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5화 여자한테 지다

  • 저녁 여덟 시, 윈드 코스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 오늘 경기는 남주하와 하정운이 조직한 것이다. 두 부잣집 도련님은 A 시에서 사이가 틀어진 지 이미 오래다.
  • 클럽 입구에 앉은 남서진은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고귀한 분위기에 시크한 그는 남주하 같은 어린 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
  • 그는 손목시계를 힐끔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 “사람은?”
  • 남주하는 서둘러 앞잡이처럼 입을 열었다.
  • “큰형, 거의 다 왔을 거야.”
  • 남주하는 워커홀릭 큰형을 데려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하정운 그 자식은 이따가 처참하게 질 것이다.
  • 남주하는 미소를 지으며 하정운의 차가 오는 것을 보았다.
  • 하정운이 먼저 운전석에서 내렸고 곧이어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 여자는 회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곱슬곱슬한 긴 머리가 목뒤에 늘어져있었다. 그녀는 하정운과 천천히 다가왔다.
  • 모두들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흰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었고 살구꽃 모양의 눈은 넋을 잃게 만들었는데 조명 아래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 미인이 아름답긴 했지만 남주하는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 “하정운, 네가 불러온 고수는? 난 오늘 우리 형을 데려왔으니까 질 준비나 해.”
  • 하정운은 피식 웃으며 윤청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 “내 보스야. 이 분이 네 형과 경기를 할 텐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 남주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청아를 쳐다보았다.
  • “얘가? 네 보스야? 하정운, 나 놀리는 거지! 난 오늘 형을 불러왔다고, 날 뭘로 보는 거야!”
  • 하정운의 아우들조차 상식을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윤청아는 딱 봐도 가녀린 아가씨였다. 그리고 그들은 스포츠카 레이싱 경기를 하는 것이지 장난감 자동차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 게다가 윈드 코스가 유명한 이유 역시 길이 험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잘못하면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 하정운은 사람들의 의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잠시 뒤에 그들이 체면을 구길 테니까.
  • 윤청아는 고개를 들어 남주하와 남서진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목소리 톤을 낮춰 입을 열었다.
  • “시작하시죠.”
  • 그녀는 긴 머리를 머리끈으로 묶고 테이블 위의 헬멧을 착용했다. 일련의 행동들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 남서진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자 윤청아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 “왜요? 남서진 도련님께서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 남서진은 어린 아가씨와 경기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 남주하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 “나도 하정운이 데려온 고수가 어린 아가씨일 줄은 몰랐어. 왔으니까 경기는 해보자. 그리고 양보 좀 해줘. 어린 데다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잖아…”
  • 남서진은 미간을 살짝 모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제서야 테이블 위의 헬멧을 집어 들었다.
  • 두 사람은 각자 경기장의 스포츠카에 올라탔다.
  •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번 경기의 승패가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 남 씨 가문 큰 도련님은 여덟 살 때부터 레이싱을 시작했으니까…
  • 경기 규칙은 아주 간단했다. 레이스의 시작점이 곧 결승점이고 누가 8킬로미터의 노정을 먼저 완료하면 이기는 것이다.
  • 두 사람의 차는 동시에 출발해 몇 십 초 만에 산허리에 다다르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 남서진은 그제서야 자신이 적을 얕잡아 봤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는 만만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레이싱을 하고 있었다.
  • 그는 적수를 만난 것 같았다.
  • 입꼬리를 올린 남자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 약 십 분 후, 블루 BMW가 먼저 결승점에 도착했다. 그녀는 트랙에서 멋진 드리프트를 시전하고 천천히 멈췄다.
  • 모두들 놀라움에 멍해졌다. 윤청아가 바로 그 블루 카를 운전했으니까.
  • 하정운은 환호하며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 “보스, 쩔어.”
  • 뒤에 있던 아우들도 그를 따라서 말했다.
  • “시발, 미인 누나 쩔어요!!!”
  • 그들은 내기에서 이겼다!
  • 몇 십 초 후에야 남서진의 차가 트랙에 멈춰 섰다.
  • 남주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의 큰형이 지다니!!!
  • 윤청아는 운전석에서 내렸고 남서진도 차에서 내려왔다.
  • 그녀는 헬멧을 벗고 웃으며 말했다.
  • “당신이 졌어요.”
  • 남서진을 이기니 기분이 정말 짜릿했다.
  • 남서진은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 “한 판 더 해.”
  • 남서진은 레이싱 경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 이번에 처음으로 패배한 것인데 게다가 여자한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