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월은 마치 자기 것이라고 도장이라도 찍듯이 이훈을 더 세게 잡으며 채윤아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윤아야, 귀국했으면서 왜 우리한테 말하지도 않았어?”
“그럴 필요 없잖아.”
“듣기로는 외국에 나가려고 채 씨 가문과 인연도 끊었다며?”
여월은 걱정하는 듯하지만 은근히 비꼬는 듯 말했다.
“집에 가보는 건 어때?”
채윤아가 난감해하는 걸 눈치챈 이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월아, 가자.”
“급하기는! 윤아랑 오랜만에 봤는데 더 얘기하고 싶단 말이야!”
여월은 말하면서 채윤아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억지로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채윤아는 입술이 말랐고 눈을 내리깔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서 여월은 채윤아를 끌고 들어갔다. 채윤아는 눈을 내리깐 채 손님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것을 보고는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녀의 옆을 지나가던 손님의 정장 재킷이 채윤아의 코를 스쳤고 풍겨오는 한기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어쩐지 익숙했다. 채윤아는 살짝 머리를 들어 보려고 했으나 여월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윤아야, 혹시 올 수 있어?”
“뭐를?”
채윤아는 시선을 회수하며 여월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기에 물었다.
“나와 훈이의 약혼식.”
여월은 가녀린 손을 들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였다.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 달 18일이야. 네가 오길 바라.”
익숙하고 값비싼 반지에 채윤아는 눈이 아팠다. 예전에 이훈과 함께 쥬얼리 샵에 갔을 때 한 반지를 가리키며 결혼할 때 무조건 그 반지로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그 반지가 여월의 손에 끼워져 있었다.
“일 방금 시작해서 아마 시간 없을 거야.”
채윤아는 더 이상 마음이 불편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보지 않았다.
“윤아야, 그냥 와!”
여월은 열정적으로 채윤아의 손을 잡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 예전부터 너무 기대했단 말이야. 내가 결혼할 때 네가 들러리 서주는 모습을.”
채윤아는 어이가 없었다. 여월은 처음부터 다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채윤아가 대답이 없자 여월은 눈빛을 번뜩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함께 올 파트너가 없어서 망설이는 걸 알아. 괜찮아. 오랜 친구로서 내가 너한테 소개해줄게.”
“나 남자친구 있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뿐이야.”
채윤아는 여월의 손을 내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남자친구와 절친의 약혼식에는 누구라도 가지 않을 거야.”
이훈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여월도 표정을 굳히다가 채윤아의 손을 다시 잡고 말했다.
“윤아야, 네 남자친구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해. 얼굴 보고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지. 널 이렇게 잘 챙겨줬는데.”
“그럴 필요 없어. 그는 바빠.”
실랑이를 벌이던 중 채윤아는 발을 삐끗하고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여월은 부축하지 않고 몸을 슬쩍 옆으로 비켰다. 채윤아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누군가의 단단한 가슴팍에 머리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