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에 대한 윤찬우의 인상은 앙칼지고 까칠하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다. 그가 반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그 날부터 장모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맨날 모욕을 주지 않으면 이런저런 잡일을 시켰다.
전구가 고장 나면 그에게 고치라 명하였고 온 가족이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닥 청소 그리고 변기를 수리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아무튼 모든 궂은일과 힘든 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입었던 속옷마저 윤찬우에게 던지며 씻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그래도 윤찬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는 매일 반예린에게 이혼하라면서 더 잘 사는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라고 다그쳤다.
“장모님!”
윤찬우는 장모를 무척이나 미워했지만 어쨌거나 반예린의 남편이니 이혼하지 않은 이상 참는 수밖에 없었다.
“장모님이라고 부르지도 마! 난 너 같은 사위 둔 적 없어!”
소현주는 그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집을 나가서 아무런 연락이 없더니, 대체 우리 반씨 가문을 뭐라 생각하는 거야? 여기가 호텔이야?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게?”
“장모님, 3년 동안...”
윤찬우는 자신이 3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하고 싶었지만 소현주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됐어, 지어내지 마. 네가 3년 동안 뭘 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아. 차라리 그냥 죽지 그래. 아무것도 하는 게 없으면서 밥이나 축내는 주제에! 윤찬우, 내 말 잘 들어! 너 집에 3년이나 안 들어왔잖아. 법적으로 볼 때 너랑 예린이는 이 결혼 생활이 끝난 거랑 다를 바 없어. 다시 말해 이혼한 거랑 마찬가지라고. 이미 이혼했으니 앞으로는 우리 반씨 가문에 올 필요 없어! 널 반가워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소현주는 윤찬우에게 한마디 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대로 내쫓아버렸다. 단 1초라도 이렇게 못나고 쓸모없는 사위를 보고 싶지 않았다.
LS 그룹 회장의 외동아들과 윤찬우를 비교하면 할수록 윤찬우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3년 동안 집에 오지 않아서 예린이랑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윤찬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장모가 뭐라 하든 몇 번이고 참았지만 장모는 멈추기는커녕 점점 더 모진 말만 했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과는 발도 들이지 못 하게 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윤찬우, 내 말 잘 들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일 아침 당장 법원 가서 이혼 신청해.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예린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또 귀찮게 굴었다간 다리몽뎅이를 확 분질러 버릴 줄 알아!”
소현주는 윤찬우에게 손가락질하며 위협했다.
“예린이를 유지민한테 시집 보내려고 저와의 이혼을 이렇게 급히 서두르는 거죠?”
소현주의 태도에 윤찬우도 더는 뜸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소현주의 얼굴에 의아함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다시 감추었다.
“그렇다면 또 뭐? 네가 3년이나 집에 안 들어오는 바람에 예린이 혼자 생과부로 지냈어. 지금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뭐 어때? 너같이 못난 놈이랑 같이 지내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겠어?”
“그건 꿈도 꾸지 마세요. 유지민은 예린이랑 감히 결혼 못 해요!”
윤찬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오늘 오후 일을 겪고도 유지민이 반예린이랑 결혼하겠다고 하면 살 생각이 없다는 뜻과 같다.
“감히 못 한다고? 왜? 유지민이 널 무서워하기라도 할까 봐?”
윤찬우의 말에 소현주는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
“3년 못 본 사이에 다른 재주는 몰라도 허풍떠는 재주는 늘었네. 됐어, 윤찬우! 허세 그만 부려. 네가 어떤 놈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앞으로는 예린이 옆에서 떨어져. 안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테니까!”
더는 윤찬우와 왈가왈부하기 귀찮았던 소현주는 반예원의 팔을 잡아당겨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문을 쾅 닫고 윤찬우를 문전 박대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반예원을 잡아당기는 순간 반예원의 팔에 생긴 시퍼런 멍을 발견했다.
그녀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어떻게 된 거야?”
“엄마, 저...”
반예원도 무척이나 긴장한 눈치였다.
“찬우 저 자식이 그랬어?”
소현주는 사나운 얼굴로 윤찬우를 노려보았다.
“윤찬우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감히 예원이를 건드려? 오늘 너 이 자식을 절대 가만 안 둬!”
그러면서 손을 들고 윤찬우의 따귀를 내려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채 들리기도 전에 윤찬우가 덥석 잡아버렸다.
“장모님 딸이 혼자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다른 사람이 약을 타는 걸 제가 보고 구해온 거예요!”
“윤찬우! 이거 놔! 너 많이 컸다. 감히 나한테 손을 대?”
소현주는 너무도 화가 나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우리 예원이가 어떤 애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얘는 어릴 적부터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철이 들었는데. 그런 어지러운 곳은 절대 가지 않는다고! 그런데 술집을 갔다고?”
그녀는 윤찬우의 말을 아예 믿지 않았다. 분명 이 짐승만도 못한 놈이 자기 딸을 괴롭혔으면서 거짓말까지 지어내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믿지 못하겠으면 장모님 딸한테 물어보세요!”
윤찬우는 소현주의 손을 뿌리치며 반예원에게 말했다.
“처제, 처제가 직접 얘기해 봐!”
“저... 저 술집 가지 않았어요. 윤찬우가 지금 절 모함하고 있어요...”
반예원이 눈물까지 글썽이니 정말로 윤찬우가 그녀를 모함한 것처럼 보였다.
“제 몸에 상처는 윤찬우가 그런 거예요. 제가 혼자인 걸 보고 밤도 어두웠겠다 그 참에 저한테 몹쓸 짓을 하려 했어요. 하도 제가 빨리 도망쳤길래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어요! 그리고 이 일을 얘기하지 말라고 협박까지 했어요. 만약 얘기하면...”
반예원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몹쓸 짓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윤찬우, 이래도 발뺌할 거야?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딸의 말에 소현주는 너무도 화가 나 다시 한번 윤찬우의 따귀를 내려치려 했다.
“예원이는 너의 처제야. 아무리 우리 반씨 가문이 미워도 그렇지 처제한테 어떻게 그런 못된 짓을 할 수 있어! 이 파렴치한 놈아! 절대 용서치 않을 거다!”
소현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때 방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소현주의 남편이자 윤찬우의 장인어른인 반정운이 문 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며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의 뒤로 오후에 금방 만났던 반예린이 따라 나왔다.
“여보, 당신 딸이 몹쓸 짓을 당했어요. 당장 이 쌍놈 자식을 죽여버려요!”
반정운의 목소리에 소현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엄청난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