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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상황정리 (중)

  •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등잔만하게 커졌다.
  • 서 씨 가문의 도련님한테 감히 손을 대다니! 저거 완전 미친놈이네!
  • 고안별이 얼른 달려가 서준을 부축하고 서며 육은성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 “넌 이제 끝났어! 여선우도 끝이고 선우 그룹의 모든 직원들도 이제 다 끝이야!”
  • 그녀는 한발 먼저 선우 그룹을 벗어났음에 안도했다. 아니면 지금쯤 육은성 저 미친놈 때문에 화를 입었을 게 분명했다.
  • 고안별의 노성에 선우 그룹의 직원들의 심장이 모두 쿵하고 내려앉았다.
  • 그녀의 말대로 육은성의 싸다귀는 선우 그룹을 망쳐놨을 뿐만 아니라, 서 씨 가문으로부터 회사에 속해 있던 직원 전체가 적으로 돌려지게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육은성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끝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실렸다.
  • “개자식! 죽어 버려! 너희들 오늘 전부 여기서 다 죽을 줄 알아!!”
  • 서준이 온몸으로 살기를 내뿜었다.
  • 그의 이빨도 부러졌고, 안경도 박살났다. 그리고 존엄 또한 무참히 짓밟혔다. 그러니 육은성을 조지지 않고서야 이 끓어오르는 화를 도무지 풀 방법이 없었다.
  • 선우 그룹의 사람들 또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서준의 폭발에 공포감이 그들의 이성을 침식해 버렸다.
  •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육은성 만이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여유 시간 줄 테니까 사람 부를 거면 다 불러. 네가 날 어떻게 죽일 건지 두고 보자고.”
  • 선우 그룹의 직원들은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중 한 사람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둥대며 말했다.
  • “서준 도련님, 저 지금 당장 사직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 “늦었어! 저 개자식을 죽이고 난 뒤 다음 순서가 바로 너야!”
  •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모든 분노를 육은성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육은성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을 게 뻔했다.
  • 한편, 스텝 하나가 잠시 다른 방으로 옮겨둔 여선우를 깨우며 초조하게 그녀를 불렀다.
  • “대표님, 큰일 났어요!”
  • 겨우 정신 차린 그녀는 스텝의 말을 들은 뒤 핏기가 가신 얼굴로 회의실에 우당탕탕 들어서며 소리쳤다.
  • “서준 도련님! 죄송해요, 서준 도련님!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 “흥. 이제야 서준 도련님이라고 날 부르네? 이제 와서 죄송하다면 다야? 너 예전에 엄청 도도했잖아. 나한테 불쾌한 티 내는 거 네 특기였잖아. 어디 다시 한 번 고상한 척 굴어 봐, 이 걸레 같은 년아!”
  • 퍽!
  • 또 다시 날아온 싸다귀에 날아간 서준이 부러진 이를 쿨럭하고 뱉었다.
  • “똑바로 말 해!”
  • 육은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 그리고 다음 순간, 짝하는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그러나 이번에 맞은 건 육은성이었다.
  • 육은성은 잠시 넉나간 표정을 했다. 원래 피할 수 있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뺨을 날린 사람이 여선우였기 때문이다.
  • “육은성, 너 미쳤어?”
  • 겉으로는 육은성을 향해 고함을 치고 있었으나 여선우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만 아니었어도 그녀는 절대 육은성에게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
  • 여선우의 따귀는 사실 육은성을 위해 날린 것이었다. 그가 일을 더 크게 벌이지 말았으면 해서였다.
  • 그때 회의실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기세흉흉한 열몇 명의 검은 정장 경호원들이 우루루 들어오더니 마지막으로 중년 남성 하나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 “아버지, 저 지금 맞고 있어요. 빨리 저 대신 복수 해 주세요!”
  • 서준이 울부짖으며 중년 남성을 향해 기어갔다. 그의 발음이 벌써 새기 시작했다.
  • 서국형은 형편 없어진 아들의 몰골을 보고 순식간에 분노를 터뜨렸다.
