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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넌 얼굴이 두 개인가 봐?

  • 오혜선은 그녀의 기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아직도 자신의 그 나긋나긋하던 며느리가 맞긴 한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 “그래, 이제 보니 예전의 그 모습들은 다 가식이었나 보구나!”
  • 오혜선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는지 이를 갈며 그녀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 “오늘 일은 그냥 이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지혁이한테 말해서 너랑 이혼하라고 할 거라고! 이번에는 네가 무릎 꿇고 빈다고 해도 널 집안에서 쫓아낼 거야!”
  • 그 말에 가은은 냉소를 터트리며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아, 아까는 제가 깜빡하고 말씀 못 드렸는데, 저랑 지혁이는 이미 10분 전에 이혼했어요. 이번에는 당신이 저한테 무릎 꿇고 빈다고 해도 한 씨 가문 본가에는 단 한 발짝도 다시 들이지 않을 거예요.”
  • ‘이혼했다고? 그것도 방금 전에? 그럴 리가! 이 촌년은 예전에만 해도 낯짝 두껍게 한 씨 가문에 들러붙어 있더니, 이제야 드디어 미련을 버린 건가?’
  • 의심 어린 눈초리로 멀어져 가는 가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오혜선은 사실확인을 위해 곧바로 한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들, 너희 둘 정말로 이혼한 거니?”
  • “네.”
  • 짧게 답한 한지혁은 순간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되물었다.
  • “이제 막 법원에서 나온 참인데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 “누구긴 누구겠어. 길에서 가은이를 마주쳤는데, 그 천한 게 아까 나한테 으름장까지 놓더라니까!”
  •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이혼을 했다는 생각에, 그녀의 얼굴 위에는 곧바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 “그래도 너무 잘됐어! 끝내 이혼했잖니. 보육원에서 데려온 근본도 없는 여자애 따위가 내 잘난 아들한테 가당키나 하겠어? 걘 진작에 우리 집에서 나갔어야 했어…”
  • 한지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현재 그의 기분은 극도의 흥분상태인 오혜선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 심지어는… 약간의 이유 모를 짜증스러움과 죄책감이 드는 것도 같았다.
  • 이 이전에 그는 가은이 쉽게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리 위자료 6억과 저택 한 채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이혼을 얘기한 것도 모자라 위자료조차도 한 푼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 ‘이혼하면 돈도 없고 주변에 가족들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 거지? 됐다 그래. 오갈 데가 없어지면 결국엔 다시 날 찾아오겠지.’
  • ……
  • 가은은 택시를 타고 자신과 한지혁이 살던 저택으로 돌아왔다.
  • 이곳에는 그녀의 지난 3년간의 서러움들이 이곳저곳에 묻어있었다. 너무나 우중충한 그 기억들은 더 이상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 그녀는 저택 앞의 작은 정원을 지나 곧장 짐을 챙기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 단 1초도 이 저택에 더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짐을 다 챙기자 곧바로 방을 나섰다.
  • 하지만 1층으로 내려가자 거실에 있는 한 인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그것은 새하얀 원피스를 차려입은 민소율이었다. 그녀의 미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온화했다.
  • “가은아, 오랜만이야.”
  • 가은은 이곳에서 민소율을 마주칠 줄 몰랐던 듯 살짝 멈칫했다.
  • ‘이제 막 이혼했는데 민소율한테 이 저택의 열쇠를 주다니, 한지혁은 벌써부터 저 여자를 이 집에서 지내게 할 생각인 건가?’
  • 보아하니 그는 정말이지 그녀를 지극히도 아끼는 모양이었다.
  • 가은은 마음속에 치 떨리는 한기가 감도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은 채 우아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 조금의 동요도 없는 그녀의 모습에 민소율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싱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가은아, 고작 몇 년 못 봤을 뿐인데 넌 정말이지 갈수록 한 씨 집안 사모님의 태가 나네. 아참, 내가 말실수를 했구나.”
  • 민소율은 입을 틀어막으며 난처한 듯 웃음 지었다.
  • “깜빡했네. 너 혁이랑 이혼해서 이제 더는 한 씨 집안 사모님이 아니지.”
  • 그녀는 텃세를 부리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가은은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화를 내기는커녕 쿨하게 웃어 보였다.
  • “난 한지혁이 질렸거든. 하지만 네가 남이 놀다 버린 남자가 좋다면 너한테 줄게. 그래도 너무 성급하게 굴지는 마. 조강지처 자리를 꿰찬 첩 같아 보이잖아.”
  • 그 말에 민소율의 얼굴에 드리워져있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더니 서서히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나랑 혁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야. 그때 너만 아니었으면 우린 진작에 함께했을 거라고. 비난을 받아야 할 그 첩은 바로 너야!”
  • 가은은 조롱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 “도대체 누가 첩인지는 곧 알게 될 거야.”
  • 이곳에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었던 그녀는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민소율을 지나쳐갔다.
  • 하지만 저택을 떠나려던 그때, 갑자기 자신의 손목을 붙잡는 손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가련한 표정의 민소율이 있었다.
  • 토끼처럼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엄청난 설움이라도 당한 것처럼 보였다.
  • “미안해, 가은아. 난 항상 널 자매처럼 생각했었고 이번에도 그저 널 보러 찾아온 거야. 호의였다고. 난 너희 둘이 이혼한 줄 몰랐어. 정말로 다른 뜻은 없어. 그러니까 화내지 마, 응?”
  • “이런, 넌 얼굴이 두 개인가 봐?”
  •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민소율의 손을 떨쳐내려던 그때, 민소율이 갑자기 그녀의 동작을 따라 연약한 척 바닥에 넘어지면서 동시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 만약 등 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모습을 본다면 마치 그녀가 민소율을 강하게 밀쳐낸 것처럼 보일만한 상황이었다.
  • ‘하, 재밌네.’
  • 가은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 연극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짐작이 맞다면 한지혁이 마침 돌아왔을 것이고 지금쯤 아마 문 앞에 서서 이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다.
  •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등 뒤에서 갑자기 남자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