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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문제 풀이

  • 송다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힐긋 쳐다보았다.
  • “방금 그 말씀 꼭 기억해 두셨으면 좋겠네요. 번복하지 마시고요.”
  • 그러자 윤희진은 눈을 흘겼다. 하지만 아무리 내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교장의 명령이었기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지시한 대로 송다은을 데리고 자신의 A반으로 향했다.
  • 그리고 송다은이 윤희진을 따라 교실로 들어선 순간 조용하던 교실이 순간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 “저 여자애는 누구지? 전학생인가?”
  • “설마, 2달 뒤면 수능인데, 이제 여길 와서 급히 공부한다는 건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저 여자애 앞머리도 너무 덥수룩한 데다 저렇게 큰 안경을 쓰고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제대로 안 보여.”
  • “허, 높은 확률로 못생겼을 거라고 본다. 예쁜데 누가 얼굴을 가리겠어?”
  • 자신의 반의 규율이 흐트러지자, 윤희진은 화가 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교탁을 세게 내려쳤다.
  • “웬 소란들이야? 다들 조용히 해! 이쪽은 우리 반에 새로 온 전학생이야.”
  •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송다은을 향해 말했다.
  • “됐어. 너도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뒤에 빈자리 찾아가서 앉아.”
  • 그녀는 시종일관 송다은의 이름을 소개하려는 생각도 없어 보였고,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 하지만 그럼에도 송다은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소개하지 않으면 굳이 자신이 입 아프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기에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녀는 교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그러다 한 인영에 시선이 닿은 순간 그녀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남자애는 그녀와 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교한 이목구비는 마치 선반에 진열해 놓은 건담 같았고, 머리는 옅은 밤색이었다.
  • 그는 항상 1등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로 그 누구도 그를 뛰어넘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현재 팔짱을 낀 채 오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두 눈에는 선명한 짜증과 조롱이 담겨 있었다.
  • 아마 그 남자애가 바로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여섯째 오빠인 송시훈인 듯했다. 자신을 향한 그의 가득한 적의에도 송다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는 구석지고 조용하지만 창문 옆에 있는 구석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 자리에 앉기 바쁘게, 가방 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에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니 큰오빠 송진호가 그녀에게 음성을 하나 보낸 것이었다.
  • 송다은은 별생각 없이 음성을 클릭했다. 그러자 곧바로 나직한 목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 “다은아, 수업 잘해. 오빠 먼저 간다. 너랑 시훈이랑 같은 반이니까, 모르는? 여섯째 오빠?”
  • 반 전체가 이 소식을 듣고는 충격에 휩싸인 채 고개를 돌려 송시훈을 쳐다보았다.
  • ‘둘이 남매야?’
  • 이에 송시훈은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일단 부정했다.
  • “뭘 봐? 나한테 여동생은 송민주 한 명밖에 없어. 성이 송씨라고 해서 아무나 우리 송씨 가문 사람인 건 아니라고!”
  • ‘민주가 나한테 말한 게 진짜 사실이었네. 저 송다은이라는 애 정말이지 속셈이 엄청나잖아. 오자마자 갖은 수작을 부려가며 사람들한테 자기가 내 여동생이고 송씨 가문의 아가씨라는 사실을 알리다니 말이야. 잔머리 한번 잘 굴렸네. 하지만 난 죽어도 쟤 뜻대로 되게 하진 않을 거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 토라진 어린애 같은 그의 말투에 송다은은 어이가 없었다.
  • ‘이 음성이 스피커로 재생될 줄 내가 알았겠냐고? 게다가 그건 큰오빠가 한 말이지 내가 한 말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 난리야? 됐어. 스무 살 넘게 먹고 고작 열몇 살짜리 어린애랑 실랑이할 필요는 없지.’
  • 이에 그녀는 반박도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송진호에게 답장 몇 마디 보낸 뒤 휴대폰 전원을 끄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책을 꺼내 수업 준비를 했다.
  • 그런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은 달리 구경거리가 생기지 않자, 다들 순간 흥미를 잃고는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그때 마침 종이 울렸다. 윤희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쳤다.
