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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머리를 숙이다

  • ‘이사장이 가서 좋게 말해도 해결이 안 된다고?’
  • 이사장과 황사장은 옛 동창이었고 사이가 좋다고 했었다.
  • 아까까지만 해도 날뛰던 임봉은 지금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 만약 임우진만이 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녀에게 머리를 굽히고 빌 수밖에 없었다.
  • 임강은 얼굴색이 새파래졌다.
  • 그도 일이 이렇게까지 처리하기 힘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우진이 이녀석,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이렇게나 황사장의 보호를 받는단 말인가?’
  • “이 계집애가!”
  • 임강은 냉소를 띠었다,
  • “보아하니, 걔가 침대 위에서 실력이 좋은가 보구나. 평소에 순진한척은 다 하더니, 다 거짓이구나!”
  • ‘황사장의 시중을 잘 들어서 황사장이 이렇게 그녀를 보호해 주는 건가?’
  • 개뿔!
  • 사실대로 말해, 지금 그더러 임우진에게 가서 빈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 개한테 빌면 빌었지 그는 절대 쓸모없는 임문 일가한테 빌진 않을 것이다.
  • “따르릉…”
  • 임봉의 휴대폰이 또 울려댔다.
  • 발신자 번호를 본 그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다.
  • “할아버지세요.”
  • 임봉은 눈물이 날 뻔했다.
  • 현재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임소의 전화를 받는 것이다.
  • 지금 이 프로젝트는 그가 책임지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그가 첫 번째 책임자였다.
  • “받아!”
  • 임강이 말했다.
  • 임봉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
  •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결과는 더 엄중했다.
  • “할아버지.”
  • 임봉은 겨우 입을 열었다.
  • “봉아, 황사장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었냐?“
  • 임소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그가 현재 가장 관심하는 것은 바로 이 프로젝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임가에서 여기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했기에 그만큼 아주 중요했다.
  • “순리롭게 잘 돼가고 있어요.”
  • 임봉은 임강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의 눈짓에 얼른 거짓말로 둘러댔다.
  • “이제 황사장님께서 시간이 되면, 곧바로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거예요.”
  • “그럼 됐다.”
  • “너 꼭 신경 써야 된다. 이 프로젝트는 절대 차질이 생겨서는 안 돼, 문제가 생기면, 그땐 넌 끝이야!”
  • 이윽고 임소는 전화를 끊었다.
  • 임봉의 손에 땀이 찼다 .
  • 할아버지의 불같은 성미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만약 정말 문제가 생긴다면, 자기를 해고하거나 한 대 때려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아버지, 이제 정말 어떡해요.”
  • 임봉은 눈물이 날 뻔했다.
  • 임우진 그 계집이 자신에게 던져놓은 이 골치 아픈 일 때문에 그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 임강의 안색은 더더욱 나빠졌다.
  • 설마 그들 부자가 정말 임문네 집에 가서 굽실거리며 사정해야 하는가?
  • 임우진 일가를 거지 취급하며 여태껏 무시했는데 이제 와서 사정한다는 건 스스로 뺨을 내리치는 거랑 뭐가 다른가?
  • 그는 절대로 이런 창피를 당할 수 없다!
  • “봉아, 네가 다녀오거라.”
  • 임강은 한참을 생각한 후 말했다,
  • “가서 임우진에게 부탁해, 머리를 굽히고 빌어, 설령 너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해도 꿇어, 임우진이 계약만 체결할 수 있으면 상관없어!”
  • “아버지…”
  • “그럼 내가 무릎 꿇고 빌까?!”
  • 임강은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고함을 질렀다.
  • 임강은 임봉보다 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 윗사람인 그더러 아랫사람에게 부탁을 하라니 소문이라도 나면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다.
  • 임봉은 무서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이 일은 애초 그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이로 하여 아버지가 체면을 잃게 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맞아 죽을 것이다.
  • 임봉은 할 수 없이 이를 악물고 풀이 죽어 임우진의 집으로 향했다.
  • 그 시각.
  • 임우진 일가네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 식탁은 큰 편이 아니었다. 각자 한 귀퉁이에 앉은 네 사람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 임우진 집에, 처음으로 밥 먹는 사람이 한 명 늘었다.
  • 심지어 그 사람은 그들의 데릴사위였다.
  • 임문은 식사할 때 종래로 말이 없었고 소매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그는 강녕이 싫었다. 더욱이 자기 딸이 이런 무능한 남자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 하지만 오후에 강녕이 자신을 위해 나서주니 그녀가 눈이 멀지 않은 이상 못 본체할 수 없었다.
