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왜 아직도 안 죽었어
- 반예원은 폐인 같은 형부가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종일 빈둥거리며 놀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밥하고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변기나 수리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 이런 일은 남자가 하는 게 아닌데, 어떻게 사내가 돼서 종일 폐인처럼 살아간단 말인가? 윤찬우가 반씨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첫날부터 반예원은 줄곧 이 형부가 꼴 보기 싫었다.
- 언니는 대체 왜 이런 형부를 데려왔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잘 생기길 했나, 능력이 있길 하나, 언니가 동정하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폐인은 아마 평생 외톨이로 살아갈 것이다!
- “너랑 함께 술 마신 녀석들이 네 술잔에 약을 탔어. 내가 널 구해준 거야.”
- 윤찬우는 처제가 줄곧 저를 얕잡아보는 걸 잘 알기에 더는 말을 늘여놓지 않았다.
-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반예원은 두 눈을 부릅뜨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
- “약을 타? 누가 누구한테? 내가 볼 땐 네가 나한테 약을 탄 것 같은데 오히려?”
- 그녀는 좀 전의 건달들이 자신에게 약을 탄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다. 설사 약을 탄다 해도 윤찬우처럼 종일 빈둥거리는 폐인들만이 이딴 저렴한 짓을 저지르는 거라고 여겼다.
- “네 맘대로 생각해.”
- 윤찬우도 더는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하도 반예린의 동생이니 선뜻 도와준 것뿐이지 그게 아니라면 반예원이 길바닥에 나앉아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 “윤찬우, 너 감히 나한테 이딴 식으로 말을 해?”
- 그의 퉁명스러운 태도에 반예원은 버럭 화를 냈다. 3년 전 데릴사위로 반씨 집안에 지낼 때 윤찬우는 줄곧 그녀에게 공손하게 대했고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 없다.
- 그런 그가 3년 후에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하다니?
- “반예원, 내 말 잘 들어. 나 지금 네 언니의 체면을 봐서 널 도와주는 거야. 아까 내가 아니었다면 넌 진작 그 건달들에게 끌려가 몹쓸 짓을 당했을 거야.”
- 윤찬우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노려봤다.
- “이젠 술도 다 깼으니 다시 돌아가서 계속 술을 마시든지 아니면 집으로 가든지 네가 알아서 해. 나랑 상관없으니까.”
- 말을 마친 윤찬우는 고개를 홱 돌리고 그냥 가버렸다.
- 그의 냉정한 태도에 반예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 “윤찬우, 너 거기 안 서?”
-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점점 더 멀어져가더니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반예원은 문득 살짝 겁이 났다.
- “윤찬우, 너 안 서면 나 바로 언니한테 전화한다? 전화해서 네가 내 술에 약을 탔다고 이를 거야.”
- “반예원, 너 대체 왜 이래?”
- 윤찬우는 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 3년 동안 그는 단지 반예린에게 빚진 게 많지만 반씨 집안 사람들에겐 전혀 신세 진 게 없었다.
- 하여 그동안 자신을 모질게 굴었던 반예원이 너무 싫었다.
- “나 집까지 바래다줘.”
- 3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명령 조로 윤찬우에게 말했다.
- “넌 손이 없어 발이 없어? 혼자 택시 불러서 가면 되잖아.”
- 윤찬우가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 “너무 캄캄해. 나 무서워!”
- 반예원도 뒤질세라 투덜거렸다.
- “윤찬우, 대체 바래다줄 거야 말 거야? 3년 전에 우리 집안에서 널 거의 길러주다시피 했는데 인제 와서 집 한번 바래다주는 것조차 하기 싫어? 양심이 있긴 하니?”
- 그녀는 윤찬우의 태도에 울화가 치밀었다.
- 3년 만에 본 그는 폐인에서부터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돌변했다.
- ‘너 딱 기다려. 집까지 바래다주거든 내가 널 톡톡히 혼내줄 거야.’
