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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너는 나의 아내이니까

  •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임우진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 그녀는 머리를 들어 윗쪽에 서 있는 임소를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녀에게 관심이라곤 없었다.
  • 심지어 그녀가 태어났을 때에도 보러 오지 않았다. 고작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 지금은 또 그의 욕심때문에 자신의 남편을 선택하고 인생을 결정하려 한다.
  • 임우진은 또 울컥했다.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입을 열어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의자에 앉아있던 임문이 머리를 흔들며 마치 그녀에게 하지 말라는듯 애원으로 가득 찬 눈을 보고나니 그녀는 참을수 밖에 없었다.
  • “여러분, 저희 임가 내부에서의 선별을 거쳐 열명의 우수한 후보중 가장 우수한 분이 우진의 남편으로 됩니다. 여러분들도 두사람을 위해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 임소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무대아래에선 열렬한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 하지만 임우진의 귀에는 이 모든 것이 그녀를 비웃고 동정하는 것으로만 들렸다.
  •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눈물을 삼켰다.
  • “아버지, 이분이에요.”
  • 임강은 정교한 카드를 꺼내어 임소에게 드렸다. 카드에는 최종 결정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 그들은 진작에 배경조사를 했었다. 이 사람은 아무런 배경도 없는 고아였고 서른살도 넘은데다가 학력도 낮고 문화도 장점도 없는 떠돌이라 어쩌면 최고로 무능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었다.
  • 심지어는 간헐적인 정신병도 있었다.
  • 듣는 바에 의하면 유전이라고 한다!
  • 어찌 보면 이 사람이 진짜 임우진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임가의 재산이 더 이상 임우진과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임우진의 자식도 임가의 재산을 한 푼도 떼어가지 못한다!
  • 임강은 구석진 곳에 앉아있는 임우진 일가족을 힐끗 보더니 비열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 “이어서 마지막으로 선출된 사람을 발표하겠습니다!”
  • 임소는 노안때문에 앞이 잘 안보여서 실눈을 뜨고 다시 보더니 외쳤다.
  • “이 행운의 청년은 바로 강녕입니다!”
  • 곧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호텔 뒷문쪽을 바라보았다.
  • 당연히 데릴사위가 된 사람만이 뒷문으로 들어올수 있었다.
  • 이때 뒷문이 열리면서 한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 임문부부는 차마 이 광경을 볼수가 없었다.
  • 그들은 맏형이 가장 무능한 사람을 임우진의 남편으로 선정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임우진은 오히려 고개를 돌려 봤다. 곧 자신의 남편이 될 사람이 누구일까 알고 싶어했다.
  • 이때 강녕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시선이 마주쳤다.
  • 강녕은 곧바로 임우진에게 걸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비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그녀의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
  • "강녕씨, 그 많은 사람을 제치고 우진의 남편이 되고, 우리 가문의 데릴사위가 된 걸 축하하네."
  • 임강이 입을 열어 말했다.
  • "우리에게 감사할 필요 없네. 다만 우진이를 잘 챙겨 주길 바랄 뿐이야."
  • 그는 임가에서 떠돌이 고아였던 강녕이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 임강은 임우진에게 다가가 관심 가득 한 얼굴을 하고서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 "우진아, 따라와."
  • 그는 임우진의 손을 잡고 강녕에게 데려가 정중하게 그녀의 손을 강녕의 손에 올렸다.
  • 이 장면을 본 하객들은 마치 행복한 약혼식을 보는 것처럼 박수를 쳤다.
  • 하지만 임문네 가족들은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내일 동해시 모든 사람들도 임우진의 남편이 무능한 데릴사위라는 걸 알게 될 것이며, 이는 그들의 식사 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임우진은 망연자실했다.
  • 심지어는 연회가 언제 끝났는지도 몰랐다.
  • 연회가 끝나자마자 소매는 울면서 떠났다. 임문은 할 수 없이 휠체어를 굴려 아내를 쫓아갔다.
