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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나와 춤을 추기엔 넌 자격미달이야

  • 가은은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 있는 프랑스에서 스카우트해 온 칠성급 파티시엘이 만든 초콜릿 무스를 맛보고 있었다.
  • 그러던 그때, 남자의 커다란 손이 불쑥 그녀의 시선 속으로 들어왔다.
  • “아가씨, 저에게 당신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 이에 고개를 들어 그 손을 따라 위로 시선을 옮긴 그녀는 한지혁의 그 여전히 잘생긴 얼굴을 발견하자 순식간에 입맛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 두 쌍의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했다. 한지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가은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하는 것이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 그녀의 이목구비는 모든 부분들이 맞춤하게 예쁜 모양을 하고 있었고, 더욱이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는 그녀를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었다.
  • 그의 전 와이프는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나 그녀의 두 눈은 마치 그 속에 은하수가 담겨 있기라도 한 듯 맑고도 의연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사이로 어렴풋이 고집스러움이 비치고 있었다.
  • 한지혁은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그렇게 그가 한창 넋을 놓고 있던 그때, 가은이 순간 조롱 섞인 웃음을 터트리더니 차가움과 멸시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 “죄송해요, 한지혁 씨. 저와 춤을 추기엔 당신은 자격미달이에요.”
  • 우연히 그들의 옆을 지나가다 실수도 이 말을 듣게 된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 오만했다. 인천에서는 손에 꼽히는 한 대표를 자격미달이라고 평가하다니 말이다.
  • 한지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방금 전의 친근함 역시 그 자격미달이라는 한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그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는 젠틀한 동작을 유지한 채 겉으로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춤 한번 추는 것뿐인데, 가은 아가씨께선 설마 두려우신 겁니까?”
  • 그 말에 가은의 눈빛 역시 빠르게 차가워져 갔다.
  • ‘끝까지 들러붙겠다는 건가? 이 남자는 어쩜 이렇게 야비한 걸까! 좋게 말하면 못 알아듣는 거야?’
  •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번 서로를 향했다. 마주한 시선 사이에서 은은하게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 점점 더 살벌해져 가는 분위기에 신도윤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가은이는 제 파트너입니다. 한 대표님께서 굳이 제 파트너를 가로챌 필요가 있으실까요?”
  • 그는 고집스레 한지혁의 손을 밀어내고는 눈빛으로 힐끗 옆쪽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 “아무래도 한 대표님께서는 대표니께서 데려오신 파트너분께 춤을 청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성분께서 질투하시겠습니다.”
  • 하지만 한지혁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자 가은은 조금 짜증이 치밀었다.
  • 그녀는 신도윤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말한 뒤, 연회장을 떠나 호텔 정원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 이에 한지혁은 따라 나가려 했지만 신도윤이 그런 그를 억지로 이끌고 몇 명의 기업 오너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탓에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 ……
  • 옆 테이블에 있던 민소율과 한지수는 비록 그들이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는 확실하게 들을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 이에 한지수는 분노로 가득 차 가은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 “저 천한 년! 이혼까지 했으면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우리 오빠한테 매달리고 있네!”
  • 그런 그녀와는 달리 민소율은 서러운 듯 눈시울을 붉혔다.
  • “가은이는… 아마도 진짜로 혁이를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만약 지난 3년이라는 시간으로 인해서 혁이도 가은이한테 마음이 생긴 거라면, 난… 난 두 사람을 위해 물러나 줄 거야.”
  • 그녀는 말을 내뱉으며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 자신의 오빠를 포기하겠다는 그녀의 말에 한지수는 순간 당황했다.
  • “그러지 마요, 소율 언니! 언니가 왜 물러나요! 내가 인정하는 새언니는 언니밖에 없다고요. 저 천한 계집애! 미워 죽겠어! 내가 있는 한 저 계집애는 한 씨 가문에 다시 발을 들일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해요!”
  • 하지만 민소율은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더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가련한 모습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 “지수야, 그렇다고 내가…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 한지수는 안타까운 듯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 그리고는 가은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문뜩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 “소율 언니, 이 일은 저한테 맡겨요. 제가 꼭 저 천한 년의 정체를 까발려서 다시는 언니와 대적할 자격조차 없게 만들게요!”
  • “지수 너, 어떻게 하려고?”
  • 한지수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몇 마디 소곤거렸다. 그러자 민소율이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 “그게… 정말 될까?”
  • “언니는 좋은 구경이나 기다리고 계세요!”
  • 말을 마친 한지수는 얼굴에 표독스러운 미소를 띤 채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 쪽으로 걸어갔다.
  • 그녀가 떠나가자 민소율의 얼굴에 드리워져있던 서러운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순간 그녀의 얼굴위로 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 ‘한지수 그 바보 같은 계집애가 그래도 쓸모는 있단 말이지. 말 몇 마디에 걸려들다니 말이야.’
  • 그녀는 한지수가 제발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