으며 내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상아야, 그냥 조용히 나가자. 심원 언니는 그래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얼른 나가는 게 도와주는 거야.”
  • 평소 나와 꽤 가깝게 지내던 여름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면서 나를 부축한 채 재빨리 룸을 빠져나왔다.
  • 룸의 문이 천천히 닫히는 순간까지 나는 악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호식의 몇몇 부하들이 심원 언니의 옷을 벗기는 모습이었다...
  • 심원 언니가 부축을 받으며 돌아왔을 때 온몸에는 성한 곳 하나 없었다. 우리는 그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고,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 짐승 같은 놈들이 돌아가면서 심원 언니에게 그 짓을 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