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1화 타잔 바

  • 윤찬우가 아래층까지 따라왔지만 반예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한편 진작 병사들을 거느리고 철수했던 남궁연우가 줄곧 아래층을 지키고 있다가 윤찬우를 보더니 재빨리 달려왔다.
  • “수장님!”
  • “인창현이 날 감시하라고 너희들을 보냈어?”
  • 윤찬우는 서늘한 눈빛으로 물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남궁연우의 카리스마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색이 된 얼굴로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게 바로 수라 군신의 위엄이다. 마치 예리한 칼날로 목을 찌를 듯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 남궁연우는 감히 그의 눈조차 바라보지 못했다.
  • “아닙니다. 감시가 아니라 수장님을 지켜주라는 전왕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 남궁연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거렸다.
  • “지켜줘?”
  • 윤찬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 “내가 너희들의 보호를 받아야 해?”
  • 남궁연우는 표정이 확 얼어붙었다.
  •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수라 군신은 팔도를 휩쓸고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누구의 보호를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 “돌아가서 인창현에게 전해. 감히 한 번만 더 내 일에 관여했다가 무빈 교도소에 보내 1년 동안 감금시켜버릴 거라고!”
  • 윤찬우의 말을 들은 남궁연우는 식겁하여 무릎을 털썩 꿇고 곧바로 대답했다.
  • “네, 군신!”
  • 윤찬우는 차가운 눈길로 그를 흘겨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자마자 남궁연우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전왕, 군신께서...”
  • “너더러 전해주라고 하지? 한 번만 더 자기 일에 관여했다가 그땐 날 무빈 교도소에 가둬둘 거라고.”
  • 남궁연우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인창현이 냉큼 그의 말을 가로챘다.
  • “어떻게 아셨어요?”
  • 남궁연우는 못 믿겠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전왕께서 설마 내 곁에 스텔스 모니터라도 설치했나?’
  • “볼 거 없어. 너한테 그따위 모니터를 설치하지 않았으니까.”
  • 전왕은 마치 남궁연우의 속마음을 훤히 꿰찬 것만 같았다.
  • “나는 군신과 함께 2년 동안 전장에 나가 수많은 적을 물리쳤어. 군신의 성격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돌아오지 말고 계속 암암리에서 감시해. 끝까지 지켜주란 말이야. 군신의 주변에 일말의 위험도 있어선 안 돼!”
  • “하지만 군신께서 이미...”
  • 남궁연우가 말을 꺼내려 할 때 인창현이 또다시 가로챘다.
  • “X발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너 지금 군사 명령을 어기고 싶어? 잘 들어. 군신께서 내 몸의 껍질을 전부 벗겨버린다 해도 넌 절대 군신 곁에서 백 미터 이상 떨어져서는 안 돼. 군신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없어져도 그땐 네 숨통을 끊어버릴 거야!”
  • “네, 전왕!”
  • 남궁연우는 군사 명령을 감히 어길 수 없었다.
  • “서역의 녀석들이 최근 들어 얌전치 못해. 암암리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군신을 공격할 것 같아. 비록 군신의 실력도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절대 그 녀석들에게 빈틈을 주면 안 돼. 알겠어?”
  • “네, 전왕!”
  • 서역이란 두 글자에 남궁연우의 눈가에 살기가 스쳤다.
  • ‘서역의 녀석들이 감히 강북에 와서 설쳐대? 죽고 싶어 환장했나!’
  • ...
  • 피닉스 호텔을 떠난 후 윤찬우는 더이상 반예린을 쫓아 반씨 집안에 찾아가지 않았다. 그녀가 한창 화가 치밀었으니 쫓아간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를 만나주지 않을 테니까.
  • 그도 그럴 것이 윤찬우는 3년 만에 불쑥 나타났으니 누구라 해도 반예린처럼 화가 잔뜩 치솟았을 것이다.
  • “내가 그동안 예린이한테 빚진 게 너무 많아. 화가 다 가라앉거든 천천히 갚아야겠어.”
