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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상황정리 (상)

  • 맨 처음 유지빈이 나서서 여선우를 향해 비난을 시작했을 때, 육은성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 그는 가까스로 화를 억제하고 있었다.
  •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이런 수법으로 제 누나를 괴롭혀 왔는지 모조리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에서였다.
  • 곽휘용!
  • 하선철!
  • 장호영!
  • 서준!
  • 염강!
  • 그리고 거기에 고안별까지!
  •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선우의 주변 사람들이 튀어나와 그녀를 모함하고 비방했다.
  • 그리고 진실을 파헤칠 의무가 있는 기자들마저도 일방적인 말만 듣고 아무런 실질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여선우를 비평하고 나무랐다.
  • 육은성의 마음 속에 분노의 불길이 차곡차곡 쌓였다.
  • 그때, 상황파악이 안 되는 유지빈이 또 다시 나서서 육은성을 가리키며 고성을 질렀다.
  • “저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바로 여 대표님이 스폰한다던 기생오라비예요!”
  • 슉!
  • 육은성의 인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유지빈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 “씨! 발! 새! 끼! 너! 말! 다! 했! 어?”
  • 유지빈의 머리를 틀어쥔 그가 옆의 테이블을 향해 한 글자에 한 번씩 내리치며 분노했다. 유지빈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피로 흥건해졌다.
  • “당신… 당신 야만인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사람을 때려!”
  • 주위의 기자들이 먼저 정신 차리고 육은성에게 호통 쳤다.
  • 피투성이가 된 유지빈도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고함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여기 다 봤죠? 이 사람이 얼마나 포악한 사람인지! 빨리 다 찍어요. 저 이 새끼를 감방에 무조건 처넣을 거니! 으악!”
  • 그의 귀띔이 없었더라도 카메라를 든 감독들은 이미 모든 과정을 화면에 담고 있었고, 기자들도 휴대폰을 꺼내 연신 셔터를 눌렀다.
  • “아직도 입이 살았네!”
  • 육은성은 짐짝 들듯 유지빈을 들어 무대 위로 올라갔다.
  • “지금 당장 빔 프로젝터를 켜고 여기 드라이브에 저장된 파일을 재생하세요.”
  • 런칭회 진행을 도와주고 있던 스텝에게 지시가 내려졌다.
  • 팍!
  • 곧바로 빔 프로젝터에 불이 들어오고, 대화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장내에 울렸다.
  • “이 대표님, 저 방금 전에 제 아우 같은 하선철이라는 자를 여 대표 운전기사로 붙여뒀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여 대표의 누드 사진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 “잘 하셨습니다. 제일 좋기는 선우 그룹이 상장하기 전에 그 사진을 인터넷에 뿌리는 게 좋은데. 이번 기회에 선우 그룹을 아예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려야죠.”
  • “저기, 저희한테 주기로 약속하신 돈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 “걱정 마세요.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한푼도 적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 제일 먼저 재생된 건 한 음성 파일이었다. 딱 들어도 대화하고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유지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음성 파일이 끝난 후 무대 위 스크린에 사진 두 장이 갑자기 떴다.
  • 한 장은 유지빈의 가족사진이었고, 다른 한 장은 침대 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 침대에는 총 세 사람이 있었는데 각각 유지빈, 하선철, 그리고 한 여인이었다.
  • 옆에 있는 가족사진과 비교해 봤을 때 그 여인의 정체가 유지빈의 와이프라는 걸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 장내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 분노의 화살이 이번에 유지빈과 하선철에게로 돌려졌다.
  • “진정한 쓰레기가 저 사람들이었네!”
  • “감히 우리의 감정을 갖고 놀아? 이 쓰레기만도 못한 개자식들아!”
  • “아까 음성 파일에서 이 대표님이라고 불린 사람이 예인 그룹의 이고헌 대표랑 목소리가 똑같던데? 라이벌 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이런 더러운 짓도 서슴치 않다니. 정말 실망이야!”
  • “여러분, 다들 같이 예인 그룹의 행각을 폭로합시다! 사람들에게 예인 그룹의 제품을 보이콧하라고 까발리는 겁니다!”
  • 기자들의 가시 돋친 언쟁에 유지빈은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잊은 채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 어떻게 이럴 수가?
