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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내가 복귀식에서 너한테 청혼할 거야!

  • “흥, 국세청 자리 따위 아쉽지 않은 사람이야 내가. 난 A 시 4대 가문 중의 하나인 도 씨 가문 사람이라고. 당신 서 씨들 짓밟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만 알아둬.”
  • 서 씨 집안사람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도 씨 가문 앞에서 서 씨네가 감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할 자격조차 없었다.
  • 결국 큰아버지가 먼저 서대명에게 서둘러 담배를 건네며 직접 불을 붙였다.
  • “대명아, 난 네 친형이야. 너... 네가 강 건너 불구경 할 수는 없잖아.”
  • “아까는 큰형님 말씀이 좀 심했어요.”
  •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서대명과 이옥자 두 사람을 에워쌌다.
  • “대명이 형, 형은 정말 훌륭한 사위를 찾았어요. 우리 집의 체면도 세워주었어요.”
  • “방금 우리가 한 말... , 말이 아니라 방귀야. 생각만 해도 역겨워.”
  • “한바람은 너희 사위랑 비교도 안돼.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니깐.”
  • “동생아, 제수 씨, 예도진이 한 성격 하긴 하는데 젊은 사람이 성질도 좀 있고 해야 좋은거지. 아까 우리를 상관하지 않겠다던데 너희들이 제발 좀 말려줘.”
  • 친척들에게 평생 업신여김을 당하던 두 사람이 지금은 그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모셔지고 있어 적응이 되질 않았다.
  • 가끔 한 사람에게 한마디 대답하면 상대방은 이가 다 드러나도록 웃었다.
  • 그중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한바람이었다.
  • 그는 서이나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서이나가 그를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 원래 서이나는 한바람이 서영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길 기대하고 있었다.
  •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자신과 아버지를 앞세워 방패로 썼으니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 연회가 끝난 후 서대명은 그들을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큰아버지의 호의를 거절하고 이옥자와 산책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가는 길에 이옥자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 서대명은 순간 당황했다.
  • “여보, 왜 그래?”
  • 이옥자 서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당신한테 시집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당신 집안 친척들에게도 삼십 년 넘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그런데 예도진이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밖에 안 됐는데 나 대신 기를 세워줬다고요.... 이 찌질이 같으니라고, 전과범만도 못해 당신은.”
  • 서대명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 “여보, 미안해. 그동안 나 때문애 서러움 당하게 해서.”
  • “예도진이 정말 평범한 사람일까요? 평범한 사람이 유대종을 그렇게 놀라게 할 수 있어요? 예도진...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권력자가 아닐까요?”
  • 서대명은 씁쓸하게 웃었다.
  • “여보, 앞으로 영양가 없는 소설 좀 그만 봐. 이런 일은 소설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걔가 진짜 그런 권력자라면 진유진의 집에서 5년 내내 온갖 모욕을 참았겠어? 심지어 결혼식에서 5천만 원도 내놓지 못했잖아.”
  • 이옥자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 “그럼 유대종이 예도진을 두려워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참, 전에 예도진이 A 시 심가네에서 100 억 짜리 주문도 받아온 적 있잖아요. 심가네 집안이 A 시 제1갑부인데 영이네 작은 공장이랑 손을 잡는 게 말이 돼요?”
  • “예도진이 혹시 심가네 사람을 아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걸로 유대종을 겁을 준게 아닐까 싶어.”
  • 서대명은 갑자기 이마를 탁 쳤다.
  • “맞네. 심가네 어르신이 몇 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었잖아. 예도진도 감옥살이를 했으니 시간과 장소가 심가네 어르신이 감옥살이를 했던 시간과 장소랑 딱 맞아떨어져. 그럼 예도진이 감옥에 있을 때 심가네 어르신을 알게 된 가능성이 매우 크단 말이지.”
  • 이옥자는 눈이 번쩍 뜨였다.
  • “그 가능성이 매우 크네요. 군주님 복귀식도 심가네가 주최 측이니 예도진이 정말 심가네와 일면식이 있다면 복귀식 입장권도 몇 장 얻어올 수 있지 않겠어요?”
  • “흥, 전유진네 가족이 계속 입장권으로 우리를 누르려 하잖아요. 우리도 들어가게 되면 뭘로 우릴 누르려는지 두고 보자고요.”
  • “그래그래. 집에 가면 예도진한테 물어보자고.”
  • “영이한테 먼저 전화해서 예도진을 데리고 집에 오라고 하세요.”
  • 요 며칠, 서영이는 예도진과 같이 제철 공장에서 살았다.
  • 서영이네 집과 전유진네 집은 같은 동네였고 서로 남북 쪽을 향했다.
