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네 큰아버지 사위는 젊고 유능해서 국세청 과장이 됐잖아. 근데 예도진은 네 밑에서 일하는 직원일 뿐이니 듣기 싫은 말로 네가 먹여 살리는 거지. 그 두 사람이 비교당하면 보나 마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비웃을 게 뻔하단 말이다. 내가 체면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서영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큰아버지께서 콕 집어서 도진 씨더러 오라고 했는데, 안 가면 화내시면 어떡해요.”
서대명이 침묵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어, 그냥 가. 네 큰아버지의 체면도 생각해 줘야지.”
전화를 끊고 서영이는 조심스럽게 예도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도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예도진이 참석하지 않았으면 했다.
큰아버지의 딸인 서이나는 줄곧 그녀와 비교 당하며 살아왔지만, 한 번도 그녀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 서이나가 과장 사위를 얻어 겨우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큰아버지께서 특별히 예도진도 참석하라고 하신 걸 보면 아마도 이번 기회에 그녀를 비웃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영이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다.
조수석을 쳐다보니 예도진이 세상 달콤하게 자고 있었다.
서영이는 체념한 채 혼잣말을 했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으니 사는 게 편하지 아주.”
두 사람은 이내 목적지인 로열호텔에 도착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호화로운 룸.
큰아버지는 서영이네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친척들을 초대하셨다.
연회의 규모는 결혼식 규모와 맞먹을 정도였다.
장내의 모든 관심은 큰아버지의 딸인 서이나와 그의 사위인 한바람에게 집중되었다.
수많은 친척들이 한창 큰아버지네 가족한테 아부하느라 바빴고 방금 들어온 서영이와 예도진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바람 씨가 아주 대단해. 어린 나이에 과장 자리까지 앉았으니 앞길이 창창하구먼 그래.”
“이나는 정말 좋은 사위를 얻었어. 정말 선남선녀인데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구나.”
“한바람 군, 우리 아들이 곧 졸업하는데 형부로써 힘 좀 써줘.”
서이나는 교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한바람은 겸손한 표정으로 화기애애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서영이는 한숨을 쉬며 아무도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서이나가 갑자기 열정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영이 언니, 우리 새 형부는 뭐 하는 사람이야?”
그녀가 입을 열자, 모든 관심이 예도진과 서영이에게 집중되었다.
서영이는 더듬으며 말했다,
“그게... 우리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해.”
서이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언니 밑에서 일하는 거구나. 따지고 보면 언니가 먹여살리는 거네.”
하하하!
현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서영이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웃음소리가 그치자 서이나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사촌 언니, 화내지 마. 농담이야 농담. 조그마한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면 미래도 막막할 텐데 바람씨가 우리 형부한테 일자리 소개해 주는 건 어때요?”
한바람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야, 그럼 내가 난처해지잖아. 형부가 전과가 있다던데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서이나는 갑자기 깨달은 척하며 말했다.
“맞네. 형부가 5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는 걸 내가 잊었지 뭐예요.”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서영이의 남자친구가 전과범이라니, 화젯거리는 충분히 폭발적이었다.
서영이의 결혼 상대와 서이나의 결혼 상대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었다.
친척들은 비록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한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했다.
서대명과 이옥자는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형편없는 사위를 얻었을까? 오늘은 정말 이 늙은이 체면도 다 잃었어.’
오늘 이 자리가 다른 자리였다면 서대명은 지금쯤 예도진을 쫓아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전에 예도진이 그를 교수 자리에 앉게끔 도와준 일은 벌써 다 까먹은 지 오랬다.
큰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번에 한바람 군이 과장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첫째는 본인의 능력이고 둘째는 귀인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친척들은 갑자기 흥미를 보였다.
“어떤 귀인인데 과장 자리가 말 한마디로 해결되는 정도지?”
큰아버지는 오만하게 말했다.
“방가 가문의 방준기. 우리 한바람과 방준기가 글쎄 절친한 사이라네. 그러니 그가 한바람을 도와준 게 이상할 것도 없지.”
친척들은 난리가 났다.
“방가라면 우리 시에서 4대 가문 중의 하나인 방가? 어머나, 바람 군이 인맥이 넓기도 하지.”
“그런 권력가와 친분이 있다니... 출세는 따 놓은 거나 다름없겠네.”
“방가에서 글쎄 군수님의 초대장을 받았다던데 바람 군이 방가에 부탁해서 나도 군주님 복귀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 경비를 서는 것도 좋고 청소부로 가는 것도 좋으니 말일세.”
큰아버지는 친척들의 반응에 매우 만족하셨다.
“원래, 방가네 방준기가 영이에게 반해 영이와 인연을 맺으려 했었네. 그런데 영이가 글쎄 생각지도 않게 전과범을 선택했지 뭔가. 네 부모님이 그동안 널 어떻게 가르친 거니! 우리 서 씨 집안의 체면이 너희 집 때문에 말도 아니야 아주.”
친척들까지 소란을 피웠다.
억만장자를 놔두고 전과범을 선택하다니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그들도 따라서 서영이를 욕하기 시작했다.
서영이는 억울해서 울고 싶었다.
“큰아버지,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니 참견하지 마세요.”
큰아버지는 상을 치며 분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네 큰아버진데 당연히 관여할 자격이 있지! 이 전과범이랑 어딜 감히 방준기와 비교를 해. 그놈이 국세청 윗사람을 알아 아니면 한바람에게 과장 자리를 줄 수 있니? 아니면 군주님 복귀식에 드나들 수 있어? 더군다나 우리 바람에게 전과범 친척이 있는 건 그에겐 치명적인 오점이고 앞으로 창창한 앞길까지 막을 거란 것도 모른단 말이냐!”
서영이는 너무 억울해서 두 눈이 빨개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도진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냉소를 지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지금 그의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놀라서 까무러칠 것이었다.
군수님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그가 곧 폭발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폭발하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같은 시각 호텔 로비에서.
국세청장 유대종이 한 무리 사람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는데 호텔 직원이 가장 큰 룸이 이미 예약이 된 상태라고 말했다.
유대종이 장소를 옮기려고 하자 그의 오른팔인 가 자진해서 나섰다.
“총장님, 제가 룸에 가서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지 보고 오겠습니다. 지금도 늦은 시간이라 장소를 옮기면 더 지체될 것 같습니다..”
유대종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서 살펴봐.”
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영이가 있는 룸으로 향했다.
펑!
가 문을 세차게 걷어찼고 서늘한 눈빛으로 서 씨네 일가친척들을 쳐다보았다. 말투는 허세로 가득 차있었다.
“어이, 당신들 룸을 바꾸든지, 아니면 호텔을 바꿔서 밥을 먹든지 해. 우리가 이 룸 쓸 거니깐.”
큰아버지는 벌컥 화를 냈다.
“네까짓 게 뭔데 우리한테 내가라 마라 강요해.”
는 냉소를 지었다.
“나? 국세청 사람인데? 당신 나한테 욕했어? 감히 공무원을 모욕해? 당장 꺼져, 안 그럼 감옥 가서 콩밥 먹을 준비해.”
큰아버지는 경멸하며 웃었다.
“국세청? 허허, 내 사위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한바람, 새로 부임한 과장이야. 네가 감히 너희 과장을 내쫓아? 건방진 것!”
친척들도 한바람을 믿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음산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모두를 스치더니 결국 한바람에게 멈췄다.
“어이구, 높으신 한 과장님도 여기 계시네. 대단해 아주. 내가 널 과장 자리에 올려놓자마자 그걸로 날 협박이나 하고. 겁대가리도 없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