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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심원 언니의 빈자리

  • 심원 언니가 침대에 죽어가는 사람처럼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 앞에서 울 수조차 없었다. 결국 스스로를 화장실에 가둔 채 눈물 범벅이 되도록 울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토록 무기력함을 느꼈고 순간 칼을 들고 당장 호식을 죽이고 싶었다.
  • 하지만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내가 너무 나약하다는 사실을 난 부정할 수 없다.
  • 사장님은 이 사실을 아신 뒤 크게 화내셨지만 그렇다고 호식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호식에게 이건 충분히 사장님의 체면을 봐준 행동이었고 다른 곳이었다면 장사도 계속하지 못했을 거다.
  • 사장님은 심원 언니한테 적지 않은 돈을 위로금 삼아 주었지만 이토록 찢기고 다친 몸은 그걸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 심원 언니가 휴식하는 며칠 동안 다른 팀의 매니저 희진이 일을 대신했다.
  • 희진은 휴식하는 시간을 이용하여 두 팀의 동료들을 불러 모아 간단한 회의를 했다.
  • “심원이 몸이 안 좋은 관계로 심원 팀에 있던 애들도 잠시 내 소관이 되었다는 건 다들 알고 있겠지. 하지만 팀에는 팀 내 규칙이 있어. 예전에 심원이 너희들 행동을 어떻게 눈감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 말을 듣지 않겠으면 당장 짐 싸서 꺼져.”
  • 말하는 내내 내 쪽을 바라보는 걸 봐서는 나를 겨냥한 말인 듯싶었다.
  • 이때 한 동료가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이상야릇한 말투로 발했다.
  • “이게 다 심원 언니가 너무 만만하게 행동해서 이 사달이 난 거야. 아랫사람을 어떻게 관리했으면 비겁하게 뒤에만 숨어 있고 나서서 일을 떠맡는 사람 하나 없어. 휴, 심원 언니만 불쌍하지 뭐.”
  • 그 말에 여름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맞받아쳤다.
  • “그래. 우리가 비겁해서 나서지도 못한 거 인정 해. 아정이 너처럼 남자 4명이랑 하면서 12만 원만 받는 음탕한 재주를 우리가 어떻게 배우겠어.”
  • 아정은 그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나도 갑자기 지난달 아정이가 급전이 필요하다며 4명의 손님을 함께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외지에서 출장 온 손님 4명이 아정의 예쁜 얼굴과 몸매에 반해 술김에 흑심을 품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면서 아정을 상대로 성욕을 풀었다. 아정은 그때까지만 해도 상대방이 모두 돈 많은 사장님들인 줄 알고 받아들였는데 끝난 뒤 네 사람이 각각 3만 원씩 도합 12만 원을 주고 떠나는 바람에 화가 나서 이틀 동안 밥도 굶은 적이 있었다. 그 일로 며칠 동안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 아정은 그 일로 체면이고 뭐고 모든 것을 잃었다. ‘에이스’는 비록 현지에서 가장 좋은 업소가 아니었지만 그나마 소비가 높은 유흥업소 중의 하나이다. 주위에 있는 비슷한 업소에서도 1년 이상 일한 아가씨들의 접대 가격은 몇백만 원부터 시작하는 게 기본이지만 참지 못하고 업소 안에서 직접 해결할 경우에는 사장님이 눈감아주고 가격도 더 적게 받는 경우가 파다했다.
  • 간혹 이 바닥 시가에 대해 잘 모르고 놀러 오는 사람들이 12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정의 상황처럼 한 사람이 3만 원씩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 그 아가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돌기 마련이었다.
  • 그래서인지 여름이 이 일을 입 밖에 낼 때 아정은 이가 부서질 정도로 악물고 있었다.
  • “다들 조용히 해. 내가 여기 있는 거 안 보여? 계속 일하고 싶으면 말 잘 들어. 특히 너희 둘.”
  • 희진은 대놓고 나와 여름을 가리켰다.
  • “너희들도 이젠 그만하는 게 어때? 심원 언니가 그렇게 된 거로는 모자라?”
  • 희진의 아래에서 일하는 다른 한 명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 “됐어. 다른 일 없으면 다들 가서 일해. 오늘 일은 내가 사장님한테 보고드릴 테니까.”
  • 희진은 우리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콧방귀를 뀌더니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나가버렸다.
  • 물론 업소에 별의별 아가씨들이 많다지만 나와 여름은 모두 술만 팔지 몸은 팔지 않는 부류였고 매번 단순히 술만 마시러 온 손님들만 상대했다. 하지만 희진의 아래에 있는 애들은 대부분 접대까지 하는 것을 위주로 했기에 매달 실적이 가장 좋아 희진도 점차 사장님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 하지만 심원 언니한테 그런 일이 나지만 않았다면 희진이 우리를 맡을 기회는 없었을 거다.
  • 그녀는 사장님한테 오늘 일을 보고드리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녀가 우리한테 어떤 일을 떠맡기려고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심원 언니가 곁에 없고 우리한테 뭔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모두 얼굴에 근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예전에 아무리 순결한 열녀라고 해도 희진의 밑에만 들어가면 모두 명령에 복종하고 마지막에는 손님을 접대할 수밖에 없다고 들은 적이 있어 앞으로 닥칠 나날이 걱정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