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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큰오빠 송진호

  • 송다은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그리고 막 입을 열려던 그때, 우렁찬 외침 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 방금까지만 해도 질투로 인해 치맛자락을 찢을 기세로 움켜잡고 있던 송민주는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고 기쁜 듯 외쳤다.
  • “큰오빠!”
  • ‘큰오빠? 송진호?’
  • 이 집안의 여섯 오빠들은 원래 몸의 주인인 송다은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학교에 갈 사람은 학교에, 출근을 할 사람은 출근 중으로, 누구 하나 오늘 이 파티에 참석한 사람이 없었다.
  • 그리고 책에서는 이 큰오빠에 대한 묘사의 대부분이 그가 얼마나 송민주를 아끼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 그렇기에 송진호가 갑자기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마도 송민주의 기를 살려주기 위함일 터였다.
  • 이에 송다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래도 그와는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는 조용히 발끝을 들어 뒤로 살짝 물러났다. 기세등등한 모습의 이 남자는 아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이곳으로 온 듯했다.
  • 긴 비행과 긴 여정을 마친 그는 저택 안으로 들어서 그 조그마한 인영을 확인한 순간에서야 완전히 안도할 수 있었다.
  • ‘다행이야, 늦지 않게 왔어! 다행이야, 다들 아직 이곳에 있어!’
  • 송진호를 본 송민주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눈시울을 붉히며 그에게 달려가서는 그의 옷자락을 잡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 “오빠, 드디어 돌아왔구나. 흑흑, 언니가 나 때렸어. 아빠랑 엄마는 상관도 안 하고, 흑흑…”
  • 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두 눈은 송다은을 줄곧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송진호는 송다은이 자신을 때렸다는 송민주의 갑작스러운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 “쟤가 널 때렸다고?”
  • 이에 그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라 생각한 송민주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볼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걷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 “오빠, 이것 좀 봐봐. 언니가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흑흑… 언니가 자꾸 날 괴롭혀…”
  •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얼굴 위에 남은 상처를 발견한 송진호의 표정이 순간 바뀌더니 곧이어 자신의 옷소매를 잡고 있던 송민주를 밀어냈다.
  • 송민주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의 강한 힘에 밀려 비틀거렸다.
  • 이에 화를 내려던 그녀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따지려는 듯 송다은에게 다가가는 송진호를 보고는 다시 화를 억눌렀다.
  •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민우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 역시 표정을 굳히며 조심스레 앞으로 몇 걸음 나섰다. 송진호가 손이라도 올리려 한다면 그를 막을 수 있도록 말이다.
  • 더욱이 서희란과 송창규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송다은을 향해 다가가는 송진호를 제지하려 했다.
  • 하지만 송진호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송다은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를 품 안에 단단히 감싸안은 그의 굳센 두 눈에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 “다은아, 다행이야, 네가 아직 살아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 “???”
  • ‘송민주의 복수를 해주려는 거 아니었어?’
  • 그녀가 한창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와중, 송진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속상하다는 듯 그녀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직이 투덜거렸다.
  • “너 바보야? 집안에 고용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뭐 하러 네가 직접 손을 올려? 아프진 않아?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송민주는 물론 송다은 본인 역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의 흐름도 왜인지 어딘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책에서는 큰오빠가 송민주를 과할 정도로 아낀다고 나와 있지 않았나? 근데 왜 지금은 날 이렇게 살뜰하게 대하는 거지?’
  • 그 모습을 본 송민주의 핏발이 선 두 눈이 질투로 이글거렸다. 표정 역시 일그러지다 못해 악마 같아 보이기도 했다.
  • ‘대체 왜? 저 촌스러운 계집애가 엄마 아빠의 관심을 받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민씨 가문 어르신의 비호에 이제 막 돌아온 큰오빠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잖아. 안돼! 큰오빠는 내 마지막 지푸라기란 말이야! 이렇게 잃을 수는 없어.’
  • “오빠! 내가 민주야! 어제 오빠가 나한테 전화해서 오늘 나 기 살려주러 온다고 했잖아?!”
