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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누나들이 날 너무 좋아함

예쁜 누나들이 날 너무 좋아함

블리스봇

Last update: 2024-05-11

제1화 천합의 왕의 귀환!

  • 7월의 양성, 불길처럼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시내 한복판,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몸집이 가냘픈 청년 하나가 묵묵히 이 익숙하고도 낯선 도시를 주시하고 있었다.
  • “15년 만에 드디어 돌아왔네. 나의 일곱 누이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 청년이 조용하게 읊조렸다.
  • 그의 이름은 육은성으로 부모 하나 없는 고아였다. 어려서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육은성에게는 그를 가족처럼 아껴주던, 혈연관계가 없는 일곱 누나들이 있었다.
  • 그녀들이 제일 좋아하던 게임이 바로 육은성과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일곱 누나들은 육은성에게 꼭 함께 시집가겠노라 약속했었다.
  • 그때의 육은성은 고작 5살이었는데도 벌써 세상일에 다 눈 뜬 것처럼 애티가 나는 목소리로 우린 3, 4살의 어린애가 아니라면서, 말하면 말한대로 꼭 해야 한다고 누나들한테 으름장을 놓았었다.
  • 일곱 누나들은 그런 육은성의 새끼손가락에 본인들의 새끼손가락을 건 채 엄지를 서로 맞대고 도장을 찍으며 약속하겠노라 다짐했다.
  • 그렇게 매일밤 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육은성의 생활은, 보육원에 일어난 커다란 화재로 인해 무참히 박살나버렸다.
  • 맹렬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와중에 일곱 누나들은 스스로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육은성을 찾으러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탓에 결국 여덟 사람 모두 다 화염 속에 갇히고 말았다.
  • 잔뜩 겁먹은 육은성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본인도 당황했을 텐데 큰 누나는 작은 육은성을 품에 안으며 무서워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었다.
  • 불길이 보육원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 서로 꽉 끌어안은 여덟 명의 아이들은 곧 짙은 연기를 들이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의식을 차츰 잃어갔다.
  • 어린 육은성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펼쳐진 건 여전히 불바다였다. 그러나 좀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앞에 언제인지 모르게 늙은 도사 하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 속에서도 늙은 도사의 옷은 탄 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기만 했다.
  • 어린 육은성은 제가 환각을 보고 있는 줄로만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 그때 늙은 도사가 입을 열었다.
  • “내가 네 누이들을 구해줄 수 있단다. 물론 네가 날 사부님으로 모신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 늙은 도사의 말은 육은성에게 그야말로 구명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고민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리라는 의식도 전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 보육원을 떠난 후 늙은 도사는 육은성을 한 사원으로 데려와 그에게 의술, 무공, 영법 등을 배워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명신공까지 하나 수련하게 만들었다.
  • 그렇게 시간이 10년이나 훌쩍 지나갔다.
  • 15살이 된 육은성은 이제 양성으로 드디어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 건만, 그의 소망과는 달리 늙은 도사는 이번에 그를 변방의 전쟁터로 보내버렸다.
  • 그곳에서 육은성은 또 5년이라는 세월을 있었다.
  • 5년간 전쟁터를 전전하며 살육이 난무했고 피바람이 몰아쳤다. 그때를 기점으로 ‘천합’이라 불리는 거대한 조직 하나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 천합에 속한 36개의 별은 하나같이 모두 난다긴다하는 신장들이었고, 그들이 사방을 굳건히 지키고 있기 시작하면서부터 용국은 그 아무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
  • 그리고 이 엄청난 조직을 이끄는 그들의 왕, 운천신군은 자신의 어릴적 추억이 살아있는 양성으로 조용히 발을 들였다.
  • 지나간 시간을 다시 되돌아 보자니 정말 꿈만 같았다.
  • 정말이었다.
  •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경력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든 지간에 육은성은 모두 터무니 없는 얘기라고 여겼을 것이다.
  • 햇살보육원은 아직 같은 자리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육은성의 심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 15년 전의 그 화재사고로 보육원은 사회 각 계층들의 광범위한 관심을 끌었다.
  • 보육원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손길을 보내왔고, 보육원은 원래의 기와장 몇 장 얹은 허름한 주택에서 순식간에 작은 빌딩으로 탈바꿈했다.
  • 비록 여러 방면에서 조건이나 시설 모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지만, 필경 이제는 육은성이 알던 익숙한 그곳이 아니게 돼버렸다.
