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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배신을 당한 건가?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가은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은 드러나 있지 않았다.
  • 한지혁과 민소율이 이곳에 나타날 것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택에서 한지혁이 그녀에게 사과를 요구했던 그때부터 그녀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식은 상태였다.
  • 지금의 한지혁은 그녀에게는 그저 아무 상관도 없는 전남편일 뿐이었다.
  • 그녀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신도윤의 팔짱을 낀 채 앞으로 걸어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 신도윤과 함께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가은의 모습에 민소율은 충격에 휩싸인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한지혁을 쳐다보았다.
  • 한지혁의 시선 역시 내내 가은에게 향해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표정은 굉장히 어두웠다.
  •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의 마음 한편에는 조금의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다른 남자까지 꼬셔서는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 비록 오늘 밤의 그녀는 확실히 혼이 빠질 만큼 굉장히 아름다웠지만 결혼하고 3년 동안 그는 자신의 아내가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설마 신도윤이 새로운 남자인 건가? 오전에 방금 이혼을 하고 밤에는 다른 남자와 함께 나타나다니, 이건 무슨 미친 속도인 거지?’
  • 한지혁은 마음이 미칠 정도로 이상했다. 그의 새까만 두 눈동자가 서서히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것은 분노가 폭발할 전조였다.
  • 그는 타당한 설명을 요구하고자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가은을 노려보았다.
  • 하지만 두 사람은 그의 코앞까지 와서 방향을 틀더니 옆에 있는 화이 그룹 대표와 미소 띤 얼굴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를 완전히 공기취급 한 것이었다.
  • 이 같은 행동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었다. 또한 신도윤은 그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 이에 한지혁의 표정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 민소율의 표정 역시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방금 전 그녀는 적당히 듣기 좋은 말들을 한가득 준비해 손을 뻗었었다.
  • 하지만 상대에게 무시를 당한 탓에 그녀는 생각해 두었던 대사들을 그대로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한지혁의 여동생인 한지수 역시 파티장에 와있었다. 홀 안에서 샴페인을 홀짝이고 있다 문 앞의 소란에 밖으로 나온 그녀가 민소율에게 가까이 다가가 민소율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며 물었다.
  • “소율 언니, 저 천한 계집애는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 그 소리에 민소율의 눈빛이 순간 반짝이더니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 “지수 너는 아직 모르나 보네, 가은이랑 혁이 오전에 이혼했어. 근데 가은이가 이렇게 빨리 새로 의지할 사람을 찾았을 줄은 몰랐네. 난 가은이를 축복해.”
  • 그러자 한지수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 “축복은 무슨!”
  • 그녀는 분노 어린 시선으로 한창 신도윤과 함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가은을 노려보았다.
  • “오전에 이혼을 하자마자 저녁에는 다른 남자를 따라 이런 고급스러운 곳에 오다니. 쏜 살도 이 정도로 빠르지는 않겠어요! 이 천한 계집애! 보나 마나 이혼도 하기 전에 다른 남자를 꼬신 걸 거예요! 감히 우리 오빠를 배신하다니, 저 낯짝을 찢어버릴 거예요!”
  • 한지수의 성격은 말 그대로 불같았다. 단번에 불타오른 그녀는 곧바로 씩씩거리며 가은을 향해 걸어갔다.
  • 민소율은 가식적으로 그런 그녀를 말리는 척했지만 걸어 나가는 그녀를 붙잡지는 않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져 올라갔다.
  • “이봐요!”
  • 한지수가 등 뒤에서 한마디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신도윤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잘생긴 외모에 한지수는 순간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인천에 우리 오빠에 버금갈 만큼 잘생긴 남자가 있었단 말이야?!’
  • 가은에 대한 그녀의 질투와 분노가 한순간에 극에 달했다.
  • “누구시죠?”
  • 신도윤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가은이 미소 지으며 그의 귓가에 다가가 대신 설명했다.
  • “내 예전 시누이야. 한 씨 집안사람들 중 가장 제멋대로인 사람이지.”
  • 그 말에 신도윤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 비록 가까이 다가가 말하기는 했지만 목소리는 전혀 작지 않았던 터라 한지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 게다가 입술이 귀에 닿을 만큼 다정한 그 동작은 그녀의 신경을 더 자극했다.
  • 하지만 잘생긴 남자가 눈앞에 있었기에 그녀는 일그러진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좋게 설득하려는 듯 말을 꺼냈지만 의도적인 듯, 목소리는 굉장히 날카로웠다.
  • “이봐요, 절대 이 여자한테 속으시면 안 돼요. 이 여자는 한 번 결혼했던 여자예요! 게다가 명문가 규수도 아니에요. 이 여자는 그냥 보육원 출신의 사기꾼이라고요! 속은 또 어찌나 시커먼지, 전에는 우리 할아버지와도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요. 이 여자는… 아악!”
  • 외마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손바닥과 뺨이 부딪치는 맑은 마찰음이 크게 울려 퍼지자 연회장 전체가 순간 조용해졌다.
  • 한지수는 뺨을 움켜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뜨고 가은을 쳐다보았다.
  • “감히 네가 날 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