  • 호텔 문앞,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불어오자 임우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 그녀는 무표정하게 곁에 서 있는 강녕을 바라보며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 "아저씨, 난 아저씨를 탓하지 않아요."
  • 그녀는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저씨도 불쌍한 사람이니까요."
  • 강녕은 그녀보다 열 살이 많으니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 같았다.
  • 강녕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 눈앞의 사람은 바로 15년 전의 그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여전히 그렇게 착했다.
  • 부모님이 잘 살수만 있다면 이토록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 "어이, 우진아, 축하해."
  • 홀안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나와 그녀의 두 손을 맞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 "훌륭한 남편을 찾은 걸 축하해!"
  • 그 사람은 일부러 훌륭하다는 단어에 힘을 실으면서 비웃음이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 임우진은 얼굴을 구기고 입술을 깨문 채 주먹을 꼭 쥐고 임봉을 쳐다봤다.
  • "아버지가 네 결혼 문제 때문에 속을 많이 썩였어."
  • 임봉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이제 드디어 너도 남편이 있으니, 막내 삼촌께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
  •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임우진의 창백한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강녕을 힐끗 보았다.
  • 아버지 임강이 찾아온 무능력한 데릴사위, 임봉은 자료에 쓰인 것들을 생각만 해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 사람이 이 정도로 무능할 수 있다니.
  • "매부, 우리 가문 데릴사위로 들어왔으니 우진이한테 잘해야 해, 알겠지?"
  • 임봉은 고소해 하며 말했다.
  • "아이를 일찍 낳는다면 할아버지도 기뻐하실거야. 어떤 아이를 낳든, 설령 바보라도 우리 임가에서 충분히 키울 수 있어."
  • 임우진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 "임봉, 말 다 했냐?"
  • "우진아, 난 너희들을 축복하는 거야."
  • “할아버지께서 너희들이 애를 일찍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 내가 보기엔 오늘 밤에 돌아가서 그것부터 해결하는 게 좋을것 같은데. 바보를 낳는다면 더 재밌겠다.”
  • “너!”
  • 임우진이 손을 들어 올리자 임봉은 바로 정색했다.
  • “왜, 때리기라도 하게?”
  • 임우진은 화나고 억울했지만 입술을 꼭 깨물었다.
  • 오늘 그녀가 임가 장손을 때린다면 내일 그녀의 가족들은 이 집에서 쫓겨날 것이다.
  • 할아버지 눈에는 손자만 임가 사람이고 그녀는... 자격조차 없었다.
  • 임우진이 손을 내리자 임봉은 더욱더 득의양양했다.
  • 어려서부터 그가 임우진을 괴롭힐 수는 있어도 임우진은 그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면 안 됐다.
  • “난 너를 위해 조언해준 건데 받아들이지 않다니.”
  • 임봉은 일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 “네 아버지가 불구가 된 몇 년간, 우리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너희 세 식구는 벌써 굶어죽었어. 지금도 신경 써서 남편감을 찾아주었잖아.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에 나를 때리려고 해?”
  • “할아버지께서 네가 나를 때리려 한걸 알면, 과연…”
  • 임우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그녀는 분노에 찬 눈길로 임봉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사람이 이 정도로 파렴치할 수 있을까!
  • 그녀가 고개를 돌려 가려고 하자 임봉은 또다시 그녀를 막아섰다.
  • “우진아, 이건 할아버지가 내린 결정이야. 불만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말해. ”
  • 임우진은 억울해서 눈물이 났고 분노가 극에 달했다.
  •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 줄곧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강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임우진은 고개를 들어 강녕을 바라보면서 무심코 내뱉었다.
  • “뺨 한 대만 때리고 싶어요!”
  • “짝!”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뺨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임봉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얼굴을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끼고서야 자신이 뺨을 맞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 강녕이 때린 거였다.
  • 임봉과 임우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 강녕이 임봉을 때리다니?
  • 그는 일개 데릴사위일 뿐인데!
  • “당신… ”
  • 임우진은 놀라 삽시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임봉이 강녕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왜 내 말을 들어요?”
  • 임우진은 입술을 움직였다.
  • “넌 내 아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