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롭고 가련한 척하는 반예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우짓이 따로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딸의 눈물을 본 소현주는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졌다.
“알았어, 딸, 울지 마. 엄마 신고 안 할게...”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윤찬우를 잡아먹을 기세로 사나워졌다.
“윤찬우, 내 말 잘 들어! 예원이의 체면만 아니었더라면 널 평생 감옥에서 썩게 했을 거야!”
“그러든지 말든지요.”
윤찬우는 더는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신고할 건가요? 안 하면 이만 가보겠어요!”
“거기 서!”
소현주가 날카롭게 말했다.
“내일 아침 당장 법원 가서 예린이랑 이혼해!”
그녀의 명령하는 말투는 3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3년 전에도 그녀는 이런 말투로 윤찬우에게 갖은 잡일을 시켰다.
반씨 집안에서 그는 공짜로 일 부려 먹는 도우미와 청소부 같았다.
“전 절대 이혼하지 않아요!”
윤찬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해!”
소현주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너같이 못난 놈을 1년이나 먹여 살렸는데 앞으로도 계속 먹여 살리라고?”
“그럴 필요 없어요!”
윤찬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번에 돌아온 건 예린이한테 빚진 3년을 갚으러 왔어요. 지금부터 백 배로 갚아줄 거예요!”
“백 배로 갚는다고?”
윤찬우의 말에 소현주는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
“뭐로 갚을 건데? 윤찬우, 내가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너 같은 놈은 3년이 아니라 평생을 노력해도 여전히 못난 놈이야! 유씨 가문 아들의 발가락만도 못해! 신발 들어줄 자격도 없다고!”
소현주는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내뱉었다.
‘윤찬우, 네가 뭔데? 뭐로 LS 그룹 회장의 외동아들과 비교할 건데? 넌 평생을 벌어도 저들이 밥 한 끼에 쓰는 돈도 못 벌면서!’
“유지민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요? 걔뿐만 아니라 걔 아버지도 제 눈엔 별 거 아니에요!”
윤찬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유씨 가문의 부자를 아예 안중에도 두질 않았다.
고작 LS 그룹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강북의 총독이 와도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판인데.
“유지민의 아버지가 별 거 아니라고?”
윤찬우의 말에 소현주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는 마치 멍청이를 쳐다보듯 윤찬우를 쳐다보았다.
“너 오늘 집 나오다가 머리라도 다쳤니? 네까짓 게 뭐라고. 뭐? 강북의 총독? 강화시 시장? 유지민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그분 몸값이 2천억이 넘어. 그렇게 많은 돈을 보기나 봤어? 꿈에서도 그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거야 넌.”
“고작 2천억 갖고 그래요? 만약 예린이가 원한다면 2조라도 줄 수 있어요.”
윤찬우는 정말로 2천억 따위를 안중에도 두질 않았다.
“고작 2천억? 예린아, 저게 정상적인 사람이 할 소리야?”
소현주는 뒤에 있는 반예린을 보며 말했다.
“예린아, 내가 진작에 윤찬우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지? 그렇게 기다리지 말라고 했는데 내 말 듣지 않더니! 이젠 내 말 믿겠어? 저놈은 허세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인데 이런 놈이랑 평생 살아서 뭐 해! 유씨 가문 아들이랑 비교해봐 봐. 저놈은 평생 발밑도 따라가지 못해!”
“그만 해요!”
소현주가 윤찬우를 모욕하는 걸 더는 들을 수 없었던 반예린이 드디어 폭발했다.
“찬우 씨, 그만 가봐요! 더는 찬우 씨 만나고 싶지 않아요!”
3년 전의 윤찬우는 비록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꼴 보기 싫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모습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것처럼 콧대를 높이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어떠한가?
아가씨를 찾고 싶어도 돈이 아까워 고작 2만 원에 길거리 싸구려나 찾는 신세였다. 그 생각에 반예린은 너무도 역겨워 헛구역질할 뻔했다.
“못 들었어? 당장 꺼지지 못해? 예린이가 꺼지라잖아!”
소현주는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당장 꺼져! 이 못난 놈아!”
반예원도 짜증 섞인 얼굴로 호통쳤다. 온 가족이 나서서 윤찬우를 내쫓으려고 안달이었다.
“예린아, 내가 너한테 이런 얘기를 했었지? 만약 반씨 가문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생겨 너랑 날 이혼하게 한다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내가 해결해 준다고!”
윤찬우는 이 말을 오후에도 반예린에게 했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하여 가기 전에 한 번 더 말한 것이었다.
“해결? 찬우 씨가 무슨 수로 해결해요?”
반예린은 결국 참다못해 윤찬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 반씨 가문이 누굴 건드렸는지 알아요? 용씨 가문이에요. 강화시 최고의 대가문 용씨 가문이라고요! 그런 용씨 가문을 찬우 씨가 상대할 수나 있겠어요?”
“할 수 있어!”
반예린의 말을 들으며 윤찬우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 내가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은 없어! 있다면 죽이면 그만이야!”
수라 군신이 전쟁터에 나간 3년 동안 수많은 대가문이 그의 발아래에 짓밟혔다. 용씨 가문이 아니라 화성의 최고 대가문도 그의 발아래에서 꼼짝도 못 하고 짓밟혔는데 강화시 최고 대가문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찬우 씨, 제발 꿈 깨요. 거물 몇 분을 좀 안다고 잘 난 체하지 말아요!”
반예린은 윤찬우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심지어 코웃음까지 쳤다.
“찬우 씨만 그 거물들을 안다고 생각해요? 강화시 최고의 대가문은 모를 것 같아요? 그분들이 알고 있는 거물은 당신보다 훨씬 더 많다고요! 그분들에 비하면 당신은 한낱 개미에 불과해요. 그분들이 발만 들어도 당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밟힌다고요!”
용씨 가문은 강화시 최고의 대가문으로서 강화시에 수십 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넓은 인맥을 한낱 윤찬우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3년 동안 윤찬우가 거물을 알게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거물들이 그를 위해 용씨 가문을 건드릴 리가 없다! 용씨 가문과 비교해볼 때 윤찬우가 뭐라고!
“윤찬우, 빨리 꺼져! 우리 반씨 가문의 일은 너같이 못난 놈이 해결할 필요도 없고 해결하지도 못해!”
소현주는 마치 파리를 쫓듯 윤찬우를 내쫓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반예린에게 말했다.
“용씨 가문이라고 했지? 나한테 하루만 시간을 줘. 용씨 가문 회장더러 직접 너한테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