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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인정

  • “아주머니, 저희 어머니랑 무슨 얘기 중이셨어요?”
  • 강녕이 물었다.
  • 아주머니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 “아냐, 아냐, 별말 안했어.”
  •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그녀는 원래 소매네 식구들한테 몇 마디 더 빈정대려고 했다. 자기한테서 소개받은 남자를 거절한 바람에 자기까지 남의 구설수에 올라 한참동안 고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소매네를 더 이상 약 올릴 수 없게 되었다.
  • 소개해 줬던 관공서로 출근하는 사내아이는 한 달에 고작 7,80만 원 정도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인데 저렇게 비싼 자동차는 평생 꿈도 못 꿀 것이다.
  • 소매는 멍해서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임문은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 그 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 “이 차는…”
  • 소매는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왠지 임우진이 그에게 농담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녀는 강녕이나 임우진이나 둘은 분명 이런 고급 차를 살 돈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스쿠터는?”
  • 임문은 임우진의 스쿠터가 보이지 않자 다급히 물었다. 그건 자그마치 30만 원을 들여 산거란 말이다.
  • “4S 점에서 낡은 차를 가져가면 새 차로 바꿔주는 이벤트를 하더라고요.”
  • 임우진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진짜 거짓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녕은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너무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 도대체 어떤 가게가 그런 이벤트를 하는지, 그리고 아무 이런 이벤트를 한다 해도 스쿠터와 BMW 자동차를 바꿔주는 곳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다.
  • 임문은 믿을 수 없었지만 소매도 믿지 않았다. 바보들도 아니고.
  • “사실은 경품 추첨이 있었어요…”
  • 임우진의 머릿속에는 어떡하면 좀 더 그럴싸한 거짓말을 꾸며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완벽하게 속일 자신은 없었다.
  • “강녕 씨가 샀어요.”
  • 그녀는 긴 한숨을 쉰 후 진실을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 소매는 긴가민가하면서 강녕을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이 말을 믿고 있다고 씌어 있는 듯해 보였다.
  • 이 데릴사위는 자신의 집에 온 첫날부터 그녀를 놀라게 했다.
  • 의리 있게 나서서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임봉에게 뺨도 날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집을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비록 그녀는 강녕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고마운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 “됐어. 우리한테 설명할 필요가 없단다.”
  • 소매는 상관이 없단 듯이 말했다. 아무튼 그 짜증나는 아주머니가 입을 닫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
  • 그녀는 강녕을 한번 힐끗 보고 아무 말 없이 임문의 휠체어를 밀고 집으로 돌아갔다.
  • “어머니가 이걸 믿을까요?”
  • 임우진은 나지막하게 물었다.
  • “그게 중요해?”
  • 멀리서 그는 이웃집 아줌마가 기세등등하게 장모를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고 당연히 참을 수가 없어 소매를 도와 체면을 다시 세워주고 싶었다.
  • 자신의 장모 역시 누구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강녕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 “가자. 집에 가서 밥 먹자.”
  • 소매의 요리 솜씨는 꽤 뛰어났다. 적어도 강녕은 그렇게 생각한다.
  •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종 진수성찬도 먹어 보고 또 한 끼에 1억도 넘는 요리도 먹어 보았지만 여태껏 집 밥이라곤 먹어본 적이 없었다.
  • 강녕은 마치 뱃속에 거지라도 든 것 마냥 밥을 마구 해치우자 소매의 눈썹은 참지 못하고 아래위로 요동쳤다. 그녀는 한편 자신이 한 요리가 진짜 그렇게도 맛있는지 약간의 의심도 들었다.
  • “강녕아. 뭐 하나 물어볼게.”
  •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임문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 “저차, 네가 산거야?”
  •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자그마치 8천만 원이 넘는 거라고 했다.
  • “네. 그냥 자동차일 뿐이에요. 그렇게까지 놀라실 필요 없으세요.”
  • 강녕은 고개를 들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 “아버지 다리가 회복되시면 그때 아버지께도 한대 사드릴게요.”
  • 그의 이 한마디에 온 집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강녕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임문의 얼굴을 힐끗 보았는데 그의 얼굴에는 허탈함과 쓸쓸함이 보였고 소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더욱이 임우진마저 긴 한숨을 내쉬어 온 집안이 슬픔으로 가득 찼다.
  • “내 다리는…”
  • 임문은 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 회복할 기회가 과연 있을까, 그는 지금 폐인이나 마찬가지였고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제가 아는 의사가 한 분 계신데 이 방면에선 최고로 훌륭한 전문의입니다. 그분이 아마 방법이 있을 거예요.”
