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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욕망

불타는 욕망

Delphine

Last update: 2022-01-02

제1화 지옥에서 겪은 모멸감

  • 매일 밤 나는 진한 메이크업에 섹시한 옷을 입고 북적거리는 곳에서 돈 많은 사장님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웃어야 한다. 만약 그들이 기분 좋은 날엔 나한텐 적지 않은 팁이 차려지고 만약 그들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억지로 술을 마셔가며 눈치를 봐야 한다. 이게 바로 내 일상이다.
  • 매일 밤 나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술을 들이부어야 한다.
  • 나는 이게 내 숙명인 줄 알았다. 아마도 이번 생 인생의 꽃다운 시절을 여기서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야 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 아마 모두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맞혔을 거다.
  • 하지만 세상에 이런 일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길에 들어서니까. 난 첫 번째가 아니고 그렇다고 마지막도 아닐 거다.
  • 내 이름은 우상아다. 현지에 있는 ‘에이스’라는 가게에서 출근하며 매일 낮이면 낮잠을 자고 저녁때만 되면 별의별 아저씨 같은 손님들을 접대하며 술을 파는 게 내 일상이다. 수입은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했고 나는 이러한 일상이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다.
  • 그날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기 전까지는.
  • ‘에이스’는 비록 바 형식의 업소지만 별의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고 각종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사장님도 뒷배가 상당해 경찰이 현장에 뜨더라도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기에 매일 밤이면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었다.
  • 그중에 매달 우리 바에서 몇천만 원씩 쓰는VIP급 손님이 있는데 그 사람의 별명은 호식이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돈도 많고 권력도 있는 사람이지만 거칠고 변태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미성년 소녀들을 괴롭히기 좋아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기에 우리 바닥에서는 소문이 파다했고고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 함께 온 손님이 부르는 걸 들으니 이름은 호식인 것 같았는데 꽤나 씀씀이가 큰 편이지만 처녀가 아닌 여자한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손이 큰 덕에 성격이 나쁘다 하더라도 동료들은 그 사람의 룸에 가기 좋아했다.
  • 그날 나는 처음으로 호식이라는 손님의 룸에 들어갔다. 동료가 그날이라 술을 마시면 안되기에 나한테 타임 교체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호식이라는 손님은 대체 어떻게 내가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깨끗한 몸이라는 걸 알아봤는지 나한테 접대를 강요했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지만 돌아오는 건 얼얼한 귀싸대기였다.
  • 그때 룸 안에는 나를 제외하고 동료 두세 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모두 놀라 누구도 나를 도와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호식은 온몸에 술 냄새를 풍기며 옷깃을 열어젖히더니 나를 소파 위로 밀어 눕히고 위에 올라탔다.
  • 그 모습에 나는 놀라고 무서웠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순결 같은 걸 지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나는 그래도 내 존엄만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는데.
  • “젠장. 걸레가 어디서 같잖게 순결한 척이야. 내가 널 마음에 들어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 호식은 거칠게 내 옷을 찢더니 외부에 노출된 내 검은 속옷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 “호식 오빠. 제가 잘못했어요. 화 좀 푸세요. 제가 같이 몇 병이고 마셔드릴게요. 그러니 제발 한 번만 봐줘요.”
  • 나는 그의 밑에 깔려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다리 사이에 있는 단단한 무언가를 느낀 순간 절망에 겨워 옆에 있던 동기들을 바라봤다. 그녀들이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서였다.
  • 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내 눈빛을 피했고 아무 말도 없었으며 누구도 나서서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
  • 나의 애원하는 소리에 오히려 호식의 눈은 흥분에 겨워 반짝거렸고 숨을 쉴 때마다 지독한 술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 “소리 질러! 어디 더 높게 질러 봐. 난 역시 너 같은 여자가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게 좋아. 높게 지를수록 더 흥분돼!”
  • 그리고 그는 술병을 하나 집어 들더니 안에 있는 술을 나한테 부었다. 그 모습에도 현장에는 누구도 도와주러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이 곁에서 흥분하며 떠들어댔다.
  • “형님, 형님 끝나시면 저희도 재미 좀 보게 해주세요.”
  • 순간 눈물이 술과 함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 내어 우는 것까지는 최대한 막으려고 애썼다. 이 순간 나를 구해줄 사람이 그 누구도 없다는 걸 나는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