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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친척들의 조롱

  • 가는 길에 서영이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았다.
  • 서대명이 말했다.
  • “영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축하하는 자리에 예도진을 오지 말라고 하는 게 좋겠어.”
  • 서영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 “왜?”
  • 서대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 “아니... 네 큰아버지 사위는 젊고 유능해서 국세청 과장이 됐잖아. 근데 예도진은 네 밑에서 일하는 직원일 뿐이니 듣기 싫은 말로 네가 먹여 살리는 거지. 그 두 사람이 비교당하면 보나 마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비웃을 게 뻔하단 말이다. 내가 체면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 서영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런데 큰아버지께서 콕 집어서 도진 씨더러 오라고 했는데, 안 가면 화내시면 어떡해요.”
  • 서대명이 침묵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됐어, 그냥 가. 네 큰아버지의 체면도 생각해 줘야지.”
  • 전화를 끊고 서영이는 조심스럽게 예도진의 눈치를 살폈다.
  • 그녀도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예도진이 참석하지 않았으면 했다.
  • 큰아버지의 딸인 서이나는 줄곧 그녀와 비교 당하며 살아왔지만, 한 번도 그녀를 따라잡지 못했다.
  • 그런 서이나가 과장 사위를 얻어 겨우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 큰아버지께서 특별히 예도진도 참석하라고 하신 걸 보면 아마도 이번 기회에 그녀를 비웃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영이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다.
  • 조수석을 쳐다보니 예도진이 세상 달콤하게 자고 있었다.
  • 서영이는 체념한 채 혼잣말을 했다.
  •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으니 사는 게 편하지 아주.”
  • 두 사람은 이내 목적지인 로열호텔에 도착했다.
  • 사람들로 가득 찬 호화로운 룸.
  • 큰아버지는 서영이네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친척들을 초대하셨다.
  • 연회의 규모는 결혼식 규모와 맞먹을 정도였다.
  • 장내의 모든 관심은 큰아버지의 딸인 서이나와 그의 사위인 한바람에게 집중되었다.
  • 수많은 친척들이 한창 큰아버지네 가족한테 아부하느라 바빴고 방금 들어온 서영이와 예도진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 “한바람 씨가 아주 대단해. 어린 나이에 과장 자리까지 앉았으니 앞길이 창창하구먼 그래.”
  • “이나는 정말 좋은 사위를 얻었어. 정말 선남선녀인데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구나.”
  • “한바람 군, 우리 아들이 곧 졸업하는데 형부로써 힘 좀 써줘.”
  • 서이나는 교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한바람은 겸손한 표정으로 화기애애하게 대답했다.
  • 그 모습에 서영이는 한숨을 쉬며 아무도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서이나가 갑자기 열정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 “영이 언니, 우리 새 형부는 뭐 하는 사람이야?”
  • 그녀가 입을 열자, 모든 관심이 예도진과 서영이에게 집중되었다.
  • 서영이는 더듬으며 말했다,
  • “그게... 우리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해.”
  • 서이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 “언니 밑에서 일하는 거구나. 따지고 보면 언니가 먹여살리는 거네.”
  • 하하하!
  • 현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 서영이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 웃음소리가 그치자 서이나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 “사촌 언니, 화내지 마. 농담이야 농담. 조그마한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면 미래도 막막할 텐데 바람씨가 우리 형부한테 일자리 소개해 주는 건 어때요?”
  • 한바람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이나야, 그럼 내가 난처해지잖아. 형부가 전과가 있다던데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 서이나는 갑자기 깨달은 척하며 말했다.
  • “맞네. 형부가 5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는 걸 내가 잊었지 뭐예요.”
  •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 서영이의 남자친구가 전과범이라니, 화젯거리는 충분히 폭발적이었다.
  • 서영이의 결혼 상대와 서이나의 결혼 상대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었다.
  • 친척들은 비록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한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했다.   
  • 서대명과 이옥자는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형편없는 사위를 얻었을까? 오늘은 정말 이 늙은이 체면도 다 잃었어.’
  • 오늘 이 자리가 다른 자리였다면 서대명은 지금쯤 예도진을 쫓아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전에 예도진이 그를 교수 자리에 앉게끔 도와준 일은 벌써 다 까먹은 지 오랬다.
  • 큰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이번에 한바람 군이 과장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첫째는 본인의 능력이고 둘째는 귀인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 친척들은 갑자기 흥미를 보였다.