  • “앞으로 교실에 휴대폰 들고 들어오지 마. 며칠 뒤면 모의고사인 거 알지? 지난번에는 B반이랑 우리 반이랑 고작 5점 차이 밖에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다들 긴장 놓지 말도록 해. 누가 우리 반의 발목을 잡는 학생이 있다면 바로 우리 A반에서 내보낼 줄 알아!”
  •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한 그 말은 거의 송다은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 “자, 다들 모의고사 시험지 꺼내. 마지막 문제를 같이 풀어보자.”
  • 송다은은 침착하기만 했다. 그녀는 윤희진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손으로 펜을 돌리며 고개를 갸웃한 채 칠판에 거침없이 문제를 적어 내려가는 윤희진을 바라보았다.
  • ‘아무래도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 같네.’
  • 10분쯤 듣고 있던 그녀는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왜 이렇게 오래 강의하는 거지? 저건 그냥 한눈에 보면 답이 나오는 거 아닌가? 게다가 저 선생이 말하는 풀이 방법은 가장 복잡한 방법 중 하나라고. 분명 더 쉬운 풀이법이 있잖아!’
  • 그런 생각들을 하며 억지로 5분을 더 들은 송다은은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지끈거리는 미간을 주무르며 다른 과목의 책을 꺼냈다.
  • 잠들어버리지 않기 위해 다른 과목을 자습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 과학탐구 영역과 수학, 그리고 영어는 그녀로서는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전에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할 때 전공이 바로 수학, 물리학, 그리고 경제학이었던 데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었기 때문이었다.
  • 다만 국어는 확실히 조금 부족했다. 한자 성어와 고전시가 같은 것은 확실히 노력을 들여 외워둘 필요가 있었다.
  •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전에 작품을 하면서 그 시대의 지식을 적잖이 접해보았었기에 너무 낯선 것도 아니었다.
  • 자신의 실력에 대해 대략적인 파악을 끝낸 송다은은 완전히 안도했다. 며칠 정도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아마 너무 심하게 망치진 않을 것이고, 370점 정도는 아마 문제없을 터였다.
  • 송시훈은 책 하나를 다 본 뒤 또 다른 책을 펼쳐 드는 송다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호기심 가득한 어린애 같았다. 게다가 그녀의 책은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은 완전한 새 책이었다. 이에 그는 기가 막혔다.
  • ‘형은 대체 무슨 수를 써서 교장이 전례를 깨고 이런 공부도 못하는 애를 받아주도록 설득한 거지? 게다가 A반에 들여보내기까지 하고 말이야. 정말이지 민주보다 못한 것 같은데. 비록 민주는 꼴찌 반인 D반에 있지만, 적어도 걔는 자기 실력으로 붙은 거잖아. 저 애랑은 다르게 말이야. 수업 중에 딴짓하는 건 그렇다 쳐도 이건 아예 대놓고 수업을 안 듣고 있는 거잖아. 큰형이 신경 써준 것도 모르고 말이야.’
  • 그는 도저히 못 봐주겠는지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나무랐다.
  • “수업 좀 제대로 듣지 그래?”
  • 국어책을 펼쳐 들고 고전시를 외우고 있던 송다은은 리듬이 깨지자, 눈살을 찌푸렸다.
  • “수업 중에 말 좀 안 하면 안 돼?”
  • “너…!!!”
  •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놓고 반박을 당한 송시훈은 화가 난 듯 얼굴이 시뻘게졌다.
  • ‘정말이지 좋은 뜻에서 말해줘도 난리야.’
  • 그러던 그때, 화난 듯한 목소리가 교탁 쪽에서 울려 퍼졌다.
  • “송다은, 수업 중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일어나서 다음 문제 한번 풀어봐!”
  • 윤희진은 분노에 찬 얼굴로 송다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까부터 계속 송다은을 주시하고 있었다.
  •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건 그냥 넘어갔지만 자기 반의 우수한 학생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송다은의 모습에 그녀는 더는 참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 선생이 송다은을 불러 문제를 풀게 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송다은 때문에 화가 나 씩씩거리던 그는 순간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 이에 그는 오만하게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코웃음 쳤다.
  • ‘흥, 나한테 도와달라고 할 생각 하지 마.’
  • 송다은은 별다른 표정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에 적힌 문제를 한번 훑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가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 “답은, 루트 2분의 1이에요.”
  • 그녀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흘러나오자, 반 전체가 기이한 정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