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남주하는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게임을 몇 판이나 끝낸 뒤에도 윤청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남주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화장실에 간다더니 왜 이렇게 느려.”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남서진의 눈동자에도 걱정이 감돌기 시작했다.
“윤청아 번호 있어?”
“촌뜨기라 핸드폰이 없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
하지만 다른 형제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물었지만 윤청아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서진은 이내 모든 관계를 동원하여 윤청아를 찾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아이라 함부로 돌아다닐 리가 없는데, 설마 윤청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왠지 모를 불안감이 깃들었다. 남서진은 시골에서 온 그 말괄량이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만일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학교에서 잘 보살펴 주라고 했잖아?”
갑작스러운 호통 소리에 남주하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평소 감정 기복을 크게 보이지 않던 큰 형이 드물게 성을 내는 모습에 남주하가 세상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갈 수는 없잖아?”
남서진도 자신의 지나친 반응을 인지하고서 얼른 표정을 바꾸고 냉담한 목소리를 냈다.
“사람을 보냈으니 곧 연락이 올 거다. 길을 잃은 것뿐이기를 바라야지.”
…
시야가 일순 까맣게 점멸하는가 싶더니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두 손이 단단히 묶인 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내던져져 있었다. 입에도 재갈이 물린 채라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두 눈도 천에 가려져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코끝을 맴도는 곰팡이 냄새와 매캐한 먼지 냄새, 쥐 죽은 듯 고요한 사위로 보아 생기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폐창고쯤이라 생각했다.
덜컥 겁이 난 윤청아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품에 넣어둔 휴대폰이 그대로 있었다. 어쩌면 그녀한테 휴대폰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 못 한 것일지도.
그 순간, 밖으로부터 어렴풋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처리해. 일이 성사되면 외국으로 나갈 수 있게 도울 테니까 아무 증거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잊지 마.”
윤청아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채기 위해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이, 삐걱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더니 이어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열린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싸늘한 바람에 교복 깃이 나붓거렸다.
“얼굴을 가리고 보니까 제법 꼴리는데.”
남자가 윤청아의 앞에 반쯤 웅크리고 앉아 혀를 찼다. 그러자 심은영이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저런 못난이를 보고도 그런 마음이 들어? 참 비위도 좋아.”
“당연히 농담이죠, 은영 아가씨.”
남자는 황급히 심은영의 눈치를 살피며 알랑거렸다.
음산한 눈동자로 밧줄에 꽁꽁 묶인 윤청아를 훑어보던 심은영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네 주제에 감히 남주하를 넘봐?”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윤청아는 이내 곧 그 목소리의 주인이 심은영임을 알아챘다.
설마 남주하랑 친하게 지낸다고 질투하는 거야?
윤청아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입안에 물린 재갈이 홱 하고 빠져나갔다. 이어 매서운 손바닥이 뺨 위로 날아들었다.
“네 주제에 남 씨 가문 도련님이 가당키나 해?”
윤청아는 다짜고짜 뺨을 얻어맞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한쪽으로 돌아간 얼굴에서 알싸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윤청아는 몰래 품 안의 휴대폰을 뒤적이는 손동작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겁에 질린 척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너희들 누구야? 이러는 목적이 뭐야?”
“당연히 널 죽이기 위해서이지!”
윤청아의 턱을 힘껏 움켜쥐며 음산하게 내뱉는 심은영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말했다.
“저희 아가씨한테서 그런 말씀 들은 적 없는데요?”
“당연히 농담이지. 우린 그냥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에 욕심을 낸 대가로 겁을 주면 돼.”
심은영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가 누구지?
윤청아가 머리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심은영의 모진 발길질이 그녀의 몸 위를 덮었다.
끊임없이 몸 위로 달려드는 발길질에 윤청아는 아예 바닥에 풀썩 엎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눕기 직전, 휴대폰 버튼을 꾹 눌러 도움을 청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