  • 그건 그렇고, 그래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마주한 순간 육은성은 마음 속의 낯선 감정이 눈 녹듯 일초 만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과 일곱 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 역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거였어. 보육원은 여전히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 육은성은 보육원 직원을 찾아 제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돋보기를 쓴 중년 여성이 그의 앞에 나타나 의혹이 담긴 눈길을 보내왔다.
  • “제가 햇살보육원의 원장입니다만, 누구를 찾으시는 거죠?”
  • “그쪽이 원장이라고요?”
  • 육은성은 순간 멍을 때렸다.
  • 그의 기억 속 햇살보육원 원장은 오 씨 성을 가진 자애로운 할아버지였지, 절대 지금 그의 눈앞에 선 중년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중년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제가 이곳 원장직을 맡은지 벌써 십여 년이 흘렀어요. 보아하니 저를 찾으러 온 게 아니신 모양이죠?”
  • “저 오씨 성을 가지신 할아버지를 찾으러 왔습니다.”
  • “아, 원래 여기 원장님이셨던 그분을 찾으시는구나. 그분 은퇴하신지 벌써 오랜데요.”
  • 전의 원장님을 찾으러 왔다는 육은성의 말에 중년 여인은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친절한 태도로 바꿨다.
  • 그러나 육은성의 표정은 오히려 찌푸려졌다.
  • 할아버지 원장님이 이미 은퇴하셨다니, 그것도 중년 여인의 말을 들어보면 은퇴하신지 벌써 십여 년이나 흐른 모양이었다.
  • 혹시 그 화재사건 때문에 그런 건가?
  • 육은성은 다급한 어조로 캐물었다.
  • “그럼 혹시 할아버지 원장님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종이에 적어 드릴게요.”
  • 뒤돌아서 사무실로 들어선 중년 여인은 곧 주소가 적힌 메모장 하나를 들고 나와 육은성에게 건네주었다.
  • “감사합니다.”
  • 중년 여인이 준 쪽지에 적힌 주소를 따라 육은성은 한 낡은 주택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 저 멀리 보이는 주택 앞에 백발이 무성한 늙은 할아버지 한 명이 구부정한 허리로 마당을 쓸고 있는 게 보였다.
  • 육은성은 한눈에 그가 햇살보육원의 원래 원장임을 알아봤다.
  • 15년을 못 본 새에 저렇게나 많이 늙으셨단 말인가?
  • 마음이 시큰해진 육은성이 발걸음을 서두르려던 찰나, 이어서 발생한 장면 하나가 그의 마음에 불길을 지피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 빗자루를 쓸고 있는 할아버지 원장님 곁으로 갑자기 꽃무늬 남방을 입은 청년 하나가 나타나더니 그를 힘껏 밀며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 “어이, 영감탱이. 돈 어딨어? 빨리 돈 내놔. 그 여자들이 당신한테 매달 돈 부치는 거 아니까 숨길 생각 말고, 어?”
  • 훤한 대낮에 대놓고 강도짓이라니!
  • 육은성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쏜살같이 튀어가 꽃무늬 남방을 입은 청년의 옷깃을 꽉 그러쥐었다.
  • “어디 뺏을 사람이 없어서 노인의 돈까지 뺏어!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짐승만도 못한 자식!”
  • “켁켁…”
  • 꽃무늬 남방을 입은 청년은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올 줄 몰랐다는 듯 당황스런 얼굴을 했다가 곧바로 침착한 척 애쓰려 했다.
  • “이… 이거 놔, 새꺄! 우리 집안일에 네까짓 게 뭔데 끼어들어?”
  • “집안일?”
  • 이번에는 육은성이 당황할 차례였다.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 돌려 할아버지 원장님을 돌아보자 침울한 표정을 한 오 원장이 탄식하며 말했다.
  • “맞습니다. 저놈이 날강도나 그런 건 아니고, 염강이라고 제가 입양한 아이지요.”
  • 염강이라고?
  • 그래, 그 염강이었던 거구나!
  • 육은성은 꽃남방을 입은 청년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가 겨우 그를 알아봤다. 어쩐지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 남자는 어릴적 육은성을 자주 괴롭혀서 일곱 누나들한테 머리에 혹이 날 정도로 맞은 적이 있었던 염강이었다.
  • 그런데 염강을 왜 할아버지 원장님이 입양하게 된 거지?
  • 육은성이 생각하느라 넋이 나간 틈을 타 염강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 격렬하게 기침해댔다. 한참 뒤에야 제 호흡을 되찾은 그가 악에 받쳐 소리질렀다.
  • “씨발 새끼, 그러게 무슨 되도 않는 오지랖을 부려! 이제 우리 집안일인 걸 알게 됐으니 빨리 꺼지기나 해!”
  • 무시무시한 눈길로 육은성을 노려봐준 뒤 염강은 이번에 오문덕을 향해 고함을 쳤다.
  • “늙은 영감탱이, 나를 입양했으면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했어야지.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대체 나를 입양은 왜 한 거야!”
  • “그 여자들이 보낸 돈은 어쨌어? 빨리 내놔! 그렇게 꿍쳐두고 있다가 왜 관까지 들고가서 쓰게? 이제 살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내가 잘 돼야 할아범이 죽어도 내가 장례를 치러줄 거 아냐. 그 돈을 나한테 안 주면 뒀다가 누구 쓰라고 줄 건데? 뇌는 어디에 빼다 두고 다니는지 원!”
  • 시간이 흐를수록 염강의 입에서 도를 넘는 언사가 내뱉어졌다.
  • 오문덕의 쇠약한 체구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머리만 수그릴 뿐 염강의 욕설을 그대로 받아내고만 있었다.
  • 육은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바닥을 펼쳐 크게 휘둘렀다.
  • 짝!
  • “이건 할 말 못 할 말을 가릴줄 모르고 어른을 공경하지 않은 죄!”
  • 짝!
  • “이건 은혜를 원수로 되갚는 짐승만도 못한 죄!”
  • 짝!
  • “이건 멀쩡한 눈 뜨고도 용을 알아보지 못한 죄로 때리는 거니까 잘 새겨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