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그런 그녀의 입가에는 어딘가 조롱이 묻어있었다.
“보아하니 한 씨 가문의 가정교운은 정말이지 형편없는 모양이네. 딸을 가르쳤다는 게 입게 걸레나 물고 다니니 말이야. 그리고, 결혼했었던 게 뭐가 어때서? 한 번 결혼했던 사람은 이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규정이라도 있어? 그러는 너희 오빠는 한 번 결혼했던 사람이 아닌 건가? 방금 전 네가 했던 말은 전부 다 내 개인에 대한 모욕이야. 내가 널 고소할 수 있는 거라고.”
“너!”
한지수는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뺨을 맞은 데다 가정교육까지 지적을 당했으니, 그녀와 한 씨 가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창피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녀를 때린 사람이 한때는 그녀의 괴롭힘에도 말 한마디 못하던 가은이었으니 정말이지 굉장한 치욕이었다.
“천한 년, 죽여버릴 거야!”
그녀는 사납게 달려들더니 무서운 표정으로 가은의 머리채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이를 본 신도윤이 재빨리 가은을 품 안에 끌어안으며 자신의 등을 한지수 쪽으로 향했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막아선 사람 중에는 한지혁도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새까만 두 눈동자로 한지수를 쏘아보았다.
“언제까지 난동을 부릴 생각이야? 사과해.”
“오빠! 나 오빠 동생이야. 저 천한 게 날 때렸는데, 나 대신 저년을 처리하지는 못할 망정 저년을 도와주는 거야? 게다가 나더러 사과를 하라고?”
이에 한지혁은 완전히 얼굴을 구긴 채 경고했다.
“나도 눈이 있어.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다 보인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말할게. 사과해!”
그러자 한지수의 기세가 순식간에 한 풀 꺾였다.
‘하지만 내가 가은이 저 천한 계집애를 욕한 게 뭐 어때서? 난 단지 사람들에게 이 천한 계집의 진짜 얼굴을 까발리려던 것뿐이라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생각할수록 억울했던 그녀가 계속 논쟁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민소율이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며 작은 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지수야, 혁이 진짜로 화났어. 혁이는 널 위해 그런 거야. 어찌 됐든 가은이가 널 고소하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오늘은 이쯤 하는 게 좋겠어. 앞으로도 시간은 많아.”
마지막 한마디는 꽤나 의미심장했다. 민소율의 다독임에 한지수는 끝내 화를 진정시키고는 모기만 한 소리로 작게 한마디 내뱉었다.
“미안.”
그리고는 얼굴을 붉힌 채 급히 연회장을 뛰쳐나갔고, 민소율이 한지혁을 향해 걱정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는 곧바로 그런 한지수를 쫓아갔다.
한차례 소동은 그렇게 겨우 마무리되었다.
비록 방금 전의 한지혁이 했던 말 때문에 사람들의 가십에 대한 욕구가 끓어오른 상태였지만 그들도 신도윤이나 한지혁 모두 쉽게 건드릴만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연회장은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갔고 방금 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신도윤은 한지수가 사라져 간 방향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냥 이대로 보낼 거야? 내가 몰래 사람을 시켜 한바탕 패줄까? 너 대신 나서줘?”
이에 가은은 실소를 터트리며 가볍게 그의 어깨를 밀쳤다.
“나서긴 뭘 나서? 난 전혀 화 안 나. 쟨 그냥 말 몇 마디 한 것뿐인데 난 쟤를 한 대 세게 때렸잖아. 내가 이득을 본 거야.”
신도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는 순간 자신의 꼬마 공주님이 조금은 사나워 보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한지혁은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내내 곁눈질로 가은이 있는 방향을 힐끔거리던 그는 신도윤을 향해 애교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도대체 왜 기분이 나쁜지는 그 역시 알지 못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여자에게 놀아났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십 분이 더 지나자 민소율이 한지수를 데리고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한지수는 화장까지 고쳤는지 왼쪽 뺨 위의 붉은 자국이 가려져 있었다.
민소율과 함께 조용히 한지혁의 뒤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은 얌전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단지 가끔씩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는 가은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볼 뿐이었다.
파티가 중반쯤에 다다르자 무대가 열리고 적지 않은 기업 오너들이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무대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민소율 역시 잔뜩 신이 나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한지혁을 바라보며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젠틀하게 그녀에게 춤을 청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지혁 역시 그런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에 민소율의 표정에 서린 흥분감이 더욱 강렬해져 갔다.
그녀는 마치 다음 순간 무대 위 이목의 중심이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