  • 송민주가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그러자 송진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그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뼈를 에는듯한 한기만이 가득했다.
  • “어디서 목청을 높여? 평소 그 큰돈을 들여가며 배운 예절은 개나 줘버린 거야?”
  • 송민주에게 한 소리 하고 난 송진호는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 그는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그 자신조차도 믿어지지 않지만, 송씨 가문의 파산과 거리로 내몰렸던 시간들, 그리고 송다은의 지원 덕에 다시 재기했었던 그 모든 일들을 겪고 난 뒤, 그는 다시 지금 이 시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 그는 이것이 그의 후회를 만회하도록 하늘도 돕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 삶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송다은을 잘 보살필 생각이었다.
  • 그런 그에게 한 소리 들은 송민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두 눈에 서러움의 눈물을 가득 담은 채 말을 내뱉었다.
  • “오빠, 언니가 날 때린 거야. 언니가 먼저 때린 거란 말이야!”
  • 그녀는 자신이 지금처럼 이런 서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 송진호가 곧바로 그런 자신을 가슴 아파할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하지만 이번에는 실망스럽게도 송진호의 차갑기만 한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 “다은이가 철부지도 아니고, 절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리지는 않아. 분명 네가 다은이를 화나게 했겠지.”
  • 송진호의 기세는 엄청났다. 그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그곳에 있던 누구도 감히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 “오빠…!!! 엉엉엉, 다들 미워!”
  • 아무리 제멋대로라도, 송민주도 결국에는 어린 여자애일 뿐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꾸짖음을 당한 그녀는 부끄러움에 발을 구르더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버렸다.
  • 송다은은 말없이 송진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가 너무 강하게 잡고 있었던 데다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하고 있어 몇 번을 시도했지만 끝내 성공은 하지 못했다.
  • “오빠, 저기… 민주한테 안 올라가 봐?”
  • 현재의 송진호는 이미 다정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조금 전의 그 사납던 얼굴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다정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송다은을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착하지, 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끝까지 곁에서 지켜줄게.”
  • 송다은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
  • 어딘가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가 미처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송진호는 몸을 돌려 한쪽에 있는 민태호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더니 예의 바르게 말을 꺼냈다.
  •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 그러자 민태호는 마치 토라져 버린 어린아이처럼 차갑게 코웃음 쳤다.
  • “흥.”
  • 송진호는 이를 못 들은 척하며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아까 듣자 하니 어르신께서 농담 삼아 어릴 적 오갔던 혼담 얘기를 꺼내셨다죠. 하지만 다은이는 아직 어리니 그 이야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 ‘웃기지도 않는군. 우리 다은이는 이제 고작 열일곱에 아직 성인도 아닌데, 저 민씨 가문 손자는 벌써 스물셋이라고. 이미 다 늙어 빠진 남자인데 우리 다은이한테 가당키나 해?!’
  • 그런 그의 말에 민태호는 순간 다시 차갑게 눈살을 찌푸렸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송씨 가문에서 장기 내기에 져놓고 지금 발뺌하려는 건가?”
  • 송진호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 “어르신, 지금은 이미 부모님이 맺어주는 대로 군말 없이 결혼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다 자기에게 맞는 짝이 있기 마련이죠. 저희 동생은 아직 어려 정혼과 결혼을 얘기하기엔 확실히 조금 이른 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다은이는 아직 학생이라 수능에 지장을 줄 수는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
  • 민태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송씨 가문의 손자가 만만한 상대는 아님을 느꼈다. 단 몇 마디 말로 그가 한 모든 말을 반박했으니 말이다.
  • 이런 상황에서 더 무언가를 말했다가는 오히려 그가 무례해 보일 터였다.
  • 이에 그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목까지 시뻘게졌다. 그는 지팡이를 들어 옆에 있는 자신의 손자를 쿡쿡 찌르며 뭐라도 해보라는 듯 헛기침을 하더니 그를 사납게 노려보기도 했다.
  • ‘이 못난 놈아, 얼른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이대로 내 손자며느리를 놓쳤다가는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