  • “어떤 새끼야! 빨리 굴러와서 어서 사죄하지 못 해?”
  • “제가 때린…”
  • 육은성이 나서기 전에 가냘픈 인영 하나가 그의 모습을 가리며 서국형의 앞에 섰다.
  • “너야?”
  • 서국형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는 당연히 고작 여자 따위가 제 아들을 이렇게까지 때려놨다는 걸 믿지 않았다.
  •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저 기생오라비를 감싸고 드는 거야?
  • 선우 그룹의 직원들이 미간을 찌푸리던 그때, 고안별이 갑자기 나서며 입을 열었다.
  • “저 사람이 아니고, 저 사람 뒤에 있는 남자가 그런 거예요!”
  • 서국형의 살벌한 눈빛이 여선우를 지나쳐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육은성에게로 꽂혔다.
  • 고안별이 비웃으며 말했다.
  • “남한테 빌붙어 밥그릇이나 축 내는 새끼, 너 아까 엄청 센 척했잖아!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꼬리를 말고 여자 뒤에 숨어만 있어?”
  • “닥쳐, 고안별!”
  • 여선우가 으름장을 놓았다.
  • “하, 여선우. 나 이제 선우 그룹 직원이 아니야. 네 말 들을 필요 없다고.”
  • “너…”
  • 여선우가 뭐라고 더 윽박지르려는데 커다란 손 하나가 그녀의 어깨에 턱 얹으며 열기를 전해왔다.
  • “누나, 내가 한 일 나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 나 충분히 감당할 만하니까 걱정하지 마.”
  • 육은성이 그녀를 돌아 앞으로 나섰다.
  • 여선우는 그에게 네가 무슨 수로 감당할 거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육은성의 등을 본 순간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말았다.
  • 육은성의 등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녀에게 묘한 안정감을 안겨 주었다.
  • 특히 침착하게 울리는 육은성의 목소리가 마치 모든 걸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했다.
  • 하지만 서 씨 가문이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
  • 여선우의 우려를 뒤로 하고 육은성은 천천히 서국형의 앞으로 걸어가 섰다.
  • “그 개자식을 제가 때렸는데. 왜요, 뭐 문제 있나요?”
  • 문제가 있냐고?
  • 서국형뿐만 아니라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저렇게 처참히 발라놓고 당당하게 뭐가 문제냐고 물은 건가?
  • 더 황당한 건 서준의 아버지 앞에서 서준을 개자식이라고 부르는 육은성의 뻔뻔함이었다.
  • 짙은 화약 냄새가 드넓은 회의실 전체에 퍼졌다.
  • 고안별, 장호영, 곽휘용 등 사람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육은성이 죽음을 자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하루 빨리 서준의 편에 선 게 정말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라는 생각들이었다.
  • “그래. 이 씨발새끼야. 어디 끝까지 그렇게 잘난 척 할 수 있나 두고 보자. 저 새끼 당장 죽여!”
  • 서국형의 이를 악문 명령과 함께 그의 등 뒤에 선 열몇 명의 경호원들이 일제히 육은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 “으악!”
  • 한순간에 현장이 아수라장 되고 기자들과 선우 그룹 직원들이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거나 구석으로 도망치는 둥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 그러나 그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게도 육은성은 아주 태연한 얼굴로 작게 기합을 넣을 뿐이었다.
  • “꺼져!”
  • 거대한 몸집의 경호원들이 일시에 머리가 하얘지면서 대뇌에 공백이 생겼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육은성에게 당해 바닥으로 내쳐진 뒤였다.
  • “이… 이 쓸모 없는 새끼들! 다들 주먹 안 휘두르고 뭐하는 거야!”
  • 서국형이 뒤에서 호통 쳤다. 그의 눈에는 경호원들이 마치 육은성의 움직임에 맞춰주는 것처럼 연기하는 걸로 보였다.
  • 그 순간 갑자기 서국형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다래졌다. 어느샌가 육은성이 그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