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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고작 서 씨 가문이 감히?

  • 선우 빌딩 엘리베이터 안.
  • 고안별은 제 옆에 선 남자를 연신 힐끔 힐끔 보며 때때로 경시의 눈빛을 했다.
  • 여선우와 오래 일해온 그녀로서 여선우에게 남동생이라 함은 딱 하나, 제대로 된 직업조차 없는 염강만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 육은성이라는 이름은 오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자기조차 모르는 인물이 여선우의 남동생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 그렇다고 육은성이 술집 남자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이상하기는 했다.
  • 평범한 옷차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분위기, 생긴 건 그럭저럭 합격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잘생긴 건 또 아니었다. 적어도 여선우에게 어울릴 정도는 아니었다.
  • “무슨 수법으로 여 대표님한테 꼬리친 건진 모르겠지만 대표님이랑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선우 그룹이 어떻게 오늘날의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그런데 고작 당신 때문에 회사 상장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당신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 “그리고 나무에 오르기 전에 자기가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없는지 잘 생각해 보고 오르세요. 괜히 쉽게 열매 따보겠다고 함부로 올랐다가 굴러떨어지지 말고.”
  • 주절주절 떠드는 고안별의 어투에 육은성을 향한 경멸로 가득찼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모든 걸 쉽게 쉽게 가려는 이런 종족이 제일 꼴보기 싫었다.
  • “제 말 듣고 있기나 합니까?”
  • 상대방에게서 아무런 대꾸도 없자 고안별이 발을 구르며 캐물었다.
  • 이렇게까지나 많이 말한 것도 다 육은성이 제 주제를 알았으면 해서 한 거였는데, 육은성은 그저 별 표정 변화 없이 나무 막대기처럼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 제 화를 이기지 못한 고안별이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거렸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서야 육은성은 담담하게 답했다.
  • “고 비서님 심정을 이해합니다만 제 일처리 방식에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 “뭐라고요?”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잠시 정신이 아득해진 고은별은 치미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밖을 쫓아가 육은성에게 욕을 박으려 했다.
  • 그때 두 사람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누군가 때문에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화가 생겼다.
  • 금색 안경테, 베르*체 정장, 까르*에 시계, 온몸에 최고급 명품을 두른 서 씨 가문의 도련님 서준이 부잣집 자제의 기운을 풍기며 우아하게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 “안별 씨, 선우 씨가 웬 기생오라비 같은 놈을 데리고 왔다는 게 사실이에요?”
  • 서준은 여선우를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한 마디로 여선우에 열광하는 자로 선우 그룹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을 수 있도록 감시자를 엄청 많이 심어놨다.
  • 그런 이유로 여선우가 못 보던 남자를 데리고 나타나자마자 바로 선우 그룹에 쳐들어올 수 있었다.
  • “아닙니다, 서준 도련님. 어디에서 들으신 소문이신지는 몰라도 저희 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다른 남자한테 눈을 돌릴 분이 아니시라는 거.”
  • 서준은 안도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 “하긴. 선우 씨가 그런 황당한 짓을 할 리가 없지.”
  • 여선우를 위해 변명하면서도 고안별은 사실 속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서준을 흠모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좋아하는 건 여선우인걸.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고안별은 문득 육은성을 더 살벌하게 쏘아보았다.
  • 대체 서준 도련님과 비교했을 때 육은성이 더 잘난 게 뭔데 여선우가 저딴 남자한테 마음이 움직인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고안별의 뚫어질 듯한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육은성이 불쑥 폭탄발언을 했다.
  • “제가 그 기생오라비입니다만.”
  • 홱!
  • 고안별과 서준의 고개가 동시에 육은성에게로 돌아갔다.
  • 주위의 온도가 갑자기 싸늘하게 얼어붙은 듯했다.
  •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고안별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육은성에게 쏘아붙였다.
  • “육은성 씨, 그게 대체 무슨 망발입니까! 여 대표님이랑 그쪽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 고안별이 눈에 불을 켜며 눈치를 주는데도 육은성은 아무 느낌 없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
  • “이게 속인다고 될 일인가요. 저랑 누나가 같이 들어올 때 그걸 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 쿵!