- “이리 와.”
- 윤찬우가 그녀에게 말했다.
- “왜?”
- 반예원은 그런 윤찬우가 조금은 불안했다.
- “집까지 바래 달라며?”
- 윤찬우는 결국 그녀를 홀로 이곳에 버려두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녀는 반예린의 하나뿐인 친여동생이었으니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예린이가 절대 용서치 않을 테니 말이다.
- “칫!”
- 반예원은 코웃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윤찬우에게 걸어갔다. 하지만 이제 막 일어났을 때 그녀는 눈앞이 아찔거리고 온몸이 뜨거워지며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온몸을 휘감았다.
- 그녀는 이 욕망이 뭘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윤찬우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망이었다.
- ‘진짜 약을 탄 게 맞았네!’
- 반예원은 뒤늦게 알아채고 부풀어 오르는 욕망을 억제하며 윤찬우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윤찬우에게 말했다.
- “경고하는데 나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마. 1미터 떨어져 있어. 그렇지 않으면 언니한테 고자질할 거야. 네가 나한테 불순한 마음을 품었다고 말이야!”
- 반예원은 자신이 윤찬우를 오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 “나 너한테 관심 없어.”
- 윤찬우는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외모도 평범할뿐더러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녀가 공짜로 차려진다 해도 성에 차지 않을 노릇이었다.
- “에이, 퉤!”
- 윤찬우의 말을 들은 그녀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 “난 뭐 너한테 관심 있어서 이러는 줄 알아? 차라리 아까 그 녀석들한테 몹쓸 짓을 당하고 말지. 너 따위 폐인은 털끝 하나 스치기도 싫어! 언니는 대체 너 같은 폐인 따위가 뭐가 좋아서 결혼했는지 모르겠네.”
- 반예원은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윤찬우가 점점 더 꼴 보기 싫었다.
- “뭐?”
- 그녀의 말을 들은 윤찬우는 고개를 홱 돌리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봤다. 순간 반예원은 겁에 질려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용맹한 사자의 눈빛처럼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그녀는 고작 사냥감일 뿐이었다.
- “너 왜 그래?”
- 반예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 윤찬우는 그녀를 빤히 쳐다볼 뿐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 잠시 후 택시 한 대가 질주하여 30분 이내에 고급 단지의 문 앞에 주차됐다.
- 월드 클라우드, 이곳은 강화시 재벌들의 집결 구역이다. 특별히 고급스러운 동네는 아니지만 적어도 일반인들이 살만한 곳은 아니니까!
- 이곳의 집값만 해도 한 평에 오륙백 만원이다! 강화시는 규모가 작은 도시인데 말이다.
- “돈 물어!”
- 윤찬우는 차 문을 열고 고개 돌려 뒷좌석의 반예원에게 말했다.
- “그럼 그렇지. 역시 넌 변한 게 없어. 3년 만에 돌아왔는데 택시비를 낼 돈도 없니? 윤찬우, 너 폐인 맞잖아.”
- 반예원은 야유에 찬 눈길로 그를 노려봤다.
- ‘3년 동안 밖에서 뒹굴다 온 남자가 택시비를 낼 돈조차 없는데 대체 왜 사는 거야? 내가 너라면 진작 벼랑 끝에 떨어져 죽었을 거다! 살아있는 자체가 자원 낭비야!’
- 택시비를 다 낸 후 그녀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단지로 들어갔다. 한편 윤찬우도 그녀 뒤를 따라 다시 한번 3년 전에 모진 굴욕을 당했던 그 단지로 걸어갔다.
- “딩동!”
- 반예원이 초인종을 누르자 곧바로 누군가 달려와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문을 연 사람은 반예원 뒤에 서 있는 윤찬우를 본 순간 사색이 되어 버럭 고함을 질렀다.
- “찬우 씨, 당신이 왜 여기에? 왜 아직도 안 죽었어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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