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예전부터 아정을 아니꼽게 봤고 오늘 저녁의 일까지 더해져 더 이상은 화를 참을 수 없는 듯했다.
여자들의 싸움은 남자들의 싸움보다 많이 간단하다. 그저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로 잡아당기기만 해도 상대한테 고통을 주고 심지어 눈물까지 쏙 뺄 수 있으니까. 또 손톱을 길게 기르는 사람은 얼굴을 공격했을 때 상대방의 얼굴을 망가트릴 수도 있었다.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은 마음껏 때려도 얼굴만은 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지만 이 시각 아정과 여름은 모두 눈에 뵈는 게 없었고 옆에서 말릴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쪽수로도 우리보다 훨씬 많았고 몇 번 말리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의 몸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생기고 말았다.
처음부터 분하고 답답했던지라 나도 이번 일을 겪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라 아정의 배를 발로 몇번 차 넘어뜨리고는 위에 올라탄 채로 뺨을 사정 없이 때렸다. 내가 눈이 빨개져서 달려들자 아정은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해야 했다.
그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갑자기 동작을 멈췄고 소리마저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지금껏 나약하고 조용하던 애가 이렇게 독해질 수도 있다는 거에 많이 놀란듯했다.
아정은 아픈 나머지 소리를 질러댔고 희진은 그 소리에 달려와 경비더러 우리를 떼어놓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몇 번 해댔다.
“이것들이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희진은 화가 잔뜩 나서 소리 질렀고 잔뜩 화난 희진의 모습에 모두 자리에 앉아 꾸지람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희진은 우리 몇몇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 앞으로 오더니 우리의 뺨을 때리고는 삿대질하며 욕했다.
“이제 며칠이나 됐다고 또 사고를 쳐! 내일부터 너희들은 룸에 발 들일 생각도 하지 마. 1층에서 얌전히 커피나 날라!”
“희진 언니... 우상아 저 계집애가 제 얼굴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봐봐요. 내일 올 귀한 손님이 콕 집어 저를 불렀는데 이 꼴로 어떻게 손님을 만나요?”
아정은 얼굴을 감싼 채로 억울한 듯 호소했다. 여름한테 뜯긴 새 둥지 같은 머리며, 나한테 맞아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이며, 끊어진 치마 끈, 그리고 더럽혀진 치마를 보아서 ‘에이스’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가씨 중 한 명이라는 걸 보아낼 수조차 없었다.
희진은 귀찮은 듯 손을 저었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정의 행동이 아주 불만인듯했다. 하지만 아정은 희진이 직접 가르친 애들 중에서도 잘나가는 애들 중 한 명이었기에 뭐라 말하지는 못하고 다른 애들더러 아정을 부축해서 숙소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고는 우리 몇몇을 옆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내 밑에 들어오면 조용히 말을 들어야 한다고. 오늘은 심원의 체면을 봐서 이쯤에서 끝내겠는데 또다시 사고 치면 심원이 사장님을 찾아가 어떻게 사정하든 소용없을 거야. 난 할 얘기 많으니까.”
여름은 고개를 돌려 아예 희진을 보지도 않았고 주희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희진을 바라봤고 마침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싸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내가 희진한테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아마 방금 아정을 사정 없이 때린 게 그녀 자존심에 금이 가게 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밤새도록 그런 일에 휩쓸려 모두들 기운이 빠졌고 우리는 엉망이 된 서로의 옷을 정리해 주고는 주희 이마에 난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 다행히도 상처가 깊지 않은 덕에 며칠 동안 약을 바르면 바로 회복하여 흉터가 남을 일까지는 없어 보였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 때 여름은 축 처진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런 날이 언제면 끝나려나.”
나는 여름과 같은 2층 침대 위층에 누운 채로 생각했다. 사실 나도 이러한 나날이 언제면 끝날지 무척 궁금했다.
누군들 이런 곳에서 자기의 청춘을 보내고 싶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한테 다른 방법이 있을까? 누구나 가슴 아픈 얘기 하나쯤은 안고 여기에 뛰어들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