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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염강의 비틀린 질투!

  • 마지막 귀싸대기를 맞은 염강은 철퍼덕하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 ‘저거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미친놈이지?’
  • 넋이 잠깐 나갔다가 곧바로 제정신을 차린 염강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 “이 씹새끼!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내맘이지, 너 같은 개자식이랑 뭔 상관인데!”
  • “나랑 상관 없다고?”
  • 육은성의 싸늘한 시선이 불쑥 날아들었다.
  • “눈 똑똑히 뜨고 내가 누군지 제대로 봐!”
  • 차가운 호령과 함께 염강이 얼빠진 표정을 했다. 육은성의 얼굴에 고정된 시선이 진지하게 상대방의 오관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염강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15년 전 자신이 자주 괴롭혔던 연약한 아이의 얼굴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자리한 얼굴과 중첩되면서 완벽하게 일치한 얼굴을 했다.
  • “그럴 리가 없어…”
  • 염강은 있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목끝까지 올라온 이름이 꾸물거리며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지금 상황이 그에게는 너무도 황당하게 느껴졌다.
  • “많이 놀랍지?”
  • 육은성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 “어렸을 때 너 틈만 나면 나 괴롭혔잖아. 내 신발에 오줌을 싸는가 하면, 크레파스로 내 옷에 일부러 낙서도 했었고. 그리고 분명 네가 잘못한 일인데도 여러 번이나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바람에 내가 원장님한테 혼난 일도 부지기수였지. 이런 것들 이제 기억 안 나는 거야?”
  • 걔다, 역시 걔였어!
  • 염강이 크게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경악했다. 그한테 무수한 괴롭힘을 당했던 육은성이 돌아왔다.
  • “너 그 화재 때 왜 죽어버리지 않았어? 왜 갑자기 나타나서 내 생활을 망쳐버리려고 하는 건데!”
  • 염강의 정서가 몹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 “내가 누나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런데 누나들은 나를 동생으로 전혀 인정해 주지 않았어. 자신들한텐 동생이 육은성 너 하나밖에 없다면서 말이야.”
  • “영감탱이도 그래. 내가 온갖 애를 써서 결국 나를 입양하게 만들었더니, 입만 열면 하는 소리라는 게 네 이름뿐이야.”
  • “너처럼 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아무도 나한테 기회를 안 줘. 대체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뭔데!”
  • 염강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 “네가 제발 죽었기를 내가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지?”
  • 완전히 이성을 잃은 그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마침 옆에 아무렇게나 나뒹골고 있던 쇠파이프 하나를 들더니 울부짖으며 육은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 그러나 그를 맞이한 건 환영처럼 빠르게 뻗어져 나온 다리였다.
  • 퍽!
  • 염강이 손에 든 쇠파이프를 미처 휘두르기도 전에 그의 복부에 선명한 발자국이 갑자기 찍히며 5미터 밖으로 몸 전체가 날아가 박혔다.
  • “네가 나보다 못한 게 뭔지 알고 싶어?”
  • 육은성이 천천히 걸어가 염강 옆에 서며 그를 내려다봤다.
  • “난 스스로의 강함을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지 않지. 그리고 난 배은망덕하지 않아. 질투에 눈이 멀어 미움에 사로잡히는 일 또한 없지.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해?”
  • 가볍게 흘러나온 음성이었지만 염강의 영혼에는 마치 거대한 망치처럼 묵직하게 내리쳐졌다.
  • 사람으로서 제일 기본적으로 갖춰야 될 준칙들을 염강은 가지고 있었나?
  • 아니.
  • 그는 스스로의 강함에 도취되어 약한 자를 괴롭히고, 은혜를 개같이 아는, 질투심에 눈 먼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 “크헉!”
  • 너무 강렬한 자극을 받아서인지 염강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 고통으로 인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바라보는 육은성의 냉담한 눈동자에 일말의 연민도 느껴지지 않았다.
  • 질투심에 침식돼 인성이 비틀려지기까지 한 자는 동정할 가치도 없었다.