  • 그러나 임우진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오히려 강녕은 제 집인 것 마냥 사양치 않았다.
  • “어머님, 음식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맛이 일품이에요!”
  • “제가 얼마 만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지 모르겠어요!”
  • “저 한 그릇 더 먹어도 될까요?”
  • 식탁의 반찬들은 고기반찬은 적고 야채 반찬은 많았지만 강녕은 입맛에 맞는지 아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 이런 모습을 보며, 임우진은 아마 그가 밖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 소매가 채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임우진은 강녕의 밥그릇을 받아가 한 그릇을 더 담았다.
  • “고마워 여보.”
  • 여보라는 두 글자에 밥주걱을 쥔 임우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 “쿵쿵쿵!”
  • 분위기가 더 어색해질 찰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임문은 고개를 들어 한번 보더니 이윽고 또 다시 안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사납게 쏘아보는 소매에 의해 꼼짝 못하고 있었다.
  • “누구세요!”
  • 소매가 외쳤다.
  • “작은 어머니, 저, 임봉이에요!”
  • 그리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순간 소매는 임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왜 다시 왔는지 의아했다.
  • ‘설마, 정말 강녕이 말한 것처럼, 우진이한테 빌러 왔다고?’
  • 모녀는 곧바로 강녕을 바라보았지만 강녕은 머리를 숙이고 밥 먹는데만 집중했다.
  • 소매가 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젖히자 임봉은 즉시 웃는 얼굴을 보였다.
  • “작은 어머니, 식사중이세요? 우진이 있어요?”
  • 임봉은 그의 아버지 앞에서도 보이지 않던 간사스런 웃음을 지으며 잘 보이려고 애썼다.
  • 그는 머리를 기웃거려 임우진이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서둘러 말했다.
  • “우진아, 전의 일은 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너한테 사과할게. 너그러운 네가 이번 한번만 날 용서해줘.”
  • 임우진네 세 사람은 순간 멍해졌다.
  • 임봉이 정말로 머리를 굽히고 용서를 빌고 있다.
  • “임씨 그룹은 네가 없으면 안 돼. 네가 떠난 지 하루 만에 회사가 엉망이 됐어.”
  • 임봉은 허리를 살짝 구부린 채 멋쩍게 웃었다.
  • “네가 돌아와 줘, 아직도 네가 책임질 프로젝트는 많고도 많아.”
  • 그는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기만 하면 이 집 사람들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 “네 아버지는?”
  • 임우진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 또 강녕이 그녀를 도와 말을 꺼냈다.
  • 그는 게걸스레 먹으면서 임봉을 힐끗 쳐다보았다.
  • “왜 오지 않았지?”
  • 임봉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하였다.
  • “아버지께서는 너무 바쁘셔서, 나보고 우진이에게 와서 사과해라고 했어. 매부도 이러지 말고 날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 임봉은 공손히 부탁했다.
  • 심지어 데릴사위 강녕한테도 사과를 했다.
  • “안 돼.”
  • 하지만 이내 강녕은 고개를 저었다.
  • “우진이를 해고한 건 네 아버지니깐, 사과를 해도 네 아버지가 와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린 사과 안 받아.”
  • 임봉은 순간 화가 폭발했다.
  • 이 자식이, 보자보자 했더니 못 하는 소리가 없었다.
  • “너…”
  • 임봉은 욕설을 퍼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 ‘이 미친놈이 또 왜 이래! ‘
  • 임우진네 가족들도 강녕을 쳐다보았다. 행여 강녕이 일을 크게 벌릴까봐 무서웠다.
  • 임봉이 와서 이렇게 사과를 하는데, 이 일은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 그들 부자의 미움을 사고 싶진 않았다.
  • “아버님, 어머님, 우진이는 귀한 딸이에요. 예전에 우진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땐 두 분이 관여하셨지만,”
  • 강녕은 마지막으로 한 입 먹었다.
  • “하지만 지금은 저의 아내니깐, 우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제가 책임져야죠.“
  • 이윽고 그는 일어섰다.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떠돌았다.
  • “내 아내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든지, 내가 다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 순간, 무서운 살기에 주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지더니 임봉은 자기도 모르게 진저리 쳤다.
  • “강녕, 네 분수를 알고 행동하지 그래?”
  • 임봉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 그는 심지어 무릎 꿇을 각오까지 했었다.
  • 그러나 강녕은 전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무릎을 꿇어도 쓸모가 없었다.
  • “네 아버지더러 와서 사과해라고 전해. 안 그러면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거야.”
  • 강녕은 인정사정없었다.
  • “안 꺼져? 우리 집은 이미 식사 끝나서 개한테 줄 밥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