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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무릎 꿇고 사과해

  • “제발 연기 좀 그만해요.”
  • 윤찬우와 노인이 한마디씩 주고받자 드디어 보다 못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 “프락치 아무나 두 명 데려와서 연기하면 보잘것없는 맥주병이 금세 보물로 되나요?”
  • 연기라는 두 글자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 ‘그럼 그렇지. 윤찬우 같은 무일푼의 거지가 어떻게 수백억 원대의 물건을 갖고 있겠어?’
  • “예린아, 저런 인간이랑 얼른 이혼하는 게 맞아.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새어 나오잖아. 뭐가 진짜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 “비싼 선물을 주지 못하니까 프락치까지 데려와서 연기를 해? 내가 다 창피하네.”
  • 반예린은 친구들의 야유 섞인 목소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 “찬우 씨, 제발 그만하고 저 돌멩이 같은 목걸이를 들고 꺼져요 당장!”
  • 반예린은 홧김에 윤찬우에게 삿대질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 “그래, 네가 정 안 갖겠다면...”
  • 이때 짤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쥐어졌던 퍼플 데이즐 마노가 산산조각이 난 채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 무려 이천억 원대의 귀한 목걸이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 “애초에 너에게 줄 선물이었어. 이젠 네가 싫다고 하니 이 목걸이도 더는 가치가 없어.”
  • 윤찬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 “지금 무슨 짓이에요? 미쳤어요 정말?”
  •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안 남은 퍼플 데이즐 마노란 말이에요!”
  • 그는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며 앞으로 나아가더니 산산조각이 난 퍼플 데이즐 마노를 주웠다.
  • “고작 돌멩이 몇 조각일 뿐인데 왜 이렇게 오버하는 거야?”
  • 노인의 행동에 유지민이 발로 그를 걷어차려 했다.
  • “유지민, 죽고 싶어?”
  • 하지만 바로 이때 노인의 뒤에 있던 중년 남성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유지민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 “날 알아요?”
  • 유지민은 사색이 되었다. 그를 아는 데도 감히 발로 걷어차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걸까?
  • 중년 남성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 대답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유근명, 자식 교육 똑바로 해. 네가 못하면 내가 대신해줄까?”
  • 순간 장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 유근명은 바로 LS 그룹의 회장이고 몸값이 무려 이천억 원이다! 그런 분을 감히 프락치 몇 명이 함부로 입에 올리며 사기 친다는 말인가?!
  • 하지만 중년 남성이 전화를 끊자마자 유지민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아빠?”
  • 그는 문득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 “무릎 꿇고 사과드려 당장!”
  • “네?”
  • 유지민은 자신이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하란 말이야!”
  • “내가 왜요?”
  • 유지민은 이를 악물었다.
  • “왜 그런지 알려줘? 그분은 강북의 진용훈 회장님이야. 지위든 세력이든 인맥이든 전부 나보다 훨씬 위라고! 너 죽기 싫으면 지금 당장 얌전히 무릎 꿇어! 안 그러면 나도 널 구할 수 없어.”
  • 한바탕 질책에 유지민은 멍하니 넋 놓고 말았다. 전화를 들고 있는 손까지 부들부들 떨렸고 식은땀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 “털썩!”
  • 유지민은 두말없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굴욕을 무릅쓰고 용서를 빌었다.
  • “진 회장님, 죄... 죄송합니다!”
  • “나한테 사과하지 말고!”
  • 중년 남성은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 “원 어르신께 사과드려!”
  •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 원 어르신이라! 강화시에서 진용훈같이 높은 신분의 사람이 어르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뿐, 그가 바로 십 년 전에 서울에서 귀향한 화성 재벌 서열 1위 원재순 어르신이다.
  • 그에 비해 유씨 가문은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
  • 원재순은 유지민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묵묵히 산산조각이 난 퍼플 데이즐 마노를 줍고 윤찬우 앞에 다가갔다.
  • “이 퍼플 데이즐 마노를 내가 다시 복구할 수 있어요.”
  • “그럼 어르신께 드릴게요.”
  • 윤찬우는 원재순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두 눈동자는 오롯이 반예린을 향해 있었다.
