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다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힐긋 쳐다보았다.
“방금 그 말씀 꼭 기억해 두셨으면 좋겠네요. 번복하지 마시고요.”
그러자 윤희진은 눈을 흘겼다. 하지만 아무리 내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교장의 명령이었기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지시한 대로 송다은을 데리고 자신의 A반으로 향했다.
그리고 송다은이 윤희진을 따라 교실로 들어선 순간 조용하던 교실이 순간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저 여자애는 누구지? 전학생인가?”
“설마, 2달 뒤면 수능인데, 이제 여길 와서 급히 공부한다는 건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저 여자애 앞머리도 너무 덥수룩한 데다 저렇게 큰 안경을 쓰고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제대로 안 보여.”
“허, 높은 확률로 못생겼을 거라고 본다. 예쁜데 누가 얼굴을 가리겠어?”
자신의 반의 규율이 흐트러지자, 윤희진은 화가 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교탁을 세게 내려쳤다.
“웬 소란들이야? 다들 조용히 해! 이쪽은 우리 반에 새로 온 전학생이야.”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송다은을 향해 말했다.
“됐어. 너도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뒤에 빈자리 찾아가서 앉아.”
그녀는 시종일관 송다은의 이름을 소개하려는 생각도 없어 보였고,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송다은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소개하지 않으면 굳이 자신이 입 아프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기에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교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그러다 한 인영에 시선이 닿은 순간 그녀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남자애는 그녀와 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교한 이목구비는 마치 선반에 진열해 놓은 건담 같았고, 머리는 옅은 밤색이었다.
그는 항상 1등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로 그 누구도 그를 뛰어넘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현재 팔짱을 낀 채 오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두 눈에는 선명한 짜증과 조롱이 담겨 있었다.
아마 그 남자애가 바로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여섯째 오빠인 송시훈인 듯했다. 자신을 향한 그의 가득한 적의에도 송다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구석지고 조용하지만 창문 옆에 있는 구석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자리에 앉기 바쁘게, 가방 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에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니 큰오빠 송진호가 그녀에게 음성을 하나 보낸 것이었다.
송다은은 별생각 없이 음성을 클릭했다. 그러자 곧바로 나직한 목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다은아, 수업 잘해. 오빠 먼저 간다. 너랑 시훈이랑 같은 반이니까, 모르는? 여섯째 오빠?”
반 전체가 이 소식을 듣고는 충격에 휩싸인 채 고개를 돌려 송시훈을 쳐다보았다.
‘둘이 남매야?’
이에 송시훈은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일단 부정했다.
“뭘 봐? 나한테 여동생은 송민주 한 명밖에 없어. 성이 송씨라고 해서 아무나 우리 송씨 가문 사람인 건 아니라고!”
‘민주가 나한테 말한 게 진짜 사실이었네. 저 송다은이라는 애 정말이지 속셈이 엄청나잖아. 오자마자 갖은 수작을 부려가며 사람들한테 자기가 내 여동생이고 송씨 가문의 아가씨라는 사실을 알리다니 말이야. 잔머리 한번 잘 굴렸네. 하지만 난 죽어도 쟤 뜻대로 되게 하진 않을 거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토라진 어린애 같은 그의 말투에 송다은은 어이가 없었다.
‘이 음성이 스피커로 재생될 줄 내가 알았겠냐고? 게다가 그건 큰오빠가 한 말이지 내가 한 말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 난리야? 됐어. 스무 살 넘게 먹고 고작 열몇 살짜리 어린애랑 실랑이할 필요는 없지.’
이에 그녀는 반박도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송진호에게 답장 몇 마디 보낸 뒤 휴대폰 전원을 끄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책을 꺼내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은 달리 구경거리가 생기지 않자, 다들 순간 흥미를 잃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때 마침 종이 울렸다. 윤희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쳤다.
