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8화 뱁새가 황새걸음을 걸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게 너를 두고 한 말이네

  • “저…”
  • 윤청아는 머리가 “띵”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짜 얼굴을 들키는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하지.
  • 남혁은 윤청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뇌리에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 그녀가 정말 윤청아인가? 설마 화장을 통해 못생긴 얼굴로 바꾼 걸까? 아니면 이게 화장을 한 뒤의 얼굴인 건가?
  • 윤청아는 남혁의 시선에 소름이 끼쳤지만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고 했다.
  • “남혁 도련님, 저희 얘기 좀 할까요?”
  • “그래요.”
  • “그럼 일단 들어오세요.”
  • 방문을 닫은 윤청아는 한숨 돌렸다.
  • “근데, 얘기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 남혁은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고 의문스러운 듯 말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도 좋았다. 똑똑한 사람과 대화하면 역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 “왜 제가 화장으로 얼굴을 바꾸는지를 묻고 싶으신가요?”
  • 남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느릿느릿 말했다.
  • “정략결혼을 하는 게 싫어서요.”
  • “윤청아 씨의 목적은 저랑 같나 봐요?”
  • “네?”
  • 윤청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말했다. 두 가문의 통혼으로 남 씨 가문이 이득 볼 것이 많았다. 그런데 왜 이 혼사를 거절하는 것일까? 윤청아는 남혁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일까.
  • 윤청아는 내친김에 이렇게 말했다.
  • “그럼 남혁 도련님은 저의 이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나요? 걱정 마세요. 맨입으로 부탁하진 않을게요. 그 대가로 제가 한 번 도와드릴 수 있어요.”
  • “저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데요? 제가 하려는 일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요.”
  • 남혁은 스스로를 비웃었지만 결국 그녀의 사정을 봐줬다.
  • “그래요, 약속할게요.”
  • “고맙습니다.”
  • 남혁은 자신이 옷을 주러 왔다는 것을 떠올리고 테이블 위의 옷을 가리켰다.
  •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다른 사람한테 걸리면 돌이킬 수 없잖아요. 일단 저 옷으로 갈아입어요. 문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다 갈아입으시면 같이 내려가요.”
  • 윤청아는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 그녀는 손에 들린 옷을 보며 무척 싫어했다. 이런 부드러운 분위기의 옷은 그녀의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 윤청아는 드레스를 입고 만족스러운 듯 거울을 보았다. 역시 난 뭘 입어도 예뻐.
  •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밖에 남혁만 있는 것을 본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파우더룸에 가야겠어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그녀는 아무렇게나 머리를 틀어올렸고 하얗고 잡티 없는 피부에 은은한 분홍빛이 번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남혁은 순간 이유 없이 가슴이 떨렸다.
  • “네.”
  • 윤청아는 거울을 보며 재빨리 얼굴을 검게 칠하고 정성껏 점 몇 개를 찍었다. 그러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남혁과 계단을 내려갔다.
  •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폭소가 터졌다.
  • “어휴, 못난이가 이게 무슨 경우야. 감히 임 씨 가문 큰아가씨 흉내를 내다니.”
  • “그러게, 그러게. 이렇게 비교하니까 쟤가 더 못생겨 보여.”
  • 임민정의 옷을 본 윤청아는 대충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 임민정은 짐짓 이렇게 말했다.
  • “그런 게 아니야. 청아가 처음으로 이렇게 큰 파티에 참가하는 거라 내가 옷을 골라준 거야. 일부러 날 따라 한 게 아니야.”
  • 그러고는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 “청아야, 제일 좋은 옷을 골랐는데 네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다음에는 맞춤 제작해 줄게.”
  • 정말 여우였다!
  •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서로 맞장구를 치는 거야!
  • 누가 이딴 옷을 좋아한다고!
  • 이주영은 윤청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으름장을 놓으려고 했다.
  • “뱁새가 황새걸음을 걸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게 너를 두고 한 말이네.”
  • 남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이주영 씨, 말씀 가려 하세요.”
  • 그 말에 질투가 난 이주영의 말투가 더 거만해졌다.
  • “어머, 시골에서 상경한 말괄량이의 수법이 다르긴 하네. 너 둘째 도련님한테 최면이라도 걸었니? 남 씨 가문의 도련님들은 네가 오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야. 둘째 도련님께서 남들한테 잘해주는 거로 들뜨지 마. 네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면서 허황된 망상하지 말라고. 네 신분을 신경 써야지.”
  • 윤청아는 차갑게 비웃었다.
  • “저는 제 신분을 신경 쓰고 있어요. 그럼 이주영 씨는 무슨 신분으로 저한테 그런 말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