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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뒤에서가 안 되면 앞에서 해야지!

  • 윤청아는 그 미소에 눈이 부셨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떠올린 그녀는 순간 화가 절반으로 사그라들었다.
  • “남서진 씨가 저한테 옷을 버려달라고 했는데 남주하가 오해한 거예요.”
  • 그 말을 들은 남주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형, 그 말이 사실이야?”
  • 남서진은 옷을 버리라고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으니 그녀의 행동을 묵인한 것이다.
  • 그가 대답했다.
  • “응.”
  • 남 씨 어르신은 안심이 되었다.
  • “아이고, 역시 오해가 있었구나. 이 녀석아, 얼른 청아한테 용서를 구해.”
  • 남주하는 자신의 잘못인 줄은 알았지만 여전히 불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분한 마음에 눈까지 빨개졌다.
  • “사과해.”
  • 남 씨 어르신이 그를 부추겼다.
  • 남주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 “미안해.”
  • 윤청아는 남주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분명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잘못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켕겼다.
  • “괜… 괜찮아.”
  • “앞으로 친하게 지내. 난 청아가 남 씨 가문의 손자며느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어.”
  • 남 씨 어르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의미심장하게 윤청아를 쳐다보았다.
  • 윤청아는 절망적이었다.
  • 친하게 지내는 건 불가능할 텐데!
  • 남 씨 가문 저택은 아주 커서 아침부터 많은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청소를 했다.
  • 남주하가 하품을 하며 비몽사몽한 상태로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주머니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작은 도련님, 방금 바닥을 밀어서 조금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 “알겠어요.”
  • 남주하는 머리를 비볐다. 그는 몇 걸음 걷지 않고 다시 돌아서서는 얌전한 얼굴로 말했다.
  • “아주머니, 물 한 대야만 갖다주시겠어요?”
  • 아주머니는 곧바로 물을 가져왔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남주하가 계단에 물을 엎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 “계단은 잠시 청소하지 마세요. 아침 식사가 끝나면 치워주세요.”
  • 작은 도련님은 이런 장난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주머니도 더 묻지 않고 두말없이 알겠다고 했다.
  • 위층에는 윤청아밖에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밟을 염려가 없었다.
  • 그런 생각을 하던 남주하는 갑자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윤청아가 넘어지는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났다.
  • 윤청아가 막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마침 남서진과 마주쳤다. 그는 그녀가 먼저 지나가라고 예의 바르게 양보했다.
  • 윤청아는 감사 인사를 하고 계단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물을 밟은 그녀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 망했어, 망했어. 윤청아는 겁이 나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따뜻한 품에 안겼다. 남자의 몸에 안심이 되는 기운이 맴돌았다.
  •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두 눈이 마주치자 윤청아의 얼굴에 바로 홍조가 번졌다. 그녀는 감전이라도 된 듯 그와 거리를 두더니 돌아서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 남서진은 손에서 그녀의 잔향을 느꼈다. 그는 윤청아가 한참 걸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 “어제 파티에서 도와준 건 할아버지의 명령 때문이니까 오해하지 마.”
  • 오해? 무슨 오해? 날 좋아한다는 오해?
  • 윤청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미소를 지었다.
  • “저는 늘 제 주제를 파악하고 있어요, 도련님.”
  • 무덤덤하기만 했던 남서진의 표정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지켜본 그녀는 더욱 멋대로 웃었다.
  • “하지만, 그렇게 잘해주시면 제가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해서 주제넘게 넘볼까 봐 무섭네요.”
  • 다이닝룸.
  • 남주하는 식탁에서 남혁과 웃고 떠들고 있었다. 윤청아를 본 그는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 “주하야, 앉아.”
  • 남주하를 훈계한 남 씨 어르신은 윤청아를 돌아보며 인사했다.
  • “청아야, 얼른 아침 먹어. 이따가 서진이가 너희 둘을 바래다줄 거야.”
  • 남주하는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냈다.
  • “왜요. 저는 쟤랑 같이 학교에 가기 싫어요.”
  • 남 씨 어르신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이 녀석아.”
  • 남주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 윤청아가 멀쩡하게 내려온 것을 본 남주하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게다가 더 참담한 것은 그가 앞으로 그녀와 함께 등하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 생각을 한 그는 또 빵을 몇 입 더 베어 물었다.
  • 뒤에서가 안 되면 앞에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