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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건드릴 수 없는 사람

  • 유지민은 악의에 찬 눈빛으로 윤찬우를 빤히 쳐다봤다.
  •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윤찬우 이 인간은 폐인이잖아.’
  • 사실 유지민은 애초에 반예린에게 구애하기 전, 진작 사람을 시켜 그녀의 전남편 윤찬우를 낱낱이 조사했는데 결과는 아주 단순했다. 윤찬우는 폐인 같은 삶을 살다가 데릴사위로 반씨 가문에 들어왔었다. 사람들에게 쫓기고 궁지에 몰렸을 때 마지못해 데릴사위로 들어왔는데 만약 반예린이 그때 구해주지 않았다면 윤찬우는 진작 칼에 찔려 죽었을 것이다.
  • 이런 폐인 따위가 어떻게 수장이란 말인가? 이 세상 남자가 전부 다 죽는다고 해도 윤찬우와 같은 폐인은 절대 수장을 할 자격이 없다.
  • “윤찬우, 너 대체 정체가 뭐야?”
  • 유지민은 이를 악물고 그에게 물었다.
  • 명색이 LS 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그가 고작 데릴사위에게 몰려 이 지경이 되었으니 만에 하나 소문이라도 새어나가면 얼굴조차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없다.
  • “나? 네가 건드릴 수 없는 사람!”
  • 윤찬우는 차갑게 미소 지으며 그를 힐긋 바라봤다.
  • “잘 들어. 오늘부로 네가 또다시 예린이한테 집착하는 꼴을 들켰다가 그땐 너희 LS 그룹을 아작낼 거야.”
  • 협박이다.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협박이다.
  • 대놓고 협박받은 유지민은 마치 그를 찢어 죽일 듯이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 다만 윤찬우는 따가운 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반예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 “예린아, 너희 집안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난 잘 몰라. 하지만 무슨 역경이든 내가 전부 해결해줄게.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집갈 필요는 없어. 넌 절대 그러지 마.”
  • 사소한 일?
  •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은 또다시 입을 삐죽거렸다.
  • 반씨 가문은 지금 강화시 최고 대가문인 용씨 가문에 죄를 지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용씨 가문이 입만 열어도 전체 강화시가 뒤흔들릴 만큼 영향력이 크다.
  • 하여 반씨 가문은 반예린과 유지민의 결혼을 성사시켜 LS 그룹의 세력을 빌어 용씨 가문에 맞서 싸울 예정이다.
  • “윤찬우, 그만해.”
  • 반예린이 드디어 윤찬우에게 고함을 질렀다.
  • “찬우 씨, 이 몇 년 동안 당신이 밖에서 어떤 거물들을 만나왔는지, 또 무엇을 팔아서 그런 거물들에게 잘 보였는지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그런 거물들은 찬우 씨를 잠시 지켜줄 순 있어도 평생 지켜주진 못한다고요. 그들이 매정하게 당신을 발로 힘껏 차버린다면 그땐 어쩔건데요? 찬우 씨가 무슨 처지인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잖아요. 우리 집안 사정은 당신이 해결해줄 수 없어요. 해결해줄 능력도 못 되고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세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 마지막 한마디에 반예린은 거의 온몸의 힘을 다해 죽도록 소리쳤다. 윤찬우가 어떤 인간인지는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다.
  • 빈둥빈둥 놀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집 청소 외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
  • 3년 만에 다시 나타난 그가 어마어마한 거물이 되었다는 건 절대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다!
  • 그가 왜? 종일 빈둥거리며 직장 하나 없는 그가 왜? 남들에게 놀림을 당해도 바보처럼 묵묵히 있던 그가 왜?
  • 우연한 기회에 어느 거물에게 잘 보였거나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해서 거물을 지켜줬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 하지만 이렇게 되면 만에 하나 그런 거물들이 그를 뻥 차버렸을 때, 윤찬우가 죄지었던 사람들이 맹수처럼 달려와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텐데!
  • “거물에게 잘 보여?”
  • 여기까지 들은 윤찬우는 그제야 반예린의 말뜻을 알아채고 실소를 터트렸다.
  • “예린아, 너에겐 그 사람들이 거물일지 몰라도 내겐 그저 한낱 개미에 불과해. 이 세상엔 감히 내 앞에서 자신을 거물이라고 부르는 자는 없어. 왜냐하면 내가 바로 가장 큰 거물이거든!”
  • 팔도를 휩쓴 수라 군신, 2년이란 짧은 시간에 팔도를 평정 짓고 천하를 다스린 이 세상 최고의 위엄을 자랑하는 왕! 수라 영패를 제시하는 순간, 만천하가 그의 명령에 따를 것을!
  • 다들 우러러보는 강북의 일인자도 그의 앞에선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여야 한다.
  • “찬우 씨, 드디어 미쳤네요.”
  • 반예린은 더이상 그의 잘난 척하는 꼴을 참을 수 없었다.
  • “제발 부탁인데 얼른 가서 정신과 치료 좀 받아.”
  •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더는 윤찬우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 오늘 반예린이 약속장소에 나온 것도 사실은 유씨 가문의 힘을 빌려 용씨 가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윤찬우가 단단히 유지민의 미움을 샀으니 그녀도 더는 이 자리에 남아있을 의미가 없었다.
  • “예린아!”
  • 윤찬우가 외쳐봐도 그녀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단호하게 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찬우는 재빨리 쫓아갔다.
  • 윤찬우가 문밖을 나선 순간 긴장했던 룸 안의 분위기가 그제야 조금 풀렸다!
  • 유지민은 걸상에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원망 섞인 눈길로 윤찬우의 뒷모습을 째려봤다. LS 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그가 살면서 이런 굴욕을 겪긴 오늘이 처음이었다.
  • 그는 좀처럼 이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 “지민 씨, 저 자식 반드시 따끔하게 혼내세요. 너무 잘난 척이에요 정말!”
  • “맞아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물이라지 않나. 내가 볼 땐 그냥 미친 사람 같아요.”
  • “정신병원에서 이제 막 뛰쳐나온 환자 같아요!”
  • 윤찬우가 떠나자 한 무리 사람들이 금세 그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윤찬우가 이 자리에 없으니 다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 “거물은 개뿔! 아까 예린이가 하는 말 들었지? 그냥 우연찮케 운이 따라준 걸 거야. 어쩌다 여느 거물급 인물에게 잘 보였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남궁연우 씨와 같은 큰 인물이 어떻게 쟤한테 깍듯하게 인사까지 하겠어?”
  • “누가 알아? 몸까지 팔아가며 거물들의 환심을 샀을지. 그렇잖아, 어떤 거물들은 아주 특이한 취미가 있잖아 종종.”
  •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특이한 취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 “다들 입 닥쳐!”
  • 사람들이 한창 윤찬우를 놀리는 데 신이 났을 때 유지민이 손바닥으로 힘껏 탁자를 내리쳤다.
  • “윤찬우, 네가 어떤 거물급 인물의 환심을 샀을지 난 상관 안 해. 하지만 이것 하나만 꼭 기억해둬. 여긴 강화시야! 강화시는 바로 우리 유씨 집안의 구역이라고!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지. 세 날만 기다려. 반드시 널 순종적인 개로 만들어주겠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게 빌게 할 거야. 그땐 너도 알게 되겠지. 강화시의 진정한 거물이 대체 누구일지 말이야.”
  • 지금 이 순간 유지민의 머릿속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윤찬우를 죽이고 전체 반씨 가문도 윤찬우와 함께 매장하리라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