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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또 발작이네!

  • 황옥명의 성질은 아주 난폭하기로 소문이 났다. 5년이라는 시간 안에 이 자리까지 오기에는 결코 그의 자비로움 때문은 아니었다.
  • 그는 콧방귀 뀌는 소리와 함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서 가버렸다.
  • 그 임원은 자리에서 꼼작할 수 없었고 얼굴은 빨개져 어쩔 줄 몰라 했다.
  • 그는 임우진에게 고작 몇 마디 비꼬는 말만 했을 뿐인데 황사장이 이렇게까지 화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 “임사장님….”
  • 그는 눈에 설움이 가득하여 임강을 쳐다보았다.
  • “내일 사직서를 내 책상 위에 갖다 놓게.”
  • 이 사람은 자신의 사람인데 황옥명이 무슨 권리로 자르라고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 하지만 사업은 막 시작되었고 아직 모르는 부분도 많아서 그는 황옥명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었다.
  • 그 말을 듣자 임원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주위 사람들은 더더욱 입을 다물었다.
  • 고작 임우진한테 말 몇 마디로 비꼬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해고 한다는 생각에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 그는 임씨 그룹의 최고 엘리트라고 할 수 있었다.
  • 보아하니 황옥명은 지금 임우진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은데, 중요한 건 화풀이를 왜 엉뚱한데 하냐는 것이다.
  • “다들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 임봉이 소리치자 직원들은 자기 자리로 흩어져 갔다.
  • 그는 임강의 곁으로 가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아버지, 임우진이랑 황옥명은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요?”
  • 분명 그들이 추측했던 연인 관계는 아닐 것이다. 황옥명의 태도에는 임우진에 대한 엄청난 존경스러움과 더불어 두려움도 보였기 때문이다.
  •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 황옥명이라는 사람은 동해시의 지상조직이든 지하조직이든 간에 필요하면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다 소환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임가조차도 그의 앞에선 깍듯이 예의를 차려야 했다.
  • 고작 임우진 주제에 무슨 능력으로 황옥명을 이렇게도 쩔쩔매게 만들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 “알아봐!”
  • 임강은 냉담한 얼굴로 한마디만 했다.
  • 갑자기 발생한 일 때문에 그의 계획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 만약 임우진과 황옥명이 진짜로 이런 상하 관계라면 그는 결코 임우진을 건드릴 수 없었다.
  • “네!”
  • 임봉은 즉시 떠났다.
  • 사무실 안.
  • 임우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 그녀는 강녕 앞에 다가가서 뒷짐을 쥐고 마치 실험쥐를 관찰하듯이 강녕을 보며 말했다.
  • “어떻게 된 일인가요?”
  • 임우진은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 “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안 믿을 거니깐.”
  • 강녕은 눈을 반쯤 감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 “그래. 나랑 상관 있어.”
  • 임우진은 왜 강녕이 이 사업은 자기만 할 수 있고 임가의 사람들은 누구도 안 된다고 확신했는지 알 수 있었다.
  • 또한 그는 임씨 부자를 무조건 머리를 숙이게 하고 자신을 다시 출근하게 만든 이유도 알 수 있었다.
  • 이것은 분명 강녕이 시킨 일이다.
  • 하지만 그는 단지 떠돌이일 뿐인데 황옥명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 그녀는 아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봤던 황옥명이 강녕 앞에서의 그 공손한 모습을 떠올렸다.
  • “나랑 황씨는 아는 사이야.”
  • 임우진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해명하기를 기다리는 걸 본 순간 그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 “그가 지금처럼 이렇게 성공하기 전에는 나랑 같은 떠돌이 신세였어. 한 번은 그가 굶어죽을 뻔한 걸 내가 만두 반쪽을 나눠줘서 나한테 신세를 진 거야.”
  • 오늘 그는 신세를 갚으러 온 거라고 한다.
  • 임우진은 어이가 없어하며 물었다.
  •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요?”
  •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모든 일이 믿을 수가 없었다. 강녕의 해명은 분명 자기 자신을 어린애로 취급하고 놀리는 행동이었다.
  • “혹시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 믿어?”
  • 강녕은 물었다.
  • 임우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지금 본인이 착한 사람이라고요?”
  • “아니. 네가 착한 사람이라고.”
  • 강녕이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 “그래서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거야.”
  • 그때의 그 사탕을 강녕은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 그는 수차례 위험에 빠져 죽음에 직면할 때마다 몸에 지니고 있던 그 사탕 포장지가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 “자, 깊게 생각하지 말고 일이 잘 해결됐으면 됐지 뭐.”
  • “가자. 퇴근할 시간이야.”
  • “네? 우리 출근한지 얼마 안 됐어요.”
  • 강녕은 들은 체도 않고 그녀의 손을 끌고 사무실을 나갔다.
  • 임씨 그룹 사옥을 나오면서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하나둘씩 멀찍이 떨어져서는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 임우진은 그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 하지만 강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그는 스쿠터에 임우진을 태우고 곧바로 자동차 대리점으로 향했다.
