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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서원고등학교 입학

  • 그녀는 일개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하버드 박사 논문보다 어려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민주는 오만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녀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전에 송다은이 다녔던 학교는 시골의 평범한 고등학교였고, 성적 역시 중하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 ‘그 정도 수준을 가지고 나랑 같은 학교에 다니려는 헛꿈을 꿔? 꿈 깨! 잠시 뒤면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겠네!’
  • 송다은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짐작할 마음이 전혀 없는 듯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조용한 두 사람과는 달리 송진호만은 혼자 뒷좌석에 앉아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 [어떻게 됐어? 처리된 거야? 서원고 교장이 전례를 깨고 받아주겠대?]
  • [송 대표님, 교장 선생님께선 절대 동의할 수 없다십니다.]
  • [동의하지 않는다고? 내가 기부한 돈이 부족하다는 거야? 그럼 내가 건물을 세 채 더 기부하도록 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동생을 받아줘야 할 거야!]
  • [송 대표님, 대표님께서 건물을 아무리 많이 기부하셔도 교장선생님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실 겁니다. 올해 고3 학생들이 두 달 뒤면 수능을 쳐야 하는데, 교장선생님께선 학생을 받아 학교의 전체 성적을 끌어내리는 모험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 할 거예요…]
  • [젠장! 만약 교장이 내 동생의 기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내가 서원고등학교를 평평하게 밀어버릴 줄 알아!]
  • [……]
  • 송씨 가문의 저택은 서원고등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차에서 내리자, 청춘의 활기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그녀를 덮쳐왔다. 이에 두 번의 삶 동안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던 송다은의 마음도 어쩔 수 없이 들뜨기 시작했다.
  •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좋네. 한때 그토록 꿈꿨던 일이 드디어 실현됐어.’
  • 교장은 비록 강경하게 부정 입학은 안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송씨 가문의 재력이 두렵기는 했는지 조마조마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교문 앞에서 그들을 맞이하며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듯 송다은이 시험을 칠 방을 따로 하나 마련해 주기까지 했다.
  • 그녀가 시험을 치게 될 과목은 총 네 개로, 국영수에 과학탐구 영역과 사회탐구 영역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었다. 국영수가 각각 100점 만점에, 과학탐구 영역 또는 사회탐구 영역이 100점 만점이었고, 입학 기준 점수는 320점이었다.
  • 시험 문제들을 한번 훑어본 송다은은 이내 막힘없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험 감독관 선생은 그녀의 속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얘는 검산도 안 하는 거야? 문제를 한번 보고 답을 아는 건가?’
  • 시험시간은 총 4시간이 주어졌지만, 송다은은 단 1시간 만에 손에서 펜을 내려놓았다.
  • “다 썼어요, 선생님. 시험지 제출할게요.”
  • 시험 감독관 선생은 기가 막혔다.
  • “??? 더 풀거나 검사 같은 것도 안 하는 거니?”
  • 그러자 송다은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 “고맙지만 필요 없어요. 아마 점수는 충분할 거예요.”
  • 이에 시험 감독관 선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시험지를 집어 들었다.
  • ‘참나, 앞에 있는 문제만 풀고 뒤쪽에 절반 이상은 비워놨는데, 이래놓고 점수가 충분할 거라고?’
  • 송진호 역시 그녀가 시험지의 뒷면을 비워놓은 것을 보았고, 아마 문제가 너무 어려워 풀 줄 모르는 것이라 짐작하고는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
  • “괜찮아. 이딴 쓰레기 학교, 못 붙으면 말지 뭐. 오빠가 더 좋은 학교를 찾아줄게.”
  • 옆에 있던 교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그렇게 대놓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 시험 감독관 선생은 빠른 속도로 채점을 진행했다.
  • 막 채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입학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던 선생은 채점을 이어 나갈수록 놀라움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 그녀가 풀어놓은 문제들은 비록 수는 적었지만 전부 정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과목이 다 똑같은 상황이었다.
  • 그렇게 채점을 끝낸 뒤 점수를 더하자 놀랍게도 딱 320점이었다. 1점도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320점 말이다.
  • 앞에 있는 이 여자애는 딱 봐도 일부러 자신의 점수를 조절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문제를 전부 다 풀었다면 아마 학년에서 한 자릿수 등수 내에는 들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더 무서운 학생이 바로 점수를 조절하는 학생이었다. 이미정 선생은 시험지를 손에 쥔 채 빙그레 웃음 지으며 송다은에게 다가가 물었다.
