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더 이상 잠에 들 수 없었다. 나는 MIX와 에이스가 대체 얼마나 많이 차이 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에이스를 생각하니 난 갑자기 심원 언니와 여름이 생각났고 두 사람이 지금은 어떨지 걱정됐다. 심원 언니의 몸은 괜찮아졌는지, 여름은 나 때문에 화를 입지는 안았는지 걱정돼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에이스를 그렇게 엉망으로 헤집어 놓았으니 호식이 그녀들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이스의 사장님도 뒷배가 있기에 호식이 날뛰는 걸 보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날이 거의 밝아서야 다시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전 9시였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길을 몰라 빨리 출발해야 했다. 서진 도련님은 몇 시에 나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업소는 밤에 영업을 시작해서 날이 밝을 때까지 하는 게 보통이었다.
나는 얼른 준비를 하고는 옷을 갈아입을 때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고민했다. 진 기사가 나를 데리고 옷 쇼핑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일상적인 옷만 구입했지 클럽 같은 곳에서 입을만한 옷은 구매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내가 장사 망치러 온 줄 알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서서 뭐하고 있어? 옷 안 갈아입어?”
거울 속에서 보니 서진 도련님이 내 뒤에 나타났다. 언제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의 모든 게 자기 거라는 그가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그는 이미 옷을 갈아입은듯했다. 검은 재킷의 맨 위의 단추 하나를 풀어헤치고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는 쇄골을 드러낸 그는 훤칠한 키까지 더해져 TV에서 걸어 나온 모델 같았지만 얼굴을 보면 연예인처럼 친근감이 있지는 않았다.
“적당한 옷이 없어서요.”
서진 도련님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옷이 적당한 옷이지?”
“그런 있잖아요...”
나는 얼굴이 뜨거워났지만 눈 딱 감고 말했다.
“살이 많이 드러나는 섹시한 그런 옷이요.”
“응?”
서진 도련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고 낯빛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말투도 더욱 딱딱해졌다.
“MIX로 출근하려면 그런 옷을 입어야 한다고 누가 그래? 그렇게 가벼운 여자였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유흥업소는 다 똑같은 줄 알았어요.”
서진 도련님이 갑자기 화를 내자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의 팔을 잡고 처음 차에 들이닥칠 때처럼 애원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서진 도련님이 스킨십을 얼마나 싫어하고 심지어 역겨워할 정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터치만은 밀어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는 나를 밀어내더니 옷장에 몇 벌 없는 옷 중에서 연얀 노란색 원피스를 꺼내 나한테 주며 말했다.
“갈아입어.”
나는 얼른 옷을 들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기서 갈아입어.”
그의 표정을 힐끔 살폈는데 마치 내가 옷을 갈아입는 걸 지켜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천천히 잠옷 끈을 풀어헤쳤다.
살결이 밖에 드러나자 차가운 느낌이 들어 몹시 불편했고 뒤에서 느껴지는 서진 도련님의 뜨거운 시선 때문에 나는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난 뒤 뒤돌아서니 나는 또 내 상상력이 너무 과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눈빛에서는 욕정이라고 찾아보기 힘들었고 나한테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듯했다.
나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토록 추구하는 바도 욕망도 없는 서진 도련님의 마음속에 앞으로 어떤 여자가 들어갈지 궁금해졌다.
그는 나를 훑어보더니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 이렇게 입고 다녀. 어울리네.”
칭찬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고, 특히 이렇게나 까다로운 서진 도련님의 칭찬은 더욱 듣기 어려운지라 기분이 좋아졌다. 때문에 그의 뒤를 따라 나갈 때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노란색 원피스 덕에 얼굴이 더욱 화사해 보였고 오랜만에 내 얼굴에서 십대의 생기발랄함까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