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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익숙한 실루엣

  • “아, 그거?”
  • 하정운은 가슴을 두드렸다.
  • “보스, 걱정 마. 나 한 마디도 안 했으니까 마음 놓고 잠복해.”
  • “알겠어.”
  • 윤청아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 “앞으로는 개인적으로 연락해.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면 남 씨 가문 사람들에게 의심받을 거야.”
  • “네, 알겠습니다.”
  • 하정운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 하정운이 멀리 가기도 전에 돌아선 윤청아는 남주하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하마터면 파일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 잠시 멈칫한 그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남주하의 앞에서 교실로 들어갔다.
  • 고작 이거야?
  • 수학 올림피아드 경시대회의 난이도가 이렇게 낮을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그녀가 이 학교를 대단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 윤청아는 족보를 몇 번 보고는 서랍에 밀어 넣었다. 수학 올림피아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 이번 수학 올림피아드 경시대회를 위해 학교 측에서 특별히 신청자들을 위한 과외를 진행했다. 그중에는 심은영과 남주하도 있었다.
  • 그래서 윤청아는 심은영이 서로 공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남주하를 찾아오지만 잔인하게 거절당하는 모습을 매일 보았다.
  • 일주일간의 과외는 아주 빨리 지나갔고 수학 올림피아드 경시대회가 시작되었다.
  • 학생들은 전적으로 심은영을 믿고 있었다.
  • “작년에도 일등이었으니까 올해도 틀림없이 그럴 거야. 그래서 재미가 없다.”
  • “그러니까. 누가 걔를 끌어내렸으면 좋겠어. 그럴 만한 힘이 안 보이네.”
  • 원래 일등은 그렇게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거구나!
  • 윤청아는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경시대회 때 일부러 마지막 문제를 풀지 않았지만 여전히 일등을 했다.
  • 윤청아는 마음이 답답했다.
  • “…”
  • 아이들은 윤청아가 일등을 했다는 소식이 뜻밖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그녀가 그렇게 성적이 좋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 그동안 심은영이 늘 학교에서 일등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윤청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 선생님은 수학 올림피아드 경시대회 성적을 보고 감개무량했다.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이렇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학생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선생님은 지체 없이 교장 앞에서 자신의 교육 성과를 자랑했다.
  • 학교에서도 무척 중시했는데 윤청아를 위해 특별히 표창 대회를 열어 주었다.
  • 표창 대회에서 교장과 선생님은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서야 윤청아를 무대로 불러 강연을 하게 했다. 그들은 윤청아가 A 시의 수능 수석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고 그녀의 공부에 대해 신경 쓸 예정이었다.
  • “뜨거운 박수로 이번 수학 올림피아드 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한 윤청아를 불러보겠습니다.”
  • 윤청아는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 학생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전설의 천재 모범생이 어떤 모습일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까맣고 못생긴 여학생이 무대에 올랐다.
  • 역시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은 달랐다. 공부에만 집중하느라 외모를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이리라.
  • 남학생들은 실망한 자신을 위로했다.
  • 진땀이 난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더니 윤청아에게 무대에 올라 자신의 학습 노하우를 총화하도록 했다.
  • 무대에 올라온 윤청아는 전날에 쓴 원고를 읽을 준비를 했다. 그때, 무대 아래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 윤청아는 입꼬리를 삐죽였다. 남서진이 왜 왔지?
  • 그녀는 남 씨 어르신이 오신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남서진이 오는 것은 몰랐다.
  • 잠시 얼떨떨해있다가 다시 눈여겨보자 남서진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윤청아는 눈을 깜박였다. 요 며칠 동안 열심히 문제를 푼 탓이라고 생각하고는 그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 정신을 차린 윤청아는 강연을 계속했다.
  • 그녀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생동하게 말했다. 상을 받는 것에 익숙한 그녀는 엄청 큰 무대에도 섰었으니까.
  • 남서진은 늠름하게 강연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넋을 놓았다.
  • 강연이 끝나자 그는 일초도 더 머물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