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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절망의 순간

  • 아정이 말한 귀한 손님이 호식이었다는 걸 나는 룸에 불려간 뒤에야 알아차렸다.
  • 이 순간 아정은 가녀리고 애처롭게 울어댔고 진한 메이크업을 한 채로 호식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룸에 들어가기 바쁘게 사람들은 내 주위를 둘러쌌다.
  • “네가 내 사람을 때렸다며?”
  • 호식이 음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 이건 내가 호식을 두 번째로 마주하는 건데 매번 마주칠 때마다 좋지 않은 일들만 일어나곤 했다. 나는 심원 언니의 일 때문에 이 사람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꾹 눌러 참으며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 “호식 오빠,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오빠 사람을 제가 어떻게 감히 때리겠어요.”
  • “말장난 그만해. 아정이 나를 도와 깨끗한 애들을 얼마나 많이 소개해 줬는데 네가 때리는 바람에 다쳐서 내 좋은 일까지 망쳤잖아. 그러니까 어떡할 거야?”
  • 나는 아정의 뒷배가 호식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니 지금껏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거였다. 아정은 호식의 품에 안겨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꼬나보았고 가끔씩 호식의 귀에 대고 귓속말까지 해댔는데 딱 봐도 좋은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호식은 아정의 등을 토닥여 주더니 부하를 시켜 나를 잡게 하고는 발로 내 다리를 차게 했다. 순간 나는 스스로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어버렸다.
  • 그러자 호식은 내 턱을 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고 순간 느껴지는 역겨운 냄새가 내 코를 찔러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 “호식 오빠, 우리끼리 투닥거리는 건 지극히 정상인 일이에요...”
  •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정이 아까 호식의 귀에 대고 나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한 게 뻔했기에 내가 무슨 얘기를 하든 사실 소용이 없었다.
  • 아정의 얼굴에 두껍게 펴 바른 BB크림도 어제 싸우면서 남긴 멍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 “너 심원의 일 때문에 호식 오빠한테 앙심을 품고 있는 거 아니었어? 호식 오빠는 평소에 내 장사를 잘 돌봐주니까 나를 때린 건 호식 오빠를 때린 거나 마찬가지야. 이런데도 아직까지 이 일이 네 말대로 단순히 우리들 사이의 다툼처럼 간단한 것 같아?”
  •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늘은 두 번째 심원 언니가 나타나서 나를 구해줄 일은 없었다. 게다가 아정은 나를 싫어하는 만큼 나를 끝까지 몰아갈 게 뻔했다.
  • 역시나 호식은 아정의 말을 듣자 더욱 화난 듯 했고 술기운까지 더해지자 두 눈에 핏발이 서려 더욱 무서웠다.
  • “오늘 날 기분 좋게 해주지 않으면 이 문을 나갈 생각도 하지 마!”
  • 그는 벨트를 풀어 헤치더니 곧바로 지퍼를 내렸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호응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정의 입꼬리는 씩 위로 올라갔고 내 처참한 꼴이라도 지켜보겠다는 표정이었다.
  • “뭐 하고 있어? 얼른 하지 않고?”
  • 호식의 부하는 무서운 목소리로 나를 다그치며 내 머리를 힘껏 눌렀고 그 바람에 내 머리는 호식의 다리 사이에 부딪쳤다.
  • 그 모습에 주위의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듯 마구 웃어댔고 내 몸은 점점 떨려왔다.
  • “음탕한 것 같으니, 조금 있으면 아주 기분 좋아질 거야.”
  • 술기운이 올라온 탓에 호식의 눈빛은 더욱 악랄했다.
  • 나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심장이 타들어가 점점 잿더미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놔줄 리가 없었고 만약 내가 순순히 따르면 나도 심원 언니와 똑같은 꼴이 되겠지. 하지만 만약 불복하면 남은 인생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 내 이런 처지가 너무 한심했다!
  • 이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웨이터가 맥주 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 정말 위기일발의 순간 내 몸속에서 무슨 힘이 생겨났는지 난 어제저녁 아정의 위에 올라타 마구 때리던 것처럼 미친듯이 술병을 들고 호식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순간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댔고 병은 깨져 산산조각 나버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모두 넋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