  • “우리 집으로 가는 방향이랑 다른데 혹시 저를 딴 곳에 팔아넘기려고 그래요?”
  • 스쿠터 뒤에 탄 임우진은 큰소리로 말했지만 바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 자신의 몸매와 얼굴 정도면 몸값이 어쩌면 비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강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BMW 매장 앞에 스쿠터를 세웠다.
  • “여기는 왜 왔어요?”
  • 임우진은 파란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로고를 보고는 의아해했다.
  • “차 사지도 않을 건데 여기는 왜 왔냐고요.”
  • 그녀는 차 살 돈이 없었다.
  • “누가 안 산 대.”
  • 강녕은 그녀를 끌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 가게 문을 들어서자마자 임우진은 전시장에 진열된 몇 종류의 새 차를 보고는 바로 마음을 뺏겨버렸다.
  • ‘너무 멋있어!’
  • 그녀는 차에 대해 아예 고려를 안 해본 건 아니다. 차가 있으면 이렇게 추운 날 힘들게 지하철 타고 출근 안 해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최대한 고려해 본 것은 현대나 기아 두개뿐이다. 왜냐면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 그런 그녀를 BMW 매장에 데려오니 아예 만질 엄두도 나지 않았다.
  • 안내 데스크에 있던 몇 명의 판매원들은 강녕과 임우진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못 본척했다.
  • “차 구매하시게요?”
  • 신인인 듯해 보이는 한 여성 판매원이 다른 판매원들이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자 친절하게 물어보면서 다가왔다.
  • 그들은 저만치 떨어져 이 신인에게 눈치가 없다고 은근히 비꼬는 듯 고개를 저으며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 그들은 모두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라 임우진의 표정을 보고 분명히 이 사람은 살 돈이 없다는 걸 단번에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 보통 돈 있는 사람들은 여유가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아예 물어보러 오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일은 신인 빼고 누가 아직도 그런 열정이 남아있어서 보기만 하고 사지 않는 사람들한테 시간 낭비를 하겠는가.
  • “당연하죠.”
  • 임우진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때 강녕이 물었다.
  • “차 안 살 거면 여기는 왜 왔겠어요?”
  • 말이 끝나자마자 임우진에게 물었다.
  • “어떤 모델이 마음에 들어?”
  • “네?”
  • 임우진은 강녕을 보며 속으로 이 자식 설마 정신병이 발작한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 그녀는 정확히 어떤 모델이 맘에 든다고 할 것도 없이 어느 거나 다 마음에 들었다. 단지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을 뿐.
  • “아저씨, 우리 집에 가요.”
  • 임우진의 얼굴은 또다시 화끈거렸다. 특히 멀리서 들려오는 몇몇 판매원들의 웃음소리가 그녀를 더욱 창피하게 만들어서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 “저런 스타일이 이분한테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안내해 주세요.”
  • 강녕은 임우진을 못 본척하고 그 여판매원에게 말했다.
  • “이것은 BMW 5시리즈이고 올해의 최신 모델로 동력 사양은 모두 이 분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이분 스타일과 차가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 여 판매원은 분명 신인인지라 상투적인 말이 적었다.
  • 강녕은 뒤돌아서 임우진을 한번 힐끗 봤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이 차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훤히 보여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 “좋아요. 그럼 이걸로 하죠.”
  • “네?”
  • 이번에는 여 판매원과 임우진이 동시에 낸 소리이다.
  • 멀찍이 있던 판매원들도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자신들도 모르게 머리를 돌려 이쪽으로 봤다.
  • 가게 들어선 지 불과 5분도 안되는데 이렇게 금방 결정했다니 농담인줄 알았다.
  • 그리고 자동차를 구매할 땐 최소한 가격은 물어봐야 할 것이고 시승도 해봐야 한다고 임우진은 생각했다. 그녀는 강녕이 아무리 지금 여자 앞에서 잘보이려고 가오를 잡는다고 해도 후과도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고객님, 해당 모델은 최신형이라서 할인이 따로 안 됩니다.”
  • 여 판매원은 착한 마음에 귀띔을 해줬다.
  • “상관없어요.”
  • 강녕은 지갑에서 은행 카드를 꺼냈다.
  • “비밀번호는 숫자 6이 여섯 개이고 자동차 번호판 등록은 다 알아서 해주시고 비용도 모두 같이 계산해 주세요.”
  • 여 판매원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아 신나게 달려가 영수증을 끊었다.
  • “아저씨, 잠깐만요. 저랑 얘기 좀 해요. 차가 이렇게 비싼데 돈은 어디서 나온 거예요?”
  • 임우진은 당황했다.
  • 그는 떠돌이였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대체 무슨 돈으로 이렇게 비싼 차를 살수 있냐는 말이다.
  • 이 자동차는 모든 걸 다 계산했을 때 얼추 8천만 원은 넘어 보였다.
  • 정신병이 또 발작한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강녕이 사람을 때리지 않으면 가끔 미친 사람처럼 굴더니 지금은 또 환각 상태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 임우진은 재빨리 여 판매원을 쫓아갔다. 카드 결제할 때 잔액 부족이라고 뜨면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