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아는 말하면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너무 급한 나머지 머리가 상대방의 단추에 걸렸다. 그녀는 걸린 머리카락이 너무 아팠기에 다시 넘어졌고 양손은 남자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채윤아는 감전된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고의가 아니었어요!”
엘리베이터에 정적이 2초 흘렀다.
“... 풋!”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몇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큰 인물의 차가운 얼굴이 그들의 웃음을 제지했다. 웃던 사람들은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유재원은 몸이 굳어지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렇게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저...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채윤아는 급하게 머리카락을 빼내려고 했지만 움직일수록 더 아팠다. 그녀는 손에 땀이 났다.
분명 만난 적이 없었지만 유재원은 여자가 익숙했다. 그녀의 작고 가녀린 손은 아직도 그를 붙잡고 있었다. 결벽증 환자인 유재원은 그것에 반감이 들지 않았다. 그는 1초 동안 침묵하더니 그녀의 요구대로 머리를 숙이고 길고 잘 빠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잡아 오른쪽으로 돌렸다.
“움직이지 마. 힘 빼.”
차갑게 내뱉는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했다. 채윤아는 멈칫했다. 5년 전 호텔에서 있었던 그날 밤이 생각났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녀는 몽롱했고 남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의 붉은 입술은 보았었다. 그는 힘 빼라고 한 뒤 더욱 힘차게 몰아붙였다. 그때의 화면이 너무 생생하게 채윤아의 머릿속에서 재생되었고 그녀는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세상에. 발정이라도 난 것인가? 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대답이 없었기에 호기심에 찬 채윤아는 살며시 머리를 들어 그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수제 슈트를 입은 남자는 기다란 다리에 차갑고 도도했으며 굳게 닫친 입술이 매혹적이었다.
“아가씨.”
비서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채윤아가 유 사장의 품에 안긴 것을 생각하며 말했다.
“급하다면서요. 꼬실 시간은 있나 봐요?”
꼬신다고?
채윤아는 얼떨떨했다.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녀를 흘겼다. 몇 년 동안 그녀의 주위에는 여자가 많았다.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접근하려고 온갖 수를 다 썼지만 5년 전 그 일이 발생하고 나서 지금까지 여자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여자가 바로 그 해에 그가 사람을 잘못 보고 잔 그 여자였다. 아들의 친엄마.
여자의 의도가 분명한 행동은 자신에게 접근하기 위해 일부러 행한 행동이라고 생각되었기에 유재원의 눈빛에는 혐오가 조금 섞여 있었다. 그는 하마터면 진짜로 눈앞의 여자에게 속을뻔했다. 채윤아는 발끈해서 말했다.
“제가 급하다는데 그게 무슨 눈빛에요?”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한 게 후회되었다.
“임 비서.”
남자는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층수 눌러.”
임 비서는 가장 가까운 층수를 누르고 문이 열리자 채윤아를 내보냈다.
“아가씨. 내리세요. 다음에는 이런 수를 쓰지 마시고요.”
“저기요, 저 진짜 아니...”
채윤아는 설명하고 싶었지만 비서의 태도는 강경했다. 채윤아는 이를 악물고 유재원을 쏘아보고는 엘리베이터를 나서며 작게 욕했다.
“자기가 뭐라도 되나 봐. 웃겨. 내가 꼬신다고? 기생오라비처럼 생겨 가지고, 분명 클럽 죽돌이일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기 때문에 임 비서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렸다.
‘이 여자가 죽고 싶은 건가? 감히 유 사장님을 죽돌이라고?’
남자의 몸에서는 살기가 흘렀고 임 비서는 손발이 떨려왔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경비실에 연락해서 처리하겠습니다!”
“귀찮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유재원도 시선을 거두었다. 여자의 말이 아직도 귀에서 맴돌았다. 그는 여자에게 흥미가 생겼다.
‘일부러 머리를 단추에 걸리게 하고서는 클럽 죽돌이라고 욕까지 한다고? 너무 재밌군!’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를 더 내리깔고는 그 여자가 과연 면접에서 두각을 나타낼지 궁금해하며 말했다.
“이 매니저에게 연락해. 열시의 면접에 나도 간다고.”
“네, 사장님.”
접대실로 도착한 채윤아는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서 어마어마한 부담을 느꼈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그녀는 아무렇게나 자리를 찾아 섰고 옆에서는 몇몇 여자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