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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남자의 제의

  • 나는 남자가 나를 쫓아낼까 봐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
  • “저 에이스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 “에이스로 돌아가라는 거 아니야. MIX는 어때?”
  • 방 안의 어두운 불빛이 남자의 얼굴에 드리워 잘 생긴 얼굴을 부각시켜주었고 술을 마신 뒤의 입술은 피 묻은 듯 빨간빛을 띠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떨려왔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MIX라면 저도 알아요. 가장 큰 업소라고 알고 있는데 그 곳은 부자들 아니면 권력 있는 사람들만 드나드는 곳이잖아요. 도련님 설마 농담하시는 건 아니죠?”
  • 나는 내 주제를 알고 있었고 에이스에서 그나마 버틸 정도는 되지만 정말로 큰 물에서 놀 주제는 아니라는 자각도 있었다. 그곳은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게다가 이런 밤낮이 바뀐 생활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살고 싶었다.
  • 이때 서진 도련님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MIX가 뭐라고. 나 너 하나쯤 자리 마련해 줄 능력 있어.”
  • “하지만...”
  • 말을 얼버무리던 나는 남자의 차가운 눈빛을 확인한 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다급히 말했다.
  • “가고 싶지 않아요.”
  • “왜?”
  • “꼭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니라면 앞으로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 나는 고개를 숙이고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거두어달라고 부탁할 때 분명 뭐든 하겠다고 했지만 처음으로 물어보는 일을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니 나도 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어서 고개를 들고 쳐다보지도 못했다.
  • 하지만 그는 내 난처한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 “만약 꼭 그래야만 한다면?”
  • 나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남자를 바라봤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서진 도련님은 내 모습이 웃긴지 잠깐 동안 웃더니 미간에 드리웠던 암울함도 조금 사라진듯했다.
  • “전에 내가 말했지? 남고 싶으면 일을 해야 한다고. MIX로 출근하는 게 그 첫 번째야.”
  • “거기에서 뭘 해야 하는데요?”
  •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눈앞의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게 호식한테 붙잡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 “네가 잘하는 거 하면 돼. 술 따르고 대화도 하고.”
  •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긴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보아하니 많이 힘든 것 같아 보였다.
  • 나는 곧바로 눈치채고는 몸을 일으켜 남자의 뒤쪽으로 가 손을 뻗어 능동적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눌러주었다.
  • 그 동작에 남자의 몸이 잠시 굳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의 터치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곧바로 다시 회복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행동을 묵인했다.
  • 나는 어머니가 병상에 오래 누워 계신 터라 시원하게 마사지하는 법을 어릴 적부터 익혔다. 하지만 서진 도련님처럼 집안도 출신도 좋은 사람이 이렇게 고독한 생활을 하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저 나의 이런 행동이 상대방의 믿음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이 사람을 의지해야 할 것 같으니까.
  • “술만 따르면 되나요? 아시다시피, 저... 접대는 안 해요.”
  • 나는 입술을 깨물며 서진 도련님한테 강조하듯 말했다. MIX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접대를 하지 않는 게 내 한계였다.
  • 서진 도련님은 나지막하게 웃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설마, MIX의 고객이 아무나 다 좋다고 할 것 같아?”
  • 나는 그의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접대만 피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상관 없었다.
  • 이때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나를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내 턱을 잡으며 위험한 경고의 말투로 말했다.
  • “MIX는 에이스 같은 곳과는 차원이 달라. 그곳에서는 사고 치지 말고 말 잘 들어야 할 거야.”
  • 내 턱을 잡은 남자의 손아귀 힘에 나는 눈물이 글썽해서 그를 쳐다봤다.
  • “알겠어요.”
  • 남자는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의 힘을 풀었고 곧바로 나를 당겨 품 안에 안더니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위로하듯 말했다.
  • “아직 해 뜨려면 이르니까 계속 자. 날이 밝으면 MIX로 데려다 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