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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준비

  • 그날 나는 더 이상 잠에 들 수 없었다. 나는 MIX와 에이스가 대체 얼마나 많이 차이 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에이스를 생각하니 난 갑자기 심원 언니와 여름이 생각났고 두 사람이 지금은 어떨지 걱정됐다. 심원 언니의 몸은 괜찮아졌는지, 여름은 나 때문에 화를 입지는 안았는지 걱정돼 미칠 지경이었다.
  • 내가 에이스를 그렇게 엉망으로 헤집어 놓았으니 호식이 그녀들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이스의 사장님도 뒷배가 있기에 호식이 날뛰는 걸 보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날이 거의 밝아서야 다시 잠들었다.
  •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전 9시였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길을 몰라 빨리 출발해야 했다. 서진 도련님은 몇 시에 나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업소는 밤에 영업을 시작해서 날이 밝을 때까지 하는 게 보통이었다.
  • 나는 얼른 준비를 하고는 옷을 갈아입을 때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고민했다. 진 기사가 나를 데리고 옷 쇼핑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일상적인 옷만 구입했지 클럽 같은 곳에서 입을만한 옷은 구매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내가 장사 망치러 온 줄 알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멍하니 서서 뭐하고 있어? 옷 안 갈아입어?”
  • 거울 속에서 보니 서진 도련님이 내 뒤에 나타났다. 언제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의 모든 게 자기 거라는 그가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 그는 이미 옷을 갈아입은듯했다. 검은 재킷의 맨 위의 단추 하나를 풀어헤치고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는 쇄골을 드러낸 그는 훤칠한 키까지 더해져 TV에서 걸어 나온 모델 같았지만 얼굴을 보면 연예인처럼 친근감이 있지는 않았다.
  • “적당한 옷이 없어서요.”
  • 서진 도련님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 “어떤 옷이 적당한 옷이지?”
  • “그런 있잖아요...”
  • 나는 얼굴이 뜨거워났지만 눈 딱 감고 말했다.
  • “살이 많이 드러나는 섹시한 그런 옷이요.”
  • “응?”
  • 서진 도련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고 낯빛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말투도 더욱 딱딱해졌다.
  • “MIX로 출근하려면 그런 옷을 입어야 한다고 누가 그래? 그렇게 가벼운 여자였어?”
  •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유흥업소는 다 똑같은 줄 알았어요.”
  • 서진 도련님이 갑자기 화를 내자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의 팔을 잡고 처음 차에 들이닥칠 때처럼 애원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서진 도련님이 스킨십을 얼마나 싫어하고 심지어 역겨워할 정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터치만은 밀어내지 않는 느낌이었다.
  • 그는 나를 밀어내더니 옷장에 몇 벌 없는 옷 중에서 연얀 노란색 원피스를 꺼내 나한테 주며 말했다.
  • “갈아입어.”
  • 나는 얼른 옷을 들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여기서 갈아입어.”
  • 그의 표정을 힐끔 살폈는데 마치 내가 옷을 갈아입는 걸 지켜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천천히 잠옷 끈을 풀어헤쳤다.
  • 살결이 밖에 드러나자 차가운 느낌이 들어 몹시 불편했고 뒤에서 느껴지는 서진 도련님의 뜨거운 시선 때문에 나는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난 뒤 뒤돌아서니 나는 또 내 상상력이 너무 과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눈빛에서는 욕정이라고 찾아보기 힘들었고 나한테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듯했다.
  • 나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토록 추구하는 바도 욕망도 없는 서진 도련님의 마음속에 앞으로 어떤 여자가 들어갈지 궁금해졌다.
  • 그는 나를 훑어보더니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앞으로 이렇게 입고 다녀. 어울리네.”
  • 칭찬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고, 특히 이렇게나 까다로운 서진 도련님의 칭찬은 더욱 듣기 어려운지라 기분이 좋아졌다. 때문에 그의 뒤를 따라 나갈 때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노란색 원피스 덕에 얼굴이 더욱 화사해 보였고 오랜만에 내 얼굴에서 십대의 생기발랄함까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