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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소란

  • 새벽, 업소 문을 닫은 뒤 우리는 휴게실에서 아정을 비롯한 몇몇과 다툼이 벌였다.
  • 여름은 예전부터 아정을 아니꼽게 봤고 오늘 저녁의 일까지 더해져 더 이상은 화를 참을 수 없는 듯했다.
  • 여자들의 싸움은 남자들의 싸움보다 많이 간단하다. 그저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로 잡아당기기만 해도 상대한테 고통을 주고 심지어 눈물까지 쏙 뺄 수 있으니까. 또 손톱을 길게 기르는 사람은 얼굴을 공격했을 때 상대방의 얼굴을 망가트릴 수도 있었다.
  •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은 마음껏 때려도 얼굴만은 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지만 이 시각 아정과 여름은 모두 눈에 뵈는 게 없었고 옆에서 말릴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쪽수로도 우리보다 훨씬 많았고 몇 번 말리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의 몸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생기고 말았다.
  • 처음부터 분하고 답답했던지라 나도 이번 일을 겪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라 아정의 배를 발로 몇번 차 넘어뜨리고는 위에 올라탄 채로 뺨을 사정 없이 때렸다. 내가 눈이 빨개져서 달려들자 아정은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해야 했다.
  • 그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갑자기 동작을 멈췄고 소리마저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지금껏 나약하고 조용하던 애가 이렇게 독해질 수도 있다는 거에 많이 놀란듯했다.
  • 아정은 아픈 나머지 소리를 질러댔고 희진은 그 소리에 달려와 경비더러 우리를 떼어놓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몇 번 해댔다.
  • “이것들이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 희진은 화가 잔뜩 나서 소리 질렀고 잔뜩 화난 희진의 모습에 모두 자리에 앉아 꾸지람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러자 희진은 우리 몇몇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 앞으로 오더니 우리의 뺨을 때리고는 삿대질하며 욕했다.
  • “이제 며칠이나 됐다고 또 사고를 쳐! 내일부터 너희들은 룸에 발 들일 생각도 하지 마. 1층에서 얌전히 커피나 날라!”
  • “희진 언니... 우상아 저 계집애가 제 얼굴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봐봐요. 내일 올 귀한 손님이 콕 집어 저를 불렀는데 이 꼴로 어떻게 손님을 만나요?”
  • 아정은 얼굴을 감싼 채로 억울한 듯 호소했다. 여름한테 뜯긴 새 둥지 같은 머리며, 나한테 맞아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이며, 끊어진 치마 끈, 그리고 더럽혀진 치마를 보아서 ‘에이스’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가씨 중 한 명이라는 걸 보아낼 수조차 없었다.
  • 희진은 귀찮은 듯 손을 저었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정의 행동이 아주 불만인듯했다. 하지만 아정은 희진이 직접 가르친 애들 중에서도 잘나가는 애들 중 한 명이었기에 뭐라 말하지는 못하고 다른 애들더러 아정을 부축해서 숙소로 돌아가라고 했다.
  • 그러고는 우리 몇몇을 옆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싸늘하게 말했다.
  • “내가 말했지? 내 밑에 들어오면 조용히 말을 들어야 한다고. 오늘은 심원의 체면을 봐서 이쯤에서 끝내겠는데 또다시 사고 치면 심원이 사장님을 찾아가 어떻게 사정하든 소용없을 거야. 난 할 얘기 많으니까.”
  • 여름은 고개를 돌려 아예 희진을 보지도 않았고 주희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희진을 바라봤고 마침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싸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내가 희진한테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아마 방금 아정을 사정 없이 때린 게 그녀 자존심에 금이 가게 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 밤새도록 그런 일에 휩쓸려 모두들 기운이 빠졌고 우리는 엉망이 된 서로의 옷을 정리해 주고는 주희 이마에 난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 다행히도 상처가 깊지 않은 덕에 며칠 동안 약을 바르면 바로 회복하여 흉터가 남을 일까지는 없어 보였다.
  •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 때 여름은 축 처진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 “이런 날이 언제면 끝나려나.”
  • 나는 여름과 같은 2층 침대 위층에 누운 채로 생각했다. 사실 나도 이러한 나날이 언제면 끝날지 무척 궁금했다.
  • 누군들 이런 곳에서 자기의 청춘을 보내고 싶을까?
  •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한테 다른 방법이 있을까? 누구나 가슴 아픈 얘기 하나쯤은 안고 여기에 뛰어들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