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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너한테 큰 선물을 하나 더 줄게!

  • 긴 다리를 휘적이며 거실로 들어온 한지혁은 곧장 민소율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세웠다. 그리고는 어두운 얼굴로 실망한 듯 가은을 바라보았다.
  • “이혼하면 그나마 조금은 신중하게 행동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이렇게 비겁한 수를 쓸 줄은 몰랐어. 역겨워. 원래는 이 저택을 네 명의로 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네.”
  • “혁아, 가은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 나 때문에 화가 나서 실수로 날 밀친 거야. 다 내 잘못이야. 차라리 나한테 뭐라고 해.”
  • 민소율은 연약한 척 그의 품에 기댄 채 자책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훌쩍이는 소리는 서럽고 가여웠지만 힐끗 가은을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이겼다는 만족감이 담겨있었다.
  • 한지혁은 한기가 서려있는 얼굴로 명령하듯 가은을 향해 말했다.
  • “지금 바로, 당장, 율이한테 사과해.”
  • ‘쯧, 사과를 하라고? 화나네.’
  • 가은은 애틋해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눈이 휘어지도록 미소 지으며 다정하게 한지혁의 품 속에 있는 민소율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 화를 내면서 언쟁을 할 줄 알았던 그녀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민소율의 얼굴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 가은이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민소율은 한순간 반항하는 것도 잊은 채 가은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 짝-
  • “아악!”
  • 아까보다 백배 정도는 더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민소율이 부어버린 얼굴을 감싸 쥔 채 세차게 바닥으로 넘어졌다.
  • 온 힘을 다해 뺨을 내려쳤던 터라 가은은 자신의 손바닥도 저릿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 그 힘으로 뺨을 맞은 민소율이 얼마나 아플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가은은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 그 모습은 도저히 방금 전 폭력을 휘두른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민소율을 내려다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내가 널 괴롭혔다며? 그럼 정말로 네 뺨이라도 한 대 때려야지. 그래야 네가 말한 내 악행이 증명되지 않겠어?”
  • 그러자 민소율은 눈물을 글썽이더니 연약한 척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 가은이 감히 자신이 보는 앞에서 폭력을 휘두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한지혁 역시 순간 민소율을 부축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은 듯 한 눈치였다.
  • 그는 굳은 표정으로 위협하듯 가은을 노려보았다.
  • “사과는커녕 한 술 더 뜨다니! 지금 내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거야?!”
  • “착각하지 마세요, 한지혁 씨.”
  • 가은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더욱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우리 두 사람, 그래도 한때는 부부였는데, 떠나기 전에 너한테 큰 선물을 하나 더 줄게!”
  • 그녀는 말을 내뱉으며 가방에서 두툼한 A4용지 뭉치를 꺼내 한지혁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졌다.
  • 눈처럼 하얀 종이들이 공중에 나부꼈고 한지혁은 손에 집히는 대로 그중 한 장을 잡아들었다.
  • 종이 위에 프린트되어 있는 것은 문자 기록이었다. 전부다 조롱 섞인 모욕적인 말들이었고 또한 굉장히 듣기 거북한 말들이었다.
  • 말없이 저장되어 있지 않은 발신인 번호를 읽어보던 그는 순간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뒷면으로 넘기자, 거기에는 어젯밤 누군가가 그에게 약을 먹였다는 증거가 있었고, 그 하나하나의 명확한 증거들은 전부 다 민소율,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 한지혁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무서운 눈빛으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민소율을 쳐다보았다.
  • 민소율 역시 때마침 종이에 적힌 내용들을 전부 다 본 상태인 듯,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했다.
  • 확실히 약은 그녀가 사람을 시켜 한지혁의 술에 탔던 것이었고 한지혁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있는 호텔로 그를 부른 것이었다.
  •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운전기사가 실수로 그를 저택으로 데려다준 바람에 가은과 밤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 이에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었고 그저 문자 몇 통을 보내 가은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줄 생각이었었다.
  • 하지만 그녀는 가은이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과 정면으로 맞설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지혁이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 하지만 그녀가 무슨 설명을 내놓기도 전에 가은은 이미 챙긴 짐가방을 들고 그곳을 떠나가려 하고 있었다.
  • 그리고 그녀는 그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한때 깊이 사랑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 “기억해, 한지혁. 이혼당하고 버림받는 사람은 내가 아닌 너야! 내가 널 버리는 거고, 너희 한 씨 가문이 내 급에 못 미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