  • 강녕의 이 한마디에 임문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 금방 또 제정신이 들더니 이 떠돌이 강녕이 무슨 아는 사람이 있다고, 이놈은 겉으로 보기에는 얌전해도 순 허풍쟁이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 “진짜?”
  • 임우진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 그녀는 강녕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비록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파워는 그녀에게 숨기지 않고 보여줬다.
  • “물론 지금 바쁜 일 때문에 외국에 있는데 만약 그쪽 일이 끝나면 동해시로 오라고 하겠습니다.“ 강녕은 대답했다.
  • “진..진짜야?”
  • 임문은 급히 물었다.
  • 강녕은 고개를 끄덕였다.
  • “걱정하지 마세요.”
  • 임문이 갑자기 흥분하자 소매는 그의 손을 가볍게 툭 치고 나서야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 ‘이 갓 장가온 사위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 저녁을 다 먹고 임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임우진은 오후에 쓸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강녕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 “강녕아. 이리 와 봐.”
  • 소매는 강녕을 불렀다.
  • 강녕이 부엌에 들어갔을 때 소매의 손에 칼이 쥐어 져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고 심지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어머니. 저를 부르셨어요?”
  • 소매는 강녕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던지 상관하지 않았다.
  • 그녀는 강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 “너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우리 우진이한테 접근한 목적은 뭔데? 만약 네가 우리 딸을 해친다면 그땐 진짜 너 죽고 나 죽고야!”
  • 소매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녕의 행동에서 이미 그가 평범한 떠돌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더욱이 기억 속의 형편없던 데릴사위도 아니었다.
  • 반대로 강녕은 기질이 셌고 심지어 포악해 보이기도 했다. 지금 또 몇 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제멋대로 사는데 이런 사람이 떠돌이 일수가 없었다.
  • “어머니, 저 어머니께 맹세하는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진에게 결코 그 어떤 나쁜 마음도 없어요.”
  • 강녕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 “제가 우진이 옆에 온건 단순히 우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고 누구도 괴롭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 소매는 강녕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 “왜?”
  •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물었다.
  • “제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어요.”
  • 강녕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15년 전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 “어떤 일은 제가 지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를 믿어 주세요. 때가 되면 모든 걸 다 알게 될 테니 까요”
  • 삐걱―
  •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소매는 재빠르게 칼을 숨기며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 “일단 너를 믿는 걸로 하겠는데 너는 우진이를 터치하면 안 돼. 그녀의 앞날을 망쳐도 안 되고!”
  • 강녕은 머리를 끄덕였다.
  • “자료는 잘 챙겼어?”
  • 강녕은 부엌에서 나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었다.
  • “가자. 회사까지 데려다줄게.”
  •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임우진과 함께 문을 나섰고 임씨 그룹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 이 시각.
  • 임씨 그룹의 회장 사무실.
  • “알아냈어?”
  • “네, 알아냈습니다.”
  • 임봉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무려 9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황옥명의 부하로부터 정보들을 알아냈다.
  • “황옥명이 부자가 되기 전에 한때는 떠돌이로 떠돌며 굶어 죽을 뻔했는데 강녕이 그에게 만두 절반을 나눠 주어 그의 목숨을 살렸고 한동안 두 사람이 다리 밑에서 같이 살았으니 친분이 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황옥명은 그때의 그 은혜를 갚은 거라고 했어요.”
  • 그는 이 말이 달갑지가 않았다.
  • 팩트는 임우진이 몸을 팔아서가 아니라 이 쓸모없는 데릴사위 덕분이라고 하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봐! 네가 어떤 사람을 골랐는지!”
  • 임강은 욕설을 퍼부었다.
  • 사실 임봉은 일부러 떠돌이 신분에 정신병도 있다고 해서 강녕을 골랐다.
  •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황옥명 같은 사람은 부자가 되면 자신의 형제에게도 손을 대는 사람인데 강녕 같은 떠돌이에게는 신세를 갚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 임봉은 독설을 퍼부었다.
  • “임우진 얘네들에게 신세를 다 갚고 나면 누가 또 그들을 도와줄까?”
  • 임강의 눈썹이 움찔했다. 본인은 황옥명 같은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남몰래 악랄하게 굴지만 체면이 있어 외관으로 보이기에는 좋게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는 예전 떠돌이 시절의 신세를 갚아서 평판이 더 좋아 보이게끔 하려는 것이다.
  •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 강녕이 그들에게 모욕감을 줬던 일이 곱절로 되갚아 줄 때가 왔다!
  • “공장 쪽은 배치가 다 됐어?”
  • “네! 다 끝났어요.” 임봉은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 “임우진은 이 프로젝트를 다시 맡게 된 걸 후회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