  •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고안별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 끝났다. 모든 게 다 끝장났어.
  • 저 죽일놈의 육은성이 선우 그룹을 망쳐 놓으려고 작정한 게 틀림 없어!
  • 서준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육은성을 주시하며 말했다.
  • “한 번만 다시 선우 씨와의 관계를 해명할 기회를 줄게.”
  • “선우 누나는 제가 한평생을 바쳐 지켜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 육은성은 제 감정 그대로를 솔직하게 말했다.
  • “아직도 헛소리에요?”
  • 참을 수가 없어진 고은별이 손을 들어 육은성에게 따귀를 날리려 했다. 그러나 육은성에게 무력하게 팔목이 잡히고 말았다.
  • “누나 친구라고 제가 그쪽 때리지 못할 것 같아요?”
  • 싸늘한 육은성의 눈빛에 고안별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끼며 한 마디도 뱉을 수가 없었다.
  • 그때 서준이 차갑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 “새꺄, 너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지?”
  • “모릅니다.”
  • “그렇다면 알려줄게. 내가 바로 양성 서 씨 가문의 후계자 서준이다.”
  • “그런데요?”
  • “뭐라고?”
  • 서준은 별 멍청한 놈을 다 보겠다는 듯 육은성을 쳐다봤다.
  • “우리 서 씨 가문은 선우 그룹의 최대 거래처이지. 우리가 선우 그룹과의 거래를 끊으면 선우 그룹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 드디어 내가 제일 걱정하던 일이 터졌구나!
  • 고안별의 몸이 흠칫 떨렸다. 육은성은 선우 그룹을 망치러 온 재난인 게 틀림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더 큰 폭탄이 뒤에 이어졌다.
  • 육은성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 “양성은 고사하고 경성의 재벌 가문들도 내 앞에서 이렇게까지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데 고작 서 씨 가문이 감히?”
  • 육은성의 말 한 마디면 거래처가 무엇인가, 서 씨 가문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강력한 세력에서 무릎 꿇고 제발 협력해달라고 선우 그룹에 찾아올 것이다.
  • 그러니 고작 서 씨 가문을 육은성이 아쉬워 할 리가 없었다.
  • 고안별은 제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육은성은 선우 그룹을 망치러 온 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재기할 기회조차 없게 아예 공중분해 시키러 온 게 분명했다.
  • “지금! 당장! 서준 도련님께 무릎 꿇고 사과하세요!”
  • 고안별이 악을 쓰며 명령했다.
  • 짝!
  •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건 경쾌한 싸다귀를 때리는 소리였다.
  •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 여선우는 대체 어디에서 이런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야만인을 데리고 왔단 말인가.
  • 고안별은 화끈거리는 뺨을 부여잡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선우 씨를 만나야겠어!”
  • 직접 여선우를 만나 캐물을 생각으로 서준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마침 여선우가 안에서 걸어나왔다.
  •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가 내선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전해 들은 그녀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엘리베이터를 잡고 내려왔다.
  • 그러나 지금 보니 아무래도 이미 늦은 듯했다.
  • “선우 씨, 마침 잘 왔네요. 이 놈 대체 누군지 빨리 말해요.”
  • 서준이 큰소리로 다그쳤다.
  • 여선우는 원래 해명하려 내려왔다가 서준의 캐묻는 듯한 말투에 순간 빈정이 상해 말이 곱지 않게 나갔다.
  • “저 분이 저랑 무슨 사이인지 서준 씨와는 아무 상관 없지 않나요?”
  • 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그락붉으락해졌다.
  • 평소에 온갖 고상한 척을 다 떨어대더니 뒤에서는 술집 남자를 스폰하고 다녔단 말이야? 수치를 몰라도 유분수지!
  • “여선우 씨, 선우 그룹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 누구 덕분이었는지 잊은 거 아니죠? 지금 저희 서 씨 가문이랑 협력이 끊겨도 상관없다는 그 말인가요?”
  •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 서 씨 가문과의 거래가 끊기면 선우 그룹에 얼마나 큰 충격이 가해질지 여선우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마치 자기 소유물처럼 여기는 서준의 태도를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
  • 여선우는 육은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나의 유일한 남동생을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