  • 방금 전 재생된 음성 파일은 그가 몰래 녹음한 음성으로, 이고헌이 혹시라도 나중에 가서 약속을 번복할까 봐 그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 그런데 그걸 어떻게 육은성이 갖고 있는 거지? 그것도 제 비밀이 담긴 사진까지 함께?
  • 유진은 완전한 절망에 빠져버렸다.
  • 기자들이 여전히 한 마디씩 비난을 던지는 가운데 육은성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 “다들 닥쳐!”
  • 커다란 회의실 전체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 육은성의 예리한 시선 한 방에 기자들은 등 뒤에 칼날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남을 질책하기 전에 본인들한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
  • 이 자리에 모인 매체들은 다른 사람의 약점 하나만 잡으면 죽일 듯이 그것만 공격하면서, 정작 그게 오해임이 드러나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양심 없는 작자들이었다.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든 그들과는 관련 없는 일인 것이다.
  • “당신들 모두가 여 대표님한테 사과해야 해. 그러니까 무릎 꿇어!”
  • 정적이 이어지고 아무도 무릎 꿇는 사람이 없었다. 여선우를 오해한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무릎까지 꿇으라는 건 너무 과분한 요구 아닌가, 라는 게 기자들의 생각이었다.
  • “큰 소리 치기는.”
  • 그때 서준이 콧방귀를 뀌며 나섰다.
  • “방금 전 그것들은 유지빈 씨가 더 비열한 수법을 썼다는 것만 입증할 수 있지, 여 대표님이 그쪽을 스폰한 사실과, 배은망덕한 사실이 가려지는 건 아니에요.”
  • 육은성이 유지빈에게 반격할 증거를 갖고 나온 건 의외지만, 그렇다고 전체적인 국면을 바꾸기에는 부족했다. 아직은 모든 게 그의 컨트롤 하에 있었다.
  • “서준 도련님 말이 맞습니다. 유지빈 씨가 좋은 사람이 못 되지만 여선우 씨도 피차 마찬가지입니다!”
  • 곧바로 기자 하나가 서준의 말을 이어 받으며 말했다.
  • 육은성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제일 먼저 서준을 폐기해야 될 명단에 넣었다.
  • “여 대표님은 제가 존경하는 누나일뿐, 그게 다입니다.”
  • “증거는요?”
  • 제일 먼저 시비를 걸었던 여기자가 그를 향해 물었다.
  • “그걸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 대표님이랑 정말 무슨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당신 같은 년한테 보고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뭐… 이보세요. 지금 그쪽이 저한테 인신공격을 한 거예요?”
  • “인신공격?”
  • 코웃음 친 육은성이 돌연 폭발적인 살기를 내뿜으며 여기자의 몸 속에 주입해 넣었다.
  • “다시 한 번 지껄여 봐. 내가 널 죽일 수 있나 없나 보게.”
  • 털썩!
  • 다리에 힘이 풀린 여기자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엉덩이를 감싼 하얀 치마 밑으로 갑자기 코를 찌르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여기자가 겁을 먹고 오줌을 지린 것이었다.
  • 방금 그 순간에, 여기자는 마치 무서운 악마가 옆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 입에서 한 마디라도 더 튀어나오면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기분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 육은성이 시선을 옮겨 이번에는 염강을 쳐다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염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 “너 방금 뭐랬어? 선우 누나가 어렸을 때 너 괴롭혔다고?”
  • “네가 선우 누나한테 돈 빌린 게 원장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 “선우 누나가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육은성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염강은 연신 뒤로 물러나며 핏기 잃은 얼굴을 했다.
  • “나… 나…”
  • 염강의 몸이 속절없이 떨렸다. 무시무시한 한기가 그를 향해 쏘아져오자 긴장으로 인해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 이런 기분은 마치 사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줄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내가 그런 거…”
  •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압박감에 못 이겨 제 잘못을 승인하려는데, 서준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 “당신 사람 협박하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뭔데?”
  • 퍽!
  • 서준이 입을 뗌과 동시에 따귀가 날아들고, 피 묻은 이빨 3개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 “병신. 내가 말하고 있는데 어디서 자꾸 끼어들어. 내가 봐 주니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