“앞으로 교실에 휴대폰 들고 들어오지 마. 며칠 뒤면 모의고사인 거 알지? 지난번에는 B반이랑 우리 반이랑 고작 5점 차이 밖에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다들 긴장 놓지 말도록 해. 누가 우리 반의 발목을 잡는 학생이 있다면 바로 우리 A반에서 내보낼 줄 알아!”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한 그 말은 거의 송다은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자, 다들 모의고사 시험지 꺼내. 마지막 문제를 같이 풀어보자.”
송다은은 침착하기만 했다. 그녀는 윤희진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손으로 펜을 돌리며 고개를 갸웃한 채 칠판에 거침없이 문제를 적어 내려가는 윤희진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 같네.’
10분쯤 듣고 있던 그녀는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왜 이렇게 오래 강의하는 거지? 저건 그냥 한눈에 보면 답이 나오는 거 아닌가? 게다가 저 선생이 말하는 풀이 방법은 가장 복잡한 방법 중 하나라고. 분명 더 쉬운 풀이법이 있잖아!’
그런 생각들을 하며 억지로 5분을 더 들은 송다은은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지끈거리는 미간을 주무르며 다른 과목의 책을 꺼냈다.
잠들어버리지 않기 위해 다른 과목을 자습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과학탐구 영역과 수학, 그리고 영어는 그녀로서는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전에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할 때 전공이 바로 수학, 물리학, 그리고 경제학이었던 데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국어는 확실히 조금 부족했다. 한자 성어와 고전시가 같은 것은 확실히 노력을 들여 외워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전에 작품을 하면서 그 시대의 지식을 적잖이 접해보았었기에 너무 낯선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대략적인 파악을 끝낸 송다은은 완전히 안도했다. 며칠 정도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아마 너무 심하게 망치진 않을 것이고, 370점 정도는 아마 문제없을 터였다.
송시훈은 책 하나를 다 본 뒤 또 다른 책을 펼쳐 드는 송다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호기심 가득한 어린애 같았다. 게다가 그녀의 책은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은 완전한 새 책이었다. 이에 그는 기가 막혔다.
‘형은 대체 무슨 수를 써서 교장이 전례를 깨고 이런 공부도 못하는 애를 받아주도록 설득한 거지? 게다가 A반에 들여보내기까지 하고 말이야. 정말이지 민주보다 못한 것 같은데. 비록 민주는 꼴찌 반인 D반에 있지만, 적어도 걔는 자기 실력으로 붙은 거잖아. 저 애랑은 다르게 말이야. 수업 중에 딴짓하는 건 그렇다 쳐도 이건 아예 대놓고 수업을 안 듣고 있는 거잖아. 큰형이 신경 써준 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는 도저히 못 봐주겠는지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나무랐다.
“수업 좀 제대로 듣지 그래?”
국어책을 펼쳐 들고 고전시를 외우고 있던 송다은은 리듬이 깨지자, 눈살을 찌푸렸다.
“수업 중에 말 좀 안 하면 안 돼?”
“너…!!!”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놓고 반박을 당한 송시훈은 화가 난 듯 얼굴이 시뻘게졌다.
‘정말이지 좋은 뜻에서 말해줘도 난리야.’
그러던 그때, 화난 듯한 목소리가 교탁 쪽에서 울려 퍼졌다.
“송다은, 수업 중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일어나서 다음 문제 한번 풀어봐!”
윤희진은 분노에 찬 얼굴로 송다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까부터 계속 송다은을 주시하고 있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건 그냥 넘어갔지만 자기 반의 우수한 학생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송다은의 모습에 그녀는 더는 참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선생이 송다은을 불러 문제를 풀게 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송다은 때문에 화가 나 씩씩거리던 그는 순간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이에 그는 오만하게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코웃음 쳤다.
‘흥, 나한테 도와달라고 할 생각 하지 마.’
송다은은 별다른 표정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에 적힌 문제를 한번 훑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가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