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는 유독 눈에 띄었다. 블랙 셔츠에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접근 금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남자가 나오는 걸 보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급히 달려가 캐리어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 사장님, 작은 도련님께서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습니다. 우선 저택으로 돌아갈까요?”
“왜 지금 말해?”
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화낼 것 같았기에 비서는 공포에 떨었다. 유가에서 유 사장이 작은 도련님을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부서질세라 애지중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유 사장은 작은 도련님 앞에서 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만... 비서는 우물쭈물 변명했다.
“사장님께서 시카고에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러 갔는데 혹여 방해가 될까 봐 전화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도련님께서 하루 종일 음식을 거부할 줄은...”
남자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선글라스를 벗고 비서를 보았다. 남자의 눈은 심해와도 같이 검었지만 어쩐지 조금의 푸른색을 보아낼 수 있었다. 주위의 공기마저 차가워졌다. 비서는 무서운 나머지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유 사장은 화가 나면 동공이 푸른색으로 변했다. 그는 지금 화가 난 것이다... 망했다. 일자리를 잃었다고 비서는 생각했다.
“언제 네가 나를 대신해 결정했지? 응?”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욱 차가웠다.
“죄, 죄송합니다...”
비서는 머리를 숙이고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였다. 바로 이때, 작은 초콜릿 하나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재원의 구두 옆에 떨어졌다. 초콜릿 위의 포장지를 보고 유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허리를 숙여 초콜릿을 집었다.
“아저씨, 그거 제거예요!”
말랑말랑한 목소리와 함께 작은 아이가 달려왔다. 아이는 네, 다섯 살 정도 돼 보였다. 키는 작았기에 유재원이 몸을 숙여도 아이는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아야 했다. 커다랗고 검은 눈은 진주 같았고 반짝거리는 눈에는 아이 특유의 순진함이 풍겼다. 아이의 천진한 모습에 유재원은 가슴이 뛰었고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상했다. 분명 처음 보는 아이인데 왜 이렇게 강렬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마치 알던 사이처럼.
채한별은 머리를 흔들며 유재원에게 말랑말랑한 작은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초콜릿이 먹고 싶으면 사서 드세요. 저는 세 개밖에 없어서 아저씨한테 줄 게 없네요!”
그녀의 귀여운 말에 유재원의 날 선 신경이 누그러졌다.
“너 이 브랜드 초콜릿 좋아해?”
유재원은 몸을 숙이고 초콜릿을 돌려줬다.
뭐?
옆에 있던 비서가 놀랐다. 유 사장은 분명 작은 도련님을 제외한 모든 아이를 싫어했다. 그런데 몸까지 숙여서 아이한테 말을 걸다니. 게다가 작은 도련님을 대하던 부드러운 말투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채한별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덧니 두 개를 보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