  • “어떤 귀인인데 과장 자리가 말 한마디로 해결되는 정도지?”
  • 큰아버지는 오만하게 말했다.
  • “방가 가문의 방준기. 우리 한바람과 방준기가 글쎄 절친한 사이라네. 그러니 그가 한바람을 도와준 게 이상할 것도 없지.”
  • 친척들은 난리가 났다.
  • “방가라면 우리 시에서 4대 가문 중의 하나인 방가? 어머나, 바람 군이 인맥이 넓기도 하지.”
  • “그런 권력가와 친분이 있다니... 출세는 따 놓은 거나 다름없겠네.”
  • “방가에서 글쎄 군수님의 초대장을 받았다던데 바람 군이 방가에 부탁해서 나도 군주님 복귀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 경비를 서는 것도 좋고 청소부로 가는 것도 좋으니 말일세.”
  • 큰아버지는 친척들의 반응에 매우 만족하셨다.
  • “원래, 방가네 방준기가 영이에게 반해 영이와 인연을 맺으려 했었네. 그런데 영이가 글쎄 생각지도 않게 전과범을 선택했지 뭔가. 네 부모님이 그동안 널 어떻게 가르친 거니! 우리 서 씨 집안의 체면이 너희 집 때문에 말도 아니야 아주.”
  • 친척들까지 소란을 피웠다.
  • 억만장자를 놔두고 전과범을 선택하다니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 그들도 따라서 서영이를 욕하기 시작했다.
  • 서영이는 억울해서 울고 싶었다.
  • “큰아버지,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니 참견하지 마세요.”
  • 큰아버지는 상을 치며 분노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네 큰아버진데 당연히 관여할 자격이 있지! 이 전과범이랑 어딜 감히 방준기와 비교를 해. 그놈이 국세청 윗사람을 알아 아니면 한바람에게 과장 자리를 줄 수 있니? 아니면 군주님 복귀식에 드나들 수 있어? 더군다나 우리 바람에게 전과범 친척이 있는 건 그에겐 치명적인 오점이고 앞으로 창창한 앞길까지 막을 거란 것도 모른단 말이냐!”
  • 서영이는 너무 억울해서 두 눈이 빨개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예도진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냉소를 지었다.
  •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지금 그의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놀라서 까무러칠 것이었다.
  • 군수님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그가 곧 폭발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 그가 폭발하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 같은 시각 호텔 로비에서.
  • 국세청장 유대종이 한 무리 사람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는데 호텔 직원이 가장 큰 룸이 이미 예약이 된 상태라고 말했다.
  • 유대종이 장소를 옮기려고 하자 그의 오른팔인 가 자진해서 나섰다.
  • “총장님, 제가 룸에 가서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지 보고 오겠습니다. 지금도 늦은 시간이라 장소를 옮기면 더 지체될 것 같습니다..”
  • 유대종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가서 살펴봐.”
  • 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영이가 있는 룸으로 향했다.
  • 펑!
  • 가 문을 세차게 걷어찼고 서늘한 눈빛으로 서 씨네 일가친척들을 쳐다보았다. 말투는 허세로 가득 차있었다.
  • “어이, 당신들 룸을 바꾸든지, 아니면 호텔을 바꿔서 밥을 먹든지 해. 우리가 이 룸 쓸 거니깐.”
  • 큰아버지는 벌컥 화를 냈다.
  • “네까짓 게 뭔데 우리한테 내가라 마라 강요해.”
  • 는 냉소를 지었다.
  • “나? 국세청 사람인데? 당신 나한테 욕했어? 감히 공무원을 모욕해? 당장 꺼져, 안 그럼 감옥 가서 콩밥 먹을 준비해.”
  • 큰아버지는 경멸하며 웃었다.
  • “국세청? 허허, 내 사위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한바람, 새로 부임한 과장이야. 네가 감히 너희 과장을 내쫓아? 건방진 것!”
  • 친척들도 한바람을 믿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음산하게 웃었다.
  • 그의 시선이 모두를 스치더니 결국 한바람에게 멈췄다.
  • “어이구, 높으신 한 과장님도 여기 계시네. 대단해 아주. 내가 널 과장 자리에 올려놓자마자 그걸로 날 협박이나 하고. 겁대가리도 없이 말이야!”
  • 이때 한바람은 이미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