  • 윤찬우는 한숨을 내쉬며 타잔 바라는 술집으로 향했다. 이곳은 그가 3년 전에 자주 다녔던 단골 술집이다.
  • 예전에 반씨 가문에서 서러움을 잔뜩 겪고 나면 습관처럼 이곳에 찾아와 술 한 잔 기울이곤 했다.
  • 비록 3년 만의 첫걸음이고 이젠 더이상 삿대질만 받던 데릴사위도 아니지만 강화시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습관처럼 타잔 바에 들르고 싶었다.
  •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 윤찬우가 문을 열자 노골적인 옷차림의 섹시한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 “한 명이에요.”
  • 윤찬우는 익숙하게 자신이 자주 앉던 그 자리로 걸어갔다. 그 자리는 비록 위치가 별로인 구석진 자리지만 윤찬우는 늘 그곳이 편했다.
  • “처음 오신 건 아닌가 보네요.”
  • 익숙한 그의 움직임에 섹시한 여자가 살짝 의외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
  • “그런데 왜 저는 초면인 것 같죠?”
  • “3년 만에 왔거든요.”
  • 윤찬우는 대답하며 구석진 자리로 걸어갔다.
  • “3년 전에 이곳에 술을 적잖게 보관해두었는데 한번 봐주실래요? 그 술들이 아직 남아있는지 말이에요.”
  • “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 “윤찬우예요.”
  • “네, 잠시만요.”
  • 섹시한 여자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허리를 비틀거리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흐릿한 불빛 아래 그녀의 새하얀 긴 다리가 유난히 돋보였다.
  • 그녀는 꽤 젊어 보이는 나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지녔다. 완벽한 S라인과 육감적인 몸매, 옅은 화장의 청순한 미모까지 그야말로 캠퍼스의 첫사랑 같은 여신 이미지였다.
  • “윤찬우 씨가 보관했던 술이 아직 남아있네요...”
  • 잠시 후 섹시한 여자가 술 쟁반을 든 종업원과 함께 돌아왔다.
  • 쟁반에는 무려 열 몇 병의 맥주가 놓여 있었다.
  • 그랬다. 오직 맥주뿐이었다. 3년 전의 윤찬우는 무일푼의 처지라 값진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실 능력이 못 됐다.
  • “전부 따드릴까요?”
  • 섹시한 여자가 물었다.
  • “그래요.”
  • 윤찬우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 이 술들을 전부 마시진 않아도 남김없이 개봉하고 싶었다. 오늘부로 더는 이곳에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계속 남겨둘 필요가 없었다.
  • “좋아요.”
  • 섹시한 여자가 고개 돌리자 종업원이 곧바로 술을 전부 따서 윤찬우 앞에 내려놓았다. 섹시한 여자는 윤찬우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 “손님, 혼자 오셨는데 함께 마실 아가씨 몇 분 불러드릴까요?”
  • “아가씨요?”
  • 윤찬우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 ‘이 술집에 언제 이런 서비스까지 갖춰졌지?’
  • “손님, 오해 마세요. 애들은 그저 함께 술 마시고 게임을 하면서 놀아줄 뿐 다른 서비스는 없습니다.”
  • 윤찬우의 눈빛에 그녀는 재빨리 설명했다.
  • “필요 없어요.”
  • 윤찬우는 냉큼 손사래 쳤다. 다른 서비스가 있든 없든 전부 그와 상관없는 일이었으니.
  • 수라 군신으로서 수많은 전장에 참여하며 온갖 절세미인을 구경한 그인데, 고개만 끄덕이면 빼어난 미모의 연예인들이 서로 앞다투어 그의 침대에 기어오를 텐데, 술집의 속된 아가씨 따위 어떻게 그의 성에 차겠는가?
  • 잠시 후 섹시한 여자가 자리를 떠났고 윤찬우는 맥주 한잔 따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바로 이때, 그는 문득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