  • “송다은 학생, 시험 엄청 잘 봤어. 이미 입학 기준 점수는 넘겼다고. 우리 B반에 들어올 생각 있어?”
  • 이 학교 3학년은 네 개 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성적순으로 나눈 A, B, C, D 네 개의 반 중 성적이 가장 좋은 반이 바로 A반이었다. 이에 송다은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이미정을 바라보았다.
  • “죄송해요, 선생님. 전 A반에 가고 싶어요.”
  • 그녀의 꿈은 단순히 서원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하려는 것은 바로 지난 삶에서와 같이 차트 꼭대기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 교장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곧바로 수락했다.
  • “그래그래, 다은 학생이 가고 싶은 반으로 가야지. 이미정 선생, 얼른 가서 윤 선생한테 연락해요. 그 반에 학생 한 명 새로 들어갈 거라고요.”
  • ‘웃기는 소리! 비록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눈다고는 하지만 다은 학생은 딱 봐도 점수를 조절한 거잖아! 이 정확도면 1등도 문제없을 거라고! 이 학생은 보석이야!’
  • 이에 이미정 선생은 다소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 “알겠습니다.”
  • 그렇게 몇 걸음 옮기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송다은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 “윤 선생님이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으셔. 만약 그 반에서 서러운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와. 선생님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 송다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 “감사해요, 선생님.”
  • 한편, 송진호는 시험지를 손에 쥔 채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 ‘이게… 내 동생이 푼 거라고? 반밖에 안 풀었는데 놀랍게도 320점을 채웠단 말이야? 이게 신동이 아니면 뭐겠어?!’
  • “가져가서 액자에 끼워서 내 사무실에 걸어놓도록 해요.”
  • 송진호는 들고 있던 시험지를 옆에 함께 온 운전기사에게 건넸다.
  • ‘우리 동생 똑똑하네. 액자에 끼워 넣으면 한쪽 면만 보인다는 걸 알고 한쪽 면만 썼잖아. 역시 똑똑해!’
  • 송다은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 “오빠, 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아?”
  • 다른 대표이사들은 다들 사무실에 유명 작가의 작품을 걸어놓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비싼 예술 작품을 걸어놓는데, 그녀의 오빠는 시험지 두 장을 걸어놓게 될 걸 생각하면 기상천외하기 그지없었다.
  • 하지만 송진호의 표정은 침착하기만 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
  • “어른들 일이니까 어린애는 신경 끄고 이만 수업하러 가봐. 저녁에 운전기사가 데리러 올 거야. 집에 돌아오면 오빠가 그때 다시 제대로 축하해 줄게!”
  • 이에 송다은은 한숨을 내쉬며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 ……
  • 사무실 안에 있던 윤희진은 자신에게 찾아온 송다은을 보자 순간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 “네가 바로 아까 입학시험을 통과한 송다은이니?”
  • 송다은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선생님.”
  • 그러자 윤희진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 ‘송씨 가문이 대단하긴 하네. 겨우 기준 점수에 도달한 애를 억지로 내 A반에 집어넣다니 말이야!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기나 하겠어? 이건 지금 이 새로 온 애가 우리 반의 평균 점수를 끌어내릴 거라는 의미라고! 우리 반의 전체 등수가 떨어지게 될 거란 말이야! 곧 수능인데 교장선생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 윤희진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 자신의 모든 분노를 앞에 있는 송다은을 향해 쏟아냈다.
  • “너 내가 이끄는 그 반의 매년 평균 점수가 몇 점인지 알아? 360점이야, 그것도 5년 연속 말이지! 내가 방금 계산해 봤는데, 네 320점을 더하면 전체 평균이 350점으로 떨어지게 돼! 이게 무슨 수준인 줄 알아? 이건 C반 평균 수준이야! 우린 A반이라고!”
  • 그녀는 잔뜩 화가 난 채 송다은을 질책하며 손가락으로 팍팍 소리가 나도록 책상을 두들겨댔다.
  • 하지만 송다은은 그런 그녀의 분노에 전혀 영향을 받은 기색 없이 오히려 침착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 “만약 제가 선생님 반의 평균 점수를 370점으로 올려드릴 수 있다면요?”
  • 그 말을 들은 윤희진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큰소리는 누가 못하니? 370점이라니, 너 자신이 370점이 나오면 내가 너 반장 시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