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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MIX 첫 출근

  • 서진 도련님이 직접 나를 데리고 MIX에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가니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역시나 서진 도련님과 함께 맨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복도를 지날 때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서진 도련님을 볼 때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서진 도련님이 나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간 뒤에야 그가 MIX의 진정한 대표라는 걸 알았다. 사무실까지 오는 길에 나는 MIX의 내부를 대략적으로 훑어보았고 역시나 에이스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에이스는 화려함의 극치를 뽐내듯 최대한 화려한 인테리어로 되어 있어 잘나가는 부자가 오픈한 업소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했지만 MIX는 달랐다.
  • MIX는 점잖고 깔끔했으나 자세히 보면 매 하나의 배치마다 신경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가구들도 모두 좋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걸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고 역시나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곳과는 고객층부터 다른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서진 도련님은 홍보팀 일을 도맡아 하는 리아라는 사람더러 나한테 일을 안배하게 했다. 리아는 27살 정도 돼 보였고 정교하고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심원 언니의 따뜻함과 희진의 냉정함과는 다른 여장부의 기개를 내뿜고 있어 그녀 밑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리아는 나한테 MIX에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알려주었다. 예를 들면 동료들 사이에 잘 지내야 하고 고객님한테 공손해야 하며 이곳 고객님들이 아무리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라지만 너무 비굴하게 굴어 MIX 간판에 먹칠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등이었다.
  • 이곳이 에이스와는 정말로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한 또다른 한 가지는 에이스에서 우리의 주요 수입은 팁과 술을 판 인센티브 위주인데 MIX는 술을 판매할 필요도 없이 룸 가격만 해도 몇백만 원이고 자연적으로 술을 포함한 기타 소비도 따른다는 것이었다.
  • 리아는 MIX의 규칙에 대해 하나 둘 설명하고는 오늘은 첫날이니 바로 일을 맡기지 않는 대신 이 곳 환경을 익히라고만 했다.
  • 그리고 다음날, 리아는 나를 데리고 레슨 실로 향하더니 예절을 가르치는 선생님더러 나한테 몸가짐 예절을 가르치라고 했다.
  • 나는 호기심에 여기서 출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배워야 하냐고 물었고 내 질문에 리아는 가장 잘나가는 에이스거나 유망주들만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예절, 소믈리에, 언어 등 지식을 배운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건 서진 도련님이 콕 집어 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어제 이후로 나는 서진 도련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마 MIX에는 자주 오지 않는듯 했고 이 곳은 그저 가족 기업 외에 개인적인 취미로 하는 사업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MIX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급 업소로 자리매김했다.
  • 나는 서진 도련님이 나를 콕 집어 이런 코스의 레슨을 받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한테 예절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나한테 엄격하셨지만 무척 열심히 가르치셨고 내가 틀린 곳이 있으면 내가 누군지 상관하지 않고 호되게 꾸짖었다.
  • 예절 선생님은 나더러 매일 30분 이상 수영을 하는 걸 견지하라고 했고 다리 스트레칭과 서있는 자세와 같은 기본적인 동작을 매일같이 연습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면 다리가 점점 가늘고 길어진다고 했다.
  • 그리고 다른 것들은 차츰 가르쳐주겠다고 하면서 그날의 수업을 마쳤다. 하루 종일 빡센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빠져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역시 기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면 장인의 경지에 오른다고 MIX에서는 그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 저녁에 돌아오니 서진 도련님은 이미 집에 와계셨고 이틀 동안 많이 적응했는지부터 물었다.
  • 이에 나는 궁금하던 것부터 물었다.
  • “저는 MIX에 있는 언니들보다 너무 부족한 게 너무 많은데 왜 저한테 이런 걸 배우라고 했어요?”
  • 그는 오늘 저녁 기분이 꽤 괜찮은지 나를 향해 손을 저었고 내가 다가가자 곧바로 나를 잡아당겨 자기 무릎 위에 앉히더니 여느 때보다도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 “상아야, 넌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쓸데 있다고 생각해?”
  •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는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학교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남아있었다.
  • 그러자 그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따뜻한 입김을 내 귓등에 불면서 말했고 나는 몸이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 “그것과 같아. 학교에서는 너한테 지식을 배워주고 MIX에서는 너한테 생활에 필요한 수단을 가르쳐주는 거야. 지금은 쓸모없는 것 같아 보여도 언젠가는 쓸모 있을 거야.”
  • 그가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건 드문 일이었고 게다가 꽤 도리가 있는 듯한 말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이때 서진 도련님은 내 머리를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하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 “상아야, 괴롭힘당하기 싫으면 강해져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