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지민은 애초에 반예린에게 구애하기 전, 진작 사람을 시켜 그녀의 전남편 윤찬우를 낱낱이 조사했는데 결과는 아주 단순했다. 윤찬우는 폐인 같은 삶을 살다가 데릴사위로 반씨 가문에 들어왔었다. 사람들에게 쫓기고 궁지에 몰렸을 때 마지못해 데릴사위로 들어왔는데 만약 반예린이 그때 구해주지 않았다면 윤찬우는 진작 칼에 찔려 죽었을 것이다.
이런 폐인 따위가 어떻게 수장이란 말인가? 이 세상 남자가 전부 다 죽는다고 해도 윤찬우와 같은 폐인은 절대 수장을 할 자격이 없다.
“윤찬우,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유지민은 이를 악물고 그에게 물었다.
명색이 LS 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그가 고작 데릴사위에게 몰려 이 지경이 되었으니 만에 하나 소문이라도 새어나가면 얼굴조차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없다.
“나? 네가 건드릴 수 없는 사람!”
윤찬우는 차갑게 미소 지으며 그를 힐긋 바라봤다.
“잘 들어. 오늘부로 네가 또다시 예린이한테 집착하는 꼴을 들켰다가 그땐 너희 LS 그룹을 아작낼 거야.”
협박이다.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협박이다.
대놓고 협박받은 유지민은 마치 그를 찢어 죽일 듯이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다만 윤찬우는 따가운 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반예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린아, 너희 집안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난 잘 몰라. 하지만 무슨 역경이든 내가 전부 해결해줄게.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집갈 필요는 없어. 넌 절대 그러지 마.”
사소한 일?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은 또다시 입을 삐죽거렸다.
반씨 가문은 지금 강화시 최고 대가문인 용씨 가문에 죄를 지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용씨 가문이 입만 열어도 전체 강화시가 뒤흔들릴 만큼 영향력이 크다.
하여 반씨 가문은 반예린과 유지민의 결혼을 성사시켜 LS 그룹의 세력을 빌어 용씨 가문에 맞서 싸울 예정이다.
“윤찬우, 그만해.”
반예린이 드디어 윤찬우에게 고함을 질렀다.
“찬우 씨, 이 몇 년 동안 당신이 밖에서 어떤 거물들을 만나왔는지, 또 무엇을 팔아서 그런 거물들에게 잘 보였는지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그런 거물들은 찬우 씨를 잠시 지켜줄 순 있어도 평생 지켜주진 못한다고요. 그들이 매정하게 당신을 발로 힘껏 차버린다면 그땐 어쩔건데요? 찬우 씨가 무슨 처지인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잖아요. 우리 집안 사정은 당신이 해결해줄 수 없어요. 해결해줄 능력도 못 되고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세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마지막 한마디에 반예린은 거의 온몸의 힘을 다해 죽도록 소리쳤다. 윤찬우가 어떤 인간인지는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빈둥빈둥 놀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집 청소 외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
3년 만에 다시 나타난 그가 어마어마한 거물이 되었다는 건 절대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왜? 종일 빈둥거리며 직장 하나 없는 그가 왜? 남들에게 놀림을 당해도 바보처럼 묵묵히 있던 그가 왜?
우연한 기회에 어느 거물에게 잘 보였거나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해서 거물을 지켜줬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만에 하나 그런 거물들이 그를 뻥 차버렸을 때, 윤찬우가 죄지었던 사람들이 맹수처럼 달려와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텐데!
“거물에게 잘 보여?”
여기까지 들은 윤찬우는 그제야 반예린의 말뜻을 알아채고 실소를 터트렸다.
“예린아, 너에겐 그 사람들이 거물일지 몰라도 내겐 그저 한낱 개미에 불과해. 이 세상엔 감히 내 앞에서 자신을 거물이라고 부르는 자는 없어. 왜냐하면 내가 바로 가장 큰 거물이거든!”
팔도를 휩쓴 수라 군신, 2년이란 짧은 시간에 팔도를 평정 짓고 천하를 다스린 이 세상 최고의 위엄을 자랑하는 왕! 수라 영패를 제시하는 순간, 만천하가 그의 명령에 따를 것을!
다들 우러러보는 강북의 일인자도 그의 앞에선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여야 한다.
“찬우 씨, 드디어 미쳤네요.”
반예린은 더이상 그의 잘난 척하는 꼴을 참을 수 없었다.
“제발 부탁인데 얼른 가서 정신과 치료 좀 받아.”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더는 윤찬우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반예린이 약속장소에 나온 것도 사실은 유씨 가문의 힘을 빌려 용씨 가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윤찬우가 단단히 유지민의 미움을 샀으니 그녀도 더는 이 자리에 남아있을 의미가 없었다.
“예린아!”
윤찬우가 외쳐봐도 그녀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단호하게 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찬우는 재빨리 쫓아갔다.
윤찬우가 문밖을 나선 순간 긴장했던 룸 안의 분위기가 그제야 조금 풀렸다!
유지민은 걸상에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원망 섞인 눈길로 윤찬우의 뒷모습을 째려봤다. LS 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그가 살면서 이런 굴욕을 겪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는 좀처럼 이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지민 씨, 저 자식 반드시 따끔하게 혼내세요. 너무 잘난 척이에요 정말!”
“맞아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물이라지 않나. 내가 볼 땐 그냥 미친 사람 같아요.”
“정신병원에서 이제 막 뛰쳐나온 환자 같아요!”
윤찬우가 떠나자 한 무리 사람들이 금세 그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윤찬우가 이 자리에 없으니 다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거물은 개뿔! 아까 예린이가 하는 말 들었지? 그냥 우연찮케 운이 따라준 걸 거야. 어쩌다 여느 거물급 인물에게 잘 보였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남궁연우 씨와 같은 큰 인물이 어떻게 쟤한테 깍듯하게 인사까지 하겠어?”
“누가 알아? 몸까지 팔아가며 거물들의 환심을 샀을지. 그렇잖아, 어떤 거물들은 아주 특이한 취미가 있잖아 종종.”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특이한 취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다들 입 닥쳐!”
사람들이 한창 윤찬우를 놀리는 데 신이 났을 때 유지민이 손바닥으로 힘껏 탁자를 내리쳤다.
“윤찬우, 네가 어떤 거물급 인물의 환심을 샀을지 난 상관 안 해. 하지만 이것 하나만 꼭 기억해둬. 여긴 강화시야! 강화시는 바로 우리 유씨 집안의 구역이라고!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지. 세 날만 기다려. 반드시 널 순종적인 개로 만들어주겠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게 빌게 할 거야. 그땐 너도 알게 되겠지. 강화시의 진정한 거물이 대체 누구일지 말이야.”
지금 이 순간 유지민의 머릿속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윤찬우를 죽이고 전체 반씨 가문도 윤찬우와 함께 매장하리라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