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빠들은 매일 엄마한테 뽀뽀하는데 우리 아빠는 일 년에 두 번밖에 못 보고 오면 엄마랑 몇 마디 하지도 않고 가요. 포옹도 안 하고 뽀뽀도 안 하고.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난 이런 아빠 필요 없어요!”
채윤아는 씁쓸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 없는 아이로 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람을 불러 매년 와서 아빠 행세를 하게 한 것이다. 아이한테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아이는 너무 똑똑했고 그녀를 위해 생각하기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채한별은 이어서 말했다.
“엄마가 이혼하면 제가 슬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일 년에 한번 보는 남편이나 아빠보다는 재혼하시는 게 더 좋아요. 새아빠가 저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새 오빠와 언니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바보.”
채윤아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는 남편 따위 필요 없어. 우리 별이만 있으면 돼.”
“하지만 나는 오빠가 갖고 싶은걸요.”
채한별은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나를 공주님처럼 예뻐하는 오빠도 갖고 싶어요!”
채윤아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집사가 데려간 아이가 생각나면서 그 애는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만약 가능하다면 꼭 한번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었다.
채윤아가 슬퍼하는 모습을 본 채한별은 속으로 다짐했다.
‘꼭 다정하고 멋진 아빠를 찾아서 엄마를 매일 기쁘게 해드려야지!”
그날 밤, 채윤아는 TS 그룹 인사팀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TS 호텔에 근무하라는 통지서였다. 채윤아는 정리를 마치고 한별이가 패드를 안고 노는 모습에 다가가서 물었다.
“우리 공주님, 뭐해?’
채한별은 재빨리 패드를 품속으로 숨기며 말했다.
“엄마 보지 마요, 저리 가요!”
“그래그래. 엄마 안 볼게.”
채윤아가 가고 나서 채한별은 자료를 마저 작성하였다. 채윤아의 이름과 사진이었다. 결혼 정보 회사 사이트였다. 정보 등록을 마치고 채한별은 기지개를 폈다. 오늘 본 아저씨들은 다 괜찮았지만 비행장에서 본 아저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엄마와 꼭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한별은 아저씨의 정보를 찾지 못했고 다른 아저씨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채윤아는 이 영리한 아이에 의해 자신이 팔렸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
채윤아가 호텔에 출근한 날, 마침 그날은 TS 호텔의 10주년 파티가 열렸다. 직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마친 후 채윤아는 그 파티로 인해 정신없이 바빴고 홀에서 무전기로 아래위층에 있는 직원들과 소통하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윤아?”
익숙한 목소리에 채윤아는 몸이 굳어졌다. 카운터를 잡고 있던 손이 떨렸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몸을 돌리자 젊은 남녀가 앞에 서있었다.
훤칠한 남자는 채윤아가 몸을 돌릴 때 화들짝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여자는 남자의 팔짱을 낀 채 너무 다정해 보였다.
5년 뒤 전 남자친구를 다시 보니 마음이 괴로웠다. 채윤아는 주먹을 세게 쥐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이훈은 채윤아를 보면서 눈에는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듯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