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 서울대병원인데요. 여동생이신 송다은 님께서 저희 병원에서 사망하신 지 벌써 3일째라서요. 이른 시일 안에 병원에 방문하셔서 화장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저희 쪽에서…”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늘씬하고 커다란 손 하나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던 여섯 명의 오빠들은 그 소식에도 마치 죽은 것이 그들의 친여동생이 아니라는 듯이 전혀 표정의 변화조차 없었다.
“허허, 아마 우리한테서 돈을 뜯어내려고 또 무슨 새로운 꿍꿍이를 생각해 낸 거겠지.”
이와 같은 말을 내뱉은 사람은 스타일리시하게 염색한 회색 머리에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그는 죽은 송다은의 다섯째 오빠이자 한국의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였다.
“그러니까. 송씨 가문이 파산하고 우리 모두 거리로 내몰렸을 때도 민주 혼자 해외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었잖아. 송다은 걔는 그때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서 보이지도 않더니, 이제 우리한테 돈 좀 있으니까 또 돈 달라고 수작 부리는 거야!”
넷째인 송재우가 맞장구쳤다. 그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최연소 원사이자 연구원의 교수였고, 그가 말하는 민주는 바로 송씨 가문의 양녀인 송민주였다.
오래전 어린 딸을 잃어버리고 매일 같이 우울해하던 그들의 어머니인 서희란이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그들의 아버지인 송창규가 보육원에서 입양해 온 딸이었다.
그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검은색 휴대폰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주인은 깔끔한 정장 차림의 잘생긴 남자였다.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보노라면 알 수 있겠지만, 그는 경제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남자로, 상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몰락해 버린 기업을 멱살 잡고 세계 5대 기업의 반열에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첫째인 송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또다시 조금 전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대병원입니다. 조금 전 송다은 님의 다섯째 오빠분한테 전화드렸었는데 끊어져 버려서요. 송다은 님 휴대폰에 큰오빠라고 저장되어 있는 걸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병원에 오셔서 송다은 님의 화장동의서에 사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신이 저희 병원에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어서요. 오셔서 처리해 주지 않으시면 저희 쪽에서도 곤란합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
병원 관계자의 목소리는 의견을 구하는 듯 꽤 조심스러웠다. 이 업계에서 십 년을 가까이 일해온 그녀로서도 이런 가족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낮게 깔린 목소리에 병원 관계자는 순간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수화기에서는 곧이어 규칙적인 신호음이 흘러나왔다.
송진호가 전화를 끊자, 셋째인 송규민이 곧바로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아니, 형, 진짜 가보려고?”
그러자 송진호는 우아한 동작으로 물티슈를 집어 들어 손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내가 가볼게.”
그 말에 빈말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알고 있던 송규민은 하는 수 없이 눈을 흘기며 본인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같이 가.”
그들의 큰형은 사업을 할 때는 무자비하고 단호한 오너였지만 친남동생들과 친여동생의 일에서는 쉽게 마음이 약해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따라가야지 안 되겠어. 송다은 그 영악한 계집애한테 돈을 뜯어낼 기회 같은 걸 줄 순 없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나머지 네 남자도 수저를 내려놓았다.
“우리도 가보자. 그 계집애가 무슨 수를 써서 병원까지 자기 연극에 동참시켰는지 알고 싶네!”
…
병원. 그들이 송다은의 가족들임을 확인한 간호사는 행여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그들이 그대로 돌아서 가버릴까 봐 급히 그들을 안치실로 안내했다.
안치실 안은 음침하기 그지없었다. 매일 같이 소독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썩은 내가 은은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이에 여섯 남자는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간호사가 한 방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세장의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중 한 침대 위에만 흰 천으로 덮인 시체가 한 구 누워있었다.
“이게 송다은 님의 시신입니다. 가지고 돌아가서 직접 처리하시겠어요, 아니면 병원 측에서 화장을 진행할까요? 병원에서 화장을 해드리려면 가족분께서 화장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셔야 하고, 10만 원의 화장 비용을 지불하셔야 해요.”
나이가 가장 어린 여섯째 송시훈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얘… 정말 죽은 거야?”
셋째 송규민이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팔을 걷어붙이며 앞으로 나섰다.
“진짜인지 아닌지 보면 알겠지.”
그는 의학원에서 인정받는 의학 천재였다. 암도 완치가 가능한데 단순히 사람의 생사 정도 판단하는 일쯤은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촤락-
흰 천이 걷히고, 옅은 회색빛이 감도는 누렇게 뜬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굉장히 야윈 모습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빼빼 마른, 뼈밖에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것 같았다.
송다은이었다. 그 모습에 송규민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섯 명도 충격에 휩싸인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송다은은 진짜 죽은 것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멍하니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간호사가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여러분, 대체 어떻게 처리하실 거냐고요?”
그 말에 여섯 남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송진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병원에서 화장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이를 들은 간호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데려가 주세요. 이분 이미 저희 병원에 3일이나 계셨어요.”
여기까지 말하던 간호사는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송다은 님 유품은 아직 541호 병실에 있으니까, 그것들도 함께 가져가 주세요.”
그들이 찾아갔을 때, 541호 병실에는 함께 병실을 사용했던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그녀는 그들 여섯 명을 보자 바로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청년들이 다은이 오빠들이지? TV에 나오는 모습과 똑같이 아주 잘생겼네.”
그러자 넷째 송재우가 놀라며 물었다.
“저희를 아세요?”
이에 할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알다마다. 다은이가 살아있을 때 오빠들 얘기를 많이 했었어. 자기 오빠들이 엄청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모두 자기 친오빠들이라면서 말이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몰라.”
‘송다은이 우리를 칭찬했다고?’
“에휴, 그런데 다은이 그 애가 팔자가 기구했지. 그 어린 나이에 몸에 병이 안 든 곳이 없었으니.”
여기까지 얘기하던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침대 옆 서랍에서 철로 된 상자를 하나 꺼냈다.
“아참, 이건 다은이가 나한테 맡긴 거야. 자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나한테 시간이 있으면 돈을 부쳐달라고 부탁하더라고. 그런데 이 늙은이가 그런 걸 알겠어? 손자 녀석이 오면 나 대신 부쳐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온 김에 자네들이 가져가면 되겠네.”
송진호는 그녀에게서 상자를 건네받았다. 무겁지도 않았다. 찻잎을 담는 철 상자였는데, 이미 여기저기 녹이 슬어있었고, 겉면의 칠도 적잖이 벗겨져 있었다.