  • 원재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흔들며 중년 남성에게 수표 한 장 쓰라고 분부했다.
  • “퍼플 데이즐 마노를 공짜로 가질 수는 없지요. 여기 이백억 원으로 살게요.”
  •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이백억 원의 수표가 윤찬우 앞에 차려졌다. 2 뒤에 따르는 헤아릴 수 없는 공이 장내에 있는 뭇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 반예린의 절친한 친구들 몇 명은 벌써부터 윤찬우에게 야릇한 눈빛을 보냈고 유정아는 못 믿겠다는 듯 입이 쩍 벌어졌다.
  • 1년 전에 반씨 집안에서 거의 길러주다시피 했던 윤찬우가 어느새 수백억 원을 보유한 재벌로 등극하다니?
  • 아무도 이 수표가 가짜라고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유지민이 바로 가장 완벽한 인증이었으니!
  • 하지만 모두를 충격에 빠트릴 장면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 윤찬우는 수표를 힐긋 바라보더니 곧바로 반예린에게 건넸다.
  • “선물이 싫으면 이 이백억 원을 네가 다 가져. 3년 동안 너에게 진 빚이야 이건.”
  • 윤찬우는 이백억 원의 수표를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건넸다. 순간 레스토랑 전체가 고요한 정적에 빠졌다.
  • 원재순을 포함한 모든 이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초라한 옷차림의 윤찬우가, 전혀 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거지꼴의 윤찬우가 이백억 원의 수표를 선뜻 반예린에게 건네다니?
  • 원재순은 윤찬우가 어마어마한 인물이란 것을 바로 직감했다.
  • “이건 내 명함이에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 그는 윤찬우에게 직접 명함을 내밀고 성급히 자리를 떠났다. 얼른 돌아가서 퍼플 데이즐 마노를 복구해야 했으니. 이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일한 에메랄드였다.
  • 원재순이 떠난 후 유지민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꼴에 강화시 재벌 1위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원재순 앞에선 한낱 모래알에 불과했다.
  • “예린 씨,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나랑 결혼할 거예요 말 거예요?”
  • 이 시각 유지민의 인내심이 드디어 고갈됐다.
  • “예린아, 뭘 망설여? 찬우 씨는 그저 어쩌다 운이 따라서 돌멩이 같은 물건을 주운 것뿐이야. 이백억 원이면 다야? 이 돈을 다 쓰면 저 인간 또다시 본모습을 드러낼걸!”
  • “맞아, 예린아. 유씨 가문과 비교해봐. 이백억 원이 뭐 대수야? 바보같이 왜 그래 너 진짜?”
  • 반예린의 친구들이 이때다 싶어 또다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 그리고 유정아도 갑자기 경멸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히든카드를 꺼냈다.
  • “예린아, 너 내가 왜 찬우 씨랑 함께 온 줄 알아?”
  • “왜?”
  • 반예린이 물었다.
  • “나 여기 오는 길에 찬우 씨를 만났는데 그때 뭐 하고 있었는지 알려줄까? 아니 글쎄 업소 문 앞에서 아가씨를 고르고 있는 거야. 게다가 가장 저렴한 아가씨로 말이야. 우리 엄마보다 훨씬 더 나이 많아 보이던데 한 번에 2만 원이래...”
  • 반예린은 고개를 홱 돌리고 의심에 찬 눈길로 윤찬우를 째려봤다.
  • “날 믿을래 아니면 쟤를 믿을래?”
  • 윤찬우가 차갑게 물었다. 그는 아무런 변명도 없었고 또 굳이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 반예린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의 인상 속에서 윤찬우는 비록 진취심도 없고 종일 빈둥대지만 그 정도까지 밑바닥인 건 아니었다.
  • “반예린 씨, 나 진짜 당신이랑 시간 끌고 싶지 않아. 내 청혼을 받아들이면 오늘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거로 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 유지민이 불쑥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윤찬우를 노려봤다.
  • “이 인간은 오늘 여길 걸어서 나가지 못할 거예요!”
  • “내가 걸어서 나가지 못한다고?”
  • 윤찬우가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말했다.
  • “네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 유근명 씨가 와도 감히 나랑 이딴 식으로 말 못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