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놓인 광경에 놀라고 말았다. 서영이의 엄마 이옥자는 유진 앞에 무릎 꿇고 빌고 있었다.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네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있을 뿐이었다. 유진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못본척하는 모습에 예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전유진이 여기서 뭐 하지?”
서영이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빨리 일어나. 왜 무릎 꿇고 있어.”
이옥자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서영아, 마침 잘 왔어. 빨리 유진에게 빌어. 아빠 살려달라고. 아빠 주치의가 유진이 엄마인데 아빠 심장병 수술 거부하고 있어.”
유진의 엄마 전미도와 서영이의 아버지 서대명은 같은 병원에서 일하면서 주임 자리를 다투고 있는 라이벌 구도였다. 오늘 결혼식 일 때문에 전미도는 서대명을 살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옥자는 병원을 옮기기에 시간이 더 지체될까 봐 무릎 꿇고 빌었던 것이다. 서영이는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되어 자존심을 버리고 같이 빌어보기로 했다.
“유진아, 내가 이렇게 빌게. 우리 아빠 좀 살려주면 안 돼?”
유진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이제 와서 나한테 빌어? 그러게 왜 그랬어? 저 잘난 예도진한테 빌어볼 거지.”
이옥자는 서영이가 데리고 온 자가 바로 예도진인 것을 알고 화가 났다.
“서영아, 너 엄마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왜 저 사람을 데려왔어! 저 사람 감옥까지 다녀온 거 몰라? 예도진! 우리 집 한 발짝도 들어올 생각하지 마! 유진아, 내가 서영이 잘 타일러 볼게. 다 서영이 탓이야.”
“우리 엄마가 수술해 줄 수는 있는데 조건이 있어요. 삼천만원 의료비 내놓으세요. 예도진 씨가 대신.”
예도진이 삼천만 예물을 내놓지 못 했던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유진은 일부러 예도진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예도진은 한숨을 쉬면서 5년 동안 이 여자를 어떻게 만나왔었는지 자신이 한심했다.
“좋게 헤어지려고 했더니 아주 자기 무덤을 파네...”
“흥! 딴소리하지 말고 빨리 돈 내놔. 아니면 둘이 무릎 꿇고 빌든지. 서영이 너는 내가 버린 쓰레기를 주은 거야. 알아?”
서영이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아버지를 위해 눈 딱 감고 그까짓 무릎을 꿇으려고 했지만 예도진이 말렸다.
“서영아, 그럴 필요 없어. 아버님 내가 구해.”
“봤지? 이 남자 돈이 아까워서 이러는 거. 이런 남자가 그렇게도 좋아?”
서영이의 마음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이 아파났다. 이때 예도진은 힘껏 유진의 뺨을 때렸다. 유진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앞니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내가 말했지. 서영이를 건드리는 사람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비는 것도 모자라 왜 때려…’
서영이는 이런 예도진의 행동에 무서워서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심지어 이 남자를 선택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왜 그랬어…”
서영이의 목소리는 떨렸다.
“내 아내, 그 누구도 못 건드려…”
서영이는 그를 욕하려고 했지만 이 한마디에 꾹 참았다. 유진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허허헣… 사위 하나 참 잘 두셨네요. 아저씨를 구하지 않은 건 저희 집이 아니라 예도진이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세요.”
유진은 떠났고 이옥자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때 예도진의 핸드폰이 울리고 말도 없이 떠났다. 도망간 것이 아니라 대령이 침을 가져왔다는 소식에 응급실로 향했다. 서영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자기를 버린 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예도진은 이미 쇼크 된 서대명을 구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군수님의 침을 한번 맞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간절히 빌고 있는데 이 사람은 참 행운이네요.”
이옥자는 이 시각 절망적으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어떡해… 서영아, 방준기가 예도진보다 못한 거 뭐가 있어. 왜 하필 예도진이야.”
서가네 일가는 서영이를 탓하기만 했다. 이때 큰 아버지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울지 말고. 좋은 아이디어 하나 생각났어. 서영아, 너 준기한테 전화해서 사과해. 그리고 도와달라고 빌어. 군수님 요청장도 받아냈는데 병원 원장 하나 설득 못하겠어?”
이때 작은 아버지가 덧붙였다.
“대명이 병원 주임 자리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무조건 원장님도 알 거 아니야.”
이옥자도 서영이를 재촉했다.
“그래, 빨리 준기한테 전화해 봐.”
서영이는 본능적으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절망적인 눈빛에 결국은 이를 악물고 전화하기로 했다.
“준기 씨, 나 부탁할 거 있어.”
서영이는 목이 메어 왔다.
“뭘 도와줄까?”
“인애병원 원장님 아세요? 저희 아빠 심장병 발작해서 그러는데 내과 의사가 필요해요…”
방준기는 서영이를 다시 뺏어올 수 있다는 절호의 기회에 기뻐했고 서영이의 몸매를 상상하면서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