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3년 전 반씨 가문에 계속 지낼 때 반예원은 고3 학생이었는데 어떻게 3년 만에 술집에 드나드는 걸까? 게다가 보아하니 술도 적잖게 마신 것 같은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몽롱한 눈빛, 버건디색으로 염색한 머리와 흰색 미니스커트까지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풋풋한 여자애 같았다.
그녀 옆엔 날라리 네댓 명 앉아있었는데 팔뚝에 새긴 문신과 알록달록한 머리 색상이 한눈에 봐도 점잖은 사람이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예원아, 이리 와서 한잔 더 해야지.”
“이 잔만 마시면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그중 한 건달이 술잔을 들고 신속하게 손에서 분말을 툭툭 털어 잔에 떨어트렸다. 다른 한 건달은 반예원을 꽉 잡고 강제로 그녀 입에 술을 부어 넣을 기세였다.
“나 더이상 못 마셔요.”
반예원은 어렴풋한 눈길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이미 술에 취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럼 안 되지. 지금 오빠들 체면 안 봐주는 거야?”
건달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술잔을 들고 반예원의 입가에 쏟아부으려 했다.
그녀는 몇몇 건달에게 짓눌려 도통 반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맥주 한 잔 다 마신 후 녀석들은 또다시 그녀를 부축해 문밖을 나서려 했다.
“가자, 예원아. 오늘 밤 우리랑 즐겁게 보내야지.”
“이 년이 전에도 놀아났는지 모르겠네. 만약 그런 경험이 없다면 우리 오늘 땡잡은 거 아니야?”
“그게 뭐가 대수야? 어차피 이 년이랑 결혼할 것도 아닌데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했는지 알 필요 없어.”
“맞아. 우리가 알 바 아니지.”
몇몇 건달들은 반예원을 이끌고 인파를 비집으며 문밖을 향해 걸어갔다. 한편 그녀는 만취 상태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들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불쑥 앞에 나타났다.
“그 손 당장 놔.”
“X발 너 뭐야?”
자신들의 좋은 일을 망치려 하는 사람을 보자 건달들은 기분이 확 잡쳐 버럭 화를 냈다.
“당장 꺼져! 네 머리통을 박살 내기 전에!”
“젠장, 감히 우리 일에 간섭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 줄 알기나 해?”
건달들은 술의 힘을 빌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할게. 그 여자 당장 내려놓고 꺼져 다들!”
그들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바로 아까부터 줄곧 그들을 지켜보던 윤찬우였다.
처제인 반예원이 비록 평소에 그에게 수없이 모질게 굴었고 그를 헐뜯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반예린의 친여동생이었다. 반예린만 아니면 그도 반예원 따위 신경 쓸 리가 없다.
“이 자식이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윤찬우가 끝까지 버티고 서 있자 건달 중 한 명이 홧김에 맥주병을 들고 그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만약 이대로 내리친다면 윤찬우의 머리에서 틀림없이 피가 철철 흘러내릴 테지만 고작 이 건달들 따윈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맥주병을 미처 내리치지도 못했는데 윤찬우가 손을 번쩍 들어 건달의 얼굴에 뺨 한 대 후려쳤다. 순간 건달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치아까지 몇 대 빠져나갔다.
그의 뺨 한 대에 건달은 두 다리가 벌벌 떨렸고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윤찬우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뭐야 X발! 이 자식 감히 우리 애한테 손을 대? 다들 덮쳐! 저 자식 당장 패버려!”
건달들은 곧바로 윤찬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른한 그들의 손바닥 따위 어찌 무수히 많은 살인을 저지른 윤찬우에게 상대가 될까?
다들 손도 미처 들지 못한 채 윤찬우의 오른발에 걷어차여 콰당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졌다. 몇몇 건달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목이 빠지게 비명을 질렀다.
“두당 다리 한 대씩 처벌이야!”
윤찬우는 더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그들의 다리를 한 대씩 걷어찼다. 건달들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윤찬우는 만취 상태의 반예원을 부축하며 문밖을 나섰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을 떼려는데 그가 불쑥 미간을 확 찌푸렸다. 반예원이 취기가 올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영문인지 갑자기 손으로 윤찬우의 몸을 더듬었다. 게다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의 어깨에 기대 숨을 헐떡이며 심지어 그의 귓가에 입김을 불기까지 했다.
“정신 차려!”
윤찬우는 그녀를 부축한 채 빈 곳을 찾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아무리 높게 불러봐도 반예원은 찰떡처럼 그의 몸에 달라붙어 한사코 떨어지질 않았다. 윤찬우가 어떻게 밀쳐내든 그녀는 꿈쩍없이 그에게 달라붙었다.
“하, 나.. 나 하고 싶어... 얼른 날 가져. 빨리, 빨리 하란 말이야. 나 안 될 것 같아...”
반예원은 그의 귓가에 입김을 불어 넣으며 심지어 가끔 입술까지 그의 목에 스쳤다.
촉촉한 느낌에 윤찬우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반예원, 제발 정신 좀 차려!”
윤찬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등에 갖다 대더니 한줄기 고순도 에너지가 순식간에 그의 손가락 사이로 뿜어져 나와 그녀 몸에 침투되었다. 보아하니 좀 전에 몇몇 건달이 그녀 술에 약을 탄 게 분명했다.
약 성분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듯싶었다.
“으음...”
에너지가 퍼지자 반예원은 그제야 편안해졌는지 야릇한 신음을 냈는데 그 소리는 윤찬우의 귓가에 울려 퍼져 그의 가슴까지 확 조였다.
다만 윤찬우는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3년 동안 그는 수많은 유혹을 마주하게 됐는데 집안이며 몸매며 미모까지 반예원보다 수백 배는 뛰어난 미인들이었기에 고작 이런 유혹 따위 그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윤, 찬우?”
잠시 후 반예원이 정신을 차리고 두 눈을 비비며 눈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아닐 거야. 나 많이 취했네. 윤찬우 그 폐인은 진작 실종됐어.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어떻게 내 눈앞에 있을 리가 있겠냐고? 술은? 술 어디 있어? 나 더 마실래!”
반예원은 자신이 취한 줄 알고 손을 내밀며 또다시 술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녀의 작은 손이 윤찬우를 스친 순간, 진실된 촉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예원은 두 눈을 부릅뜨고 윤찬우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섬뜩할 만큼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