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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송민주에게 사과하다

  • 송다은은 를 외우고 있었다. 거의 다 외울 뻔한 그때,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에 의해 사로가 끊겨버렸다.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 “비켜!”
  • 뼈를 에이는 듯한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송민주는 온몸이 떨렸다. 이 멍청이가 서원고에 붙었다는 사실에 본능적으로 피하려던 몸이 멈췄다.
  • 송민주는 그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 조금 전 질투는 온데간데없고 티 없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녀는 송다은의 팔짱을 끼며 상냥하게 말했다.
  • “조금 전에는 내가 너무 놀라서 그런 거라 너무 신경 쓰지 마.”
  • “근데 성적은 별로라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서원고에 합격한 거야? 혹시 몰래 들어온 건 아니지?”
  • 송민주의 가식적인 목소리는 너무 앙칼져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
  • 그녀는 송민주에게서 팔을 빼고 뒤로 물러서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 “너랑 무슨 상관이야.”
  • 이 머리로 어떻게 서원고에 들어온 거지?
  • 학교 보안 시스템이 아무도 몰래 들어왔다 떳떳하게 걸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할 리는 없지 않은가?
  • 그러나 송민주는 자신의 추측에 한층 더 확신을 가졌다.
  • 특히 아무 말 않고 피하기 바쁜 송다은의 모습에 더욱더 확신할 수 있었다.
  • 그녀의 불안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셨다.
  • 그녀는 급히 쫓아갔다.
  • “언니, 왜 걸음이 이렇게 빠른 거야? 아빠 엄마를 기쁘게 하려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은 아니야. 이제라도 선생님께 잘못을 인정하면 선생님들도 용서해 줄 거야.”
  • “언니, 허영심만 가득하면 스스로를 망치고 타인에게도 피해를 주는 거야. 학업에 몰두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 내 도움이면 인서울은 가능할 거야.”
  • 인서울?
  • 허!
  • 발걸음을 멈춘 송다은은 무표정한 얼굴로 따라오는 송민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상황이 그저 웃겼다.
  • “그래? 나를 도와주겠다고? 몇 점이나 받을 수 있는데? 400점?”
  • 송민주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웃는 듯한 시선에 더욱 이를 갈던 그녀는 억지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허허, 총점이 400점인데 언니는 참 농담도 잘하네.”
  • 이 나쁜 년!
  • 분명 일부러 그런 거야. 누가 400점을 받을 수 있겠어?
  • 송다은이 비웃었다.
  • “400점도 못 받으면서, 나를 가르쳐?”
  • 풉…
  • 주변의 학생들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 “언니…!!!”
  •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새빨개진 그녀의 두 눈은 마치 억울함을 당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 그때 송시훈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
  • 눈시울이 붉어진 송민주 앞에 그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기만 하는 송다은이 있었다.
  • 송시훈은 주저 없이 송민주 앞을 막아서서, 자신보다 훨씬 작은 소녀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 “민주를 괴롭힌 거야?”
  •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송시훈을 본 송다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 “무슨 증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 송시훈은 주먹을 쥐며 말했다.
  • “민주가 울고 있는데도 변명하는 거야?”
  • 송민주는 눈물을 글썽이며 송시훈의 옷을 잡았다.
  • “오빠, 언니를 탓하지 마.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야…”
  • 어이가 없었던 송다은은 혀를 찼다.
  • 간사한 년!
  • 오빠들과 함께 지냈기에 송민주는 일찌감치 그들의 성격을 간파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자기 입맛대로 다룰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에 송시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송다은, 당장 민주한테 사과해!”
  • 송다은은 냉소를 지었다.
  • “내가 왜?”
  • 송시훈은 그녀가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싫었다. 분명…
  •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말이다.
  •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넌 내 동생이 아니야!”
  •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 그러자 송다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조금의 생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 그녀는 항상 거기에 있었지만 송시훈은 두 사람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깊은 골이 있음을 느꼈다.
  • 잠시 후, 그녀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 “그렇게 해. 앞으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마주치지 말자.”
  • 말을 마친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 순간 송시훈은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조금 전 자신을 바라보던 송다은의 차가운 눈빛에 심장이 움츠러들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 송민주는 송시훈의 뒤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송시훈과 송다은이 부딪힌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 친딸이면 뭐?
  • 그녀가 여전히 송씨 집안의 보배고, 그녀만이 송 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으며 그녀의 위치는 감히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녀는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맺히지도 않은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 하지만 올라간 입꼬리는 좀체로 내려올 줄 몰랐다.
  • 그녀는 송시훈의 옷깃을 잡으며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 “오빠, 언니도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거야. 나 때문에 둘 사이가 틀어지는 건 싫어.”
  • 그녀의 말에 송시훈은 가까스로 감정을 추슬렀다. 가여운 그녀의 모습에 그는 그저 마음이 아팠다.
  • 방금전 불쾌했던 마음도 뒷전으로 제쳐두고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 “괜찮아, 넌 내 동생이니까. 내가 아무도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 감동한 송민주는 눈물을 글썽였다.
  • “고마워, 오빠.”
  • 그리고는 멀리 보이는 송다은을 힐끔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 “그럼 언니랑 함께 집에 가는 거야?”
  • 하교하면 항상 기사가 데리러 왔다.
  • 송시훈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방금 다시 보지 말자고 하던 송다은의 기고만장한 모습이 떠올라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 “흥, 더 이상 마주치지 말자고 했으니 알아서 돌아오라고 해.”
  • ……
  • 송다은은 애초에 송씨 집안의 차를 탈 생각이 없었다.
  • 차 안에서 여우짓 하는 년을 마주할 바에는 차라리 걸으면서 를 외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 “임술년 가을, 7월 보름날, 소자가 손님들과 함께 적벽 아래에 배를 띄우니, 불어오는 바람에 물결이…”
  • 두 줄을 외우기도 전에, 또다시 그녀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 “다은아, 오랜만이야.”
  • 송다은은 서원고의 풍수가 나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연달아 마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