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청아는 머리가 “띵”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짜 얼굴을 들키는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남혁은 윤청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뇌리에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녀가 정말 윤청아인가? 설마 화장을 통해 못생긴 얼굴로 바꾼 걸까? 아니면 이게 화장을 한 뒤의 얼굴인 건가?
윤청아는 남혁의 시선에 소름이 끼쳤지만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고 했다.
“남혁 도련님, 저희 얘기 좀 할까요?”
“그래요.”
“그럼 일단 들어오세요.”
방문을 닫은 윤청아는 한숨 돌렸다.
“근데, 얘기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남혁은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고 의문스러운 듯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도 좋았다. 똑똑한 사람과 대화하면 역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왜 제가 화장으로 얼굴을 바꾸는지를 묻고 싶으신가요?”
남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느릿느릿 말했다.
“정략결혼을 하는 게 싫어서요.”
“윤청아 씨의 목적은 저랑 같나 봐요?”
“네?”
윤청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말했다. 두 가문의 통혼으로 남 씨 가문이 이득 볼 것이 많았다. 그런데 왜 이 혼사를 거절하는 것일까? 윤청아는 남혁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일까.
윤청아는 내친김에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남혁 도련님은 저의 이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나요? 걱정 마세요. 맨입으로 부탁하진 않을게요. 그 대가로 제가 한 번 도와드릴 수 있어요.”
“저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데요? 제가 하려는 일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요.”
남혁은 스스로를 비웃었지만 결국 그녀의 사정을 봐줬다.
“그래요, 약속할게요.”
“고맙습니다.”
남혁은 자신이 옷을 주러 왔다는 것을 떠올리고 테이블 위의 옷을 가리켰다.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다른 사람한테 걸리면 돌이킬 수 없잖아요. 일단 저 옷으로 갈아입어요. 문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다 갈아입으시면 같이 내려가요.”
윤청아는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손에 들린 옷을 보며 무척 싫어했다. 이런 부드러운 분위기의 옷은 그녀의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윤청아는 드레스를 입고 만족스러운 듯 거울을 보았다. 역시 난 뭘 입어도 예뻐.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밖에 남혁만 있는 것을 본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우더룸에 가야겠어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아무렇게나 머리를 틀어올렸고 하얗고 잡티 없는 피부에 은은한 분홍빛이 번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남혁은 순간 이유 없이 가슴이 떨렸다.
“네.”
윤청아는 거울을 보며 재빨리 얼굴을 검게 칠하고 정성껏 점 몇 개를 찍었다. 그러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남혁과 계단을 내려갔다.
…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폭소가 터졌다.
“어휴, 못난이가 이게 무슨 경우야. 감히 임 씨 가문 큰아가씨 흉내를 내다니.”
“그러게, 그러게. 이렇게 비교하니까 쟤가 더 못생겨 보여.”
임민정의 옷을 본 윤청아는 대충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임민정은 짐짓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청아가 처음으로 이렇게 큰 파티에 참가하는 거라 내가 옷을 골라준 거야. 일부러 날 따라 한 게 아니야.”
그러고는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청아야, 제일 좋은 옷을 골랐는데 네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다음에는 맞춤 제작해 줄게.”
정말 여우였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서로 맞장구를 치는 거야!
누가 이딴 옷을 좋아한다고!
이주영은 윤청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으름장을 놓으려고 했다.
“뱁새가 황새걸음을 걸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게 너를 두고 한 말이네.”
남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주영 씨, 말씀 가려 하세요.”
그 말에 질투가 난 이주영의 말투가 더 거만해졌다.
“어머, 시골에서 상경한 말괄량이의 수법이 다르긴 하네. 너 둘째 도련님한테 최면이라도 걸었니? 남 씨 가문의 도련님들은 네가 오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야. 둘째 도련님께서 남들한테 잘해주는 거로 들뜨지 마. 네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면서 허황된 망상하지 말라고. 네 신분을 신경 써야지.”
윤청아는 차갑게 비웃었다.
“저는 제 신분을 신경 쓰고 있어요. 그럼 이주영 씨는 무슨 신분으로 저한테 그런 말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