  • “얘야… 너… 네가 정말로 은성이니?”
  • 그때, 오문덕의 떨리는 음성이 문득 등뒤에서 들려왔다.
  • 몸을 돌린 육은성은 얼굴에 떠올랐던 찬기를 모두 털어내고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 “저 맞아요, 원장님. 저 돌아왔어요.”
  • “정말 은성이 맞구나!”
  • 심장이 쿡 조여지는 느낌에, 오문덕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육은성을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 “우리 은성이, 네가 아직… 아직 살아있었구나… 하나님이 드디어 나를 괴롭히기를 그만둔 것이야. 나는, 나는 나 때문에 네가 죽은 줄로만 알고… 크흑…”
  • 오문덕은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슬퍼서 울고 있다기보다는 일종의 시름을 덜은 듯한 시원함이었다.
  • 그를 15년이나 죄책감에 쌓이게 만든 아이가 여전히 살아있었던 것이다.
  • “네, 원장님. 저 아직 살아있어요. 이렇게 잘 커서 돌아왔어요.”
  • 육은성이 조용하게 그를 다독였다.
  • 오문덕의 말에서 무언가를 알아챈 그는 울음소리가 잦아든 뒤에야 입을 떼어 물었다.
  • “원장님, 15년 전에 있었던 그 화재 사고 아니죠? 혹시 저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없으세요?”
  • 오문덕이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 “지나간 일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둬. 네가 살아있기만 하면 된 거야.”
  • 그의 말은 육은성의 추측을 더 확신하게 만들었다. 진지한 얼굴의 육은성이 오문덕을 향해 말했다.
  • “원장님, 정말로 저한테 미안하게 생각하시는 거면 솔직하게 저한테 다 알려주세요, 네?”
  • 오문덕은 이 화제를 피해가고 싶었으나 육은성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더 이상 감출 수 없음을 깨달았다.
  • 그의 입에서 느릿느릿하게 흘러나온 얘기가 길어짐에 따라 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 역시나 15년 전에 있었던 그 화재사건에는 이상한 점이 존재했었다.
  • 그때 당시 원딜 컴퍼니라는 부동산 회사에서 햇살보육원이 자리한 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몇 번이나 오문덕을 찾아와 헐값에 그 땅을 사들이려는 수작을 부렸었다.
  • 그러나 오문덕은 그들의 어떠한 수단과 방법에도 강경하게 맞서며 뜻을 굽히지 않았었는데, 결국 그를 어쩌지 못한 원딜 컴퍼니 책임자 하나가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와 계약에 사인하지 않으면 그 후과를 알아서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간 것이었다.
  • 그리고 이튿날, 햇살보육원에 모두가 다 알고있는 그 화재가 일어났다.
  • 오문덕은 그날의 화재가 원딜 컴퍼니의 복수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닐까라고 의심했다. 다만 그들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여태 찾지 못한 상태였다.
  • 햇살보육원의 화재가 있은 후로 육은성이 사라졌다.
  • 오문덕은 자기가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햇살보육원 원장직에서 사직하고 육은성과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입양했었다. 그 아이가 바로 염강이었다.
  • 오문덕은 그때부터 육은성에 대한 모든 죄책감을 염강한테 갚기 시작했다.
  • 그렇게 과분한 총애는 오히려 염강의 악습을 길렀고, 지금에는 3일에 한 번 꼴로 오문덕에게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예전에는 그래도 금액이 적었어서 별말을 안 했는데, 이번에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4천만이나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 당연하게도 오문덕이 이를 거절하자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이었다.
  • 오문덕의 얘기가 끝나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감돌았다.
  • 고개를 들어 육은성을 쳐다본 오문덕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육은성의 칠흑과도 같은 눈동자에서 무시무시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 원딜 컴퍼니!
  • 나를 15년이나 고향을 떠나 밖에서 떠돌아 다니게 만들고, 하마터면 화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었으며, 또 일곱 누이들을 나의 곁에서 빼앗아 갈 뻔했네?
  • 이 원수를 내가 어떻게 갚아줄까,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