  • 예전엔 두 집이 왕래가 잦았지만, 예도진이 나타난 후로 두 집은 완전히 갈라섰다.
  • 한편 서영이는 부엌에서 예도진에게 밥을 차려주며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 예도진은 편하게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 “집이 있으니 좋아.”  
  • 방문이 열리고 서대명과 이옥자가 돌아왔다.
  • 예도진은 바로 일어나서 그들을 맞이했다.
  • 이옥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응, 앉아.”
  • 말투가 예전처럼 날카롭고 까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
  • 자리에 앉자마자 이옥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 “예도진, 자네가 어떻게 유대종을 아는지 우리한테 말해 봐.”
  • “유대종이 신장결석이 있었는데 제가 치료했어요.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 이옥자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 “그랬구나. 사실은 복귀식 입장권을 몇 장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보군.”
  • “두 분 다 복귀식에 참석하고 싶으세요? 걱정 마세요. 내일 제가 두 분을 모시고 들어갈게요.”  
  • 이옥자는 예도진을 째려보며 말했다.
  • “누가 그걸 모르나. 복귀식이 내일인데 입장권도 더 이상 나눠주지 않는데 어떻게 우릴 데리고 들어가겠다는 건가.”
  • “우리가 참석한다면 그건 복귀식의 영광이죠. 입장권이 웬 말이겠습니까.”
  • 이옥자는 예도진을 상대하기 귀찮아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 “영이야, 이걸 지금 사람 먹으라고 만드는 음식이냐? 나와. 내가 할게.”
  • 서대명도 담배 한 갑을 던지고는 한숨을 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 국수 한 그릇, 담배 한 갑, 예도진에게 오늘의 은혜에 보답한 것이었다.
  • 그러나 예도진은 그것도 만족했다.
  • 그는 허겁지겁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 서영이는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국수를 다 먹고 서영이가 말했다.
  • “도진 씨. 오늘 밤엔 소파에서 자요. 괜찮죠?”
  • 예도진이 입을 벌리며 말을 하기도 전에 서영이가 먼저 가로채며 말했다.
  • “의견 없다면 좋아요.”
  • “...”
  • ‘아버님 어머님은 네가 이렇게 장난꾸러기인 줄 아?’
  • “영이야, 잠깐만.”
  • 예도진이 서영이를 불렀다.
  • “왜요?”
  • “내일 복귀식에서 너한테 청혼할 테니 준비하고 있어.”
  • “입장권은?”
  • 서영이는 피식 웃었다.
  • “없어.”
  • “허허.”
  • 예도진의 이마에 깊게 주름이 생겨났다.
  • ‘이 웃음은 무슨 뜻이냐?’
  • 그는 휴대폰을 꺼내어 대령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내일 내가 복귀식에서 평범한 여자애한테 고백할 거란 소문 퍼뜨려.”
  • 대령에게서 답장이 바로 왔다.
  • “예 알겠습니다. 내일 리무진 88대를 동원해 군수님과 사모님 모시러 제가 가겠습니다.”
  • 그들은 밤새 말이 없었다
  •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자 서영이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 그녀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방에서 나오다가 부모님이 창문에 몸을 반쯤 내밀고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떠들썩한 소리가 창밖에서 들리는 걸 보아 온 동네가 난리가 난 것 같았다.
  • “엄마, 무슨 일이에요?”
  • 서영이가 궁금해서 물었다.
  • 이옥자가 급히 말했다.
  • “영이야, 빨리 와, 대박 뉴스야.”
  • 서영이도 창가 쪽으로 향했다.
  • 아파트 입구에 수없이 많은 럭셔리한 웨딩카들이 주차되어 거리 전체를 꽉 막고 있었다.
  •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차들의 번호판이 모두 검은 번호판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군 전용차란 뜻이다!
  • 럭셔리한 차들의 행렬에 근처의 아파트 사람들까지 호들갑이었다.
  •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기웃거리며 고급 차들을 구경하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 “맙소사.”
  • 서영이는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 “누가 이렇게 많은 군용차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거지?”
  • 이옥자가 말했다.
  • “믿을만한 소식인데, 오늘 군수님께서 복귀식에 평범한 여자한테 고백을 하신대. 그러니까 이 전용차들은 분명히 그 행운의 주인공을 데리러 온 게 틀림없어. 우리가 군수님의 여자랑 같은 동네에 살다니. 너무도 영광스럽지 않니.”
  • ‘뭐야!’
  • 서영이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뜨거운 눈빛을 쏘며 예도진을 바라보았다.
  • 그녀의 머릿속에는 예도진이 어젯밤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복귀식에서 너한테 청혼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