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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최후에 웃는 사람이 누가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

  • 홀로 내려오고 있는 남주하를 보며 남서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윤청아는?”
  • “먼저 갔어.”
  • 남주하가 장난스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남서진이 설핏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 “솔직하게 얘기해!”
  • 남서진이 호락호락 넘어가 주지 않자 남주하는 마지못해 사실대로 얘기했다.
  • “화장실에 갔어.”
  • “차에서 기다려.”
  • 그 말에 남주하는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게임을 몇 판이나 끝낸 뒤에도 윤청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남주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 “화장실에 간다더니 왜 이렇게 느려.”
  •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남서진의 눈동자에도 걱정이 감돌기 시작했다.
  • “윤청아 번호 있어?”
  • “촌뜨기라 핸드폰이 없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
  • 하지만 다른 형제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물었지만 윤청아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남서진은 이내 모든 관계를 동원하여 윤청아를 찾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아이라 함부로 돌아다닐 리가 없는데, 설마 윤청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 왠지 모를 불안감이 깃들었다. 남서진은 시골에서 온 그 말괄량이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 만일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 “학교에서 잘 보살펴 주라고 했잖아?”
  • 갑작스러운 호통 소리에 남주하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평소 감정 기복을 크게 보이지 않던 큰 형이 드물게 성을 내는 모습에 남주하가 세상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갈 수는 없잖아?”
  • 남서진도 자신의 지나친 반응을 인지하고서 얼른 표정을 바꾸고 냉담한 목소리를 냈다.
  • “사람을 보냈으니 곧 연락이 올 거다. 길을 잃은 것뿐이기를 바라야지.”
  • 시야가 일순 까맣게 점멸하는가 싶더니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두 손이 단단히 묶인 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내던져져 있었다. 입에도 재갈이 물린 채라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 두 눈도 천에 가려져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코끝을 맴도는 곰팡이 냄새와 매캐한 먼지 냄새, 쥐 죽은 듯 고요한 사위로 보아 생기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폐창고쯤이라 생각했다.
  • 덜컥 겁이 난 윤청아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품에 넣어둔 휴대폰이 그대로 있었다. 어쩌면 그녀한테 휴대폰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 못 한 것일지도.
  • 그 순간, 밖으로부터 어렴풋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 처리해. 일이 성사되면 외국으로 나갈 수 있게 도울 테니까 아무 증거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잊지 마.”
  • 윤청아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채기 위해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이, 삐걱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더니 이어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열린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싸늘한 바람에 교복 깃이 나붓거렸다.
  • “얼굴을 가리고 보니까 제법 꼴리는데.”
  • 남자가 윤청아의 앞에 반쯤 웅크리고 앉아 혀를 찼다. 그러자 심은영이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 “저런 못난이를 보고도 그런 마음이 들어? 참 비위도 좋아.”
  • “당연히 농담이죠, 은영 아가씨.”
  • 남자는 황급히 심은영의 눈치를 살피며 알랑거렸다.
  • 음산한 눈동자로 밧줄에 꽁꽁 묶인 윤청아를 훑어보던 심은영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 “네 주제에 감히 남주하를 넘봐?”
  •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윤청아는 이내 곧 그 목소리의 주인이 심은영임을 알아챘다.
  • 설마 남주하랑 친하게 지낸다고 질투하는 거야?
  • 윤청아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입안에 물린 재갈이 홱 하고 빠져나갔다. 이어 매서운 손바닥이 뺨 위로 날아들었다.
  • “네 주제에 남 씨 가문 도련님이 가당키나 해?”
  • 윤청아는 다짜고짜 뺨을 얻어맞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한쪽으로 돌아간 얼굴에서 알싸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윤청아는 몰래 품 안의 휴대폰을 뒤적이는 손동작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겁에 질린 척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 “너희들 누구야? 이러는 목적이 뭐야?”
  • “당연히 널 죽이기 위해서이지!”
  • 윤청아의 턱을 힘껏 움켜쥐며 음산하게 내뱉는 심은영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말했다.
  • “저희 아가씨한테서 그런 말씀 들은 적 없는데요?”
  • “당연히 농담이지. 우린 그냥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에 욕심을 낸 대가로 겁을 주면 돼.”
  • 심은영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가씨가 누구지?
  • 윤청아가 머리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심은영의 모진 발길질이 그녀의 몸 위를 덮었다.
  • 끊임없이 몸 위로 달려드는 발길질에 윤청아는 아예 바닥에 풀썩 엎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눕기 직전, 휴대폰 버튼을 꾹 눌러 도움을 청하는 데 성공했다.
  • 